사소한 정의 - 10점
앤 레키 지음, 신해경 옮김/아작



이 책을 알게된 것은 #페미니즘 이 반영된 SF 소설이라는 주간지 서평을 통해서다. 요즘 우리 사회의 화두 중 하나인 페미니즘이다 보니 SF와 결합한 페미는 어떤 느낌인가 싶어 골라봤다. 그래서 이 책의 모든 등장인물은 He가 아닌 She, 그녀들이다. 심지어 인공지능과 같은 가상인격도.


물론 그들, 또는 He 들도 있기는 한 것 같지만 여하튼 POV는 그녀들의 시선을 통해서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녀의 불평등에서 비롯한 문제를 부각 시키려는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 관점만 바뀐 거다. 이게 처음엔 꽤 어색하긴 하다. 대체 언제쯤 '그'가 나오나 기다려질 정도 였다. 물론 그런 일은 없다.


앞서 페미니즘을 이야기했고 그런 평이 있지만 정작 소설의 주제는 그와는 관련이 거의 없는 듯 하다. 배경설명이 전무해서 그런 지도 모르겠다-예를 들어 왜 여성성(性)이 주된 성(sex)이 됐는가 등에 대한 것들 말이다.
여하튼 보는 이마다 각각 이겠지만 '나'라는 것을 정의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이런 주제는 사실 많은 SF작품을 통해 제기된 흔한 이야기이도 하다. 그렇지만 이 책처럼 수량적으로 시간적으로 스케일을 크게 잡은 경우는 흔하지 않다. 
그리고 ‘#사소한_정의’, 원제는 ‘Ancillary Justice’인 정의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사소한’이라는 단어와 ‘부가적’이라는 뜻을 포함하는 ancillary라는 단어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무튼 소설 속에서 더불어 순간순간의 상황 속 사소한 듯한 정의에 대한 결정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떤 결과를 만들 지, 그것이 과연 거대한(?) 정의(Justice)를 이루는데 어떤 역할을 하는 가를 이야기한다. 카오스 이론의 영향을 따른 듯 한데 이 또한 흔한 소재이긴 하다. 
그런데 이 두 소재를 그녀의 관점으로 부드러우면서도 가볍지 않게 잘 버무려놨다.


이전에 존 스칼지의 ’노인의 전쟁’이라는 책과 그 시리즈를 읽었다. 역시 스페이스 오페라로 구분되는 유사한 장르의 책이다. 거기서도 작가 앤 레키와 같이 복제인간을 통해 ‘나’를 정의하는 것이 미래세계에서는 지금과는 현저히 달라질 것을 예고하고 있다. 다만 페미니즘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스컬지와 레키의 작품의 차이점이 나타나는데 노인의 ‘전쟁’이라는 제목처럼 유혈이 낭자한 묘사가 많고 전투장면들이 박진감 있게 묘사된다면 ‘사소한 정의’는 그 보다는 훨씬 차분하고 정적인 편이다. 그래서 1백여 페이지가 넘어가기 까지는 매우 지루한 감도 있어서 읽는데 매우 주의를 요한다. 물론 후반부 클라이막스에 이르러서는 호흡이 가빠지게 하는 장면들이 등장하지만 역시나 매우 절제된 듯한 느낌이다.


간만에 좋은 작품을 만났다. 주제도 좋고 우주를 배경으로 해서 스케일도 만족스러운 책이다. 시리즈라는데 다음 작품도 봐야겠음.


바람의 그림자 1

바람의 그림자 1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저/정동섭

1945년 여름, 스페인 내전 직후의 바르셀로나에 다니엘이란 이름을 가진 어린 소년이 아빠의 손에 이끌려 미명에서 깨어나는 도시의 거리를 걷고 있다. 어릴 적 엄마를 잃은 아들을 위로하기 위해 아빠는 '잊혀진 책들의 묘지'로 데려간다. 이곳의 기본 수칙은 첫 방문 시 자신만의 책 한 권을 얻을 수 있는 대신 아무에게도 그 사실을 누설할 수 없다는 점! 다니엘이 우연찮게 고른 책은 훌리안 카락스라는 자가 쓴 『바람의 그림자』이다. 후에 놀랍게도 다니엘은 훌리안의 모든 작품들을 불살라버리고 그의 흔적을 지워버리려는 검은 사내와 맞닥...





바람의 그림자 중.
La Sombra del Viento
- Carlos Ruiz Zafon


p.390
독서라는 예술은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고.
그것은 내밀한 의식이라고.
책은 우리가 이미 우리 안에 지니고 있는 것만을 보여주는 거울이라고.
독서할 때 우리는 정신과 영혼을 건다고.
위대한 독서가들은 날마다 더 드물어져가고 있다고.

p.401
머리와 가슴과 영혼이 있는 남자
자식의 말을 경청할 줄 알고, 자식을 이끌어주면서도 동시에 존중할 줄 아는 남자
하지만 자기 결점을 자식한테서 보상받으려 하지 않는 남자
자식이 그저 아버지라서 좋아해 주는 남자 말고 인간 됨됨이 때문에 존경하는 남자, 아이가 닮고 싶어하는 남자

바르셀로나
- 다니엘과 아버지의 서점 : 사나 아나 가(街)
- 클라라 : 레알 광장
- 오랜시간의 흐름에도 품위를 유지하는 : 아테네오
- 고독한 포르투니의 : 론다 데 산 안토니오
- 카탈루냐 광장
- 누리아의 집이 있는 : 산 펠리페 네리 광장
- 티비다보 애비뉴 : 32번가 근처와 전차와 석양


이와이 슌지의 ‘러브레터’를 보고 있자면 언젠가 저곳에 꼭 가보고 싶다는 동경이 든다. 백색의 설원과 그 황량함을 느껴보고 싶기 때문에.
이번에 읽은 카를로스 루이스 샤폰의 ‘바람의 그림자’를 읽는 내내 바르셀로나의 그곳들에 대한 그리움이 솟아난다. 가보기는 커녕 영상으로만 접해본 곳인데도 읽는 내내 그곳을 거닐고 있다는 착각이 든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의 읽는다는 의미와는 달리 독자의 머리 속에서 각종 허구와 상상을 조합해 읽는 이만의 세계가 만들어지게 한다. 그래서 동일한 줄거리를 가짐에도 읽은 이에게 투영되는 세상은 모두 다른 색과 구조, 모양을 가지게 될 거다. 바르셀로나의 실재하는 지명과 거리는 등장인물들을 중심으로 읽은 이의 마음속에서 길위의 다양한 사람들과 움직이는 것들, 하늘, 바다, 소리들로 채워진다.
바르셀로나는 그러한 모든 것들이 채워지기 전의 하얀색의 도화지 같은 것. 그 어는 것도 그려지기 전의 날 것 그대로의 바르셀로나를 접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언젠가 가 볼 일이 있을 것으로 여기며.

등장인물 정리




힐빌리의 노래

힐빌리의 노래

J. D. 밴스 저/김보람

아마존닷컴 종합 1위, 「뉴욕타임스」 논픽션 1위, 빌 게이츠와 소설가 김훈이 추천한 화제의 책
빈곤과 무너져가는 가족, 그 어둠 속에서 일어선 한 청년의 진솔한 성장기

‘힐빌리’는 미국의 쇠락한 공업 지대인 러스트벨트 지역에 사는 가난하고 소외된 백인 하층민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저자 J. D. 밴스는 힐빌리 출신의 32살 청년으로, 약물 중독에 빠진 어머니와 수없이 바뀌는 아버지 후보자들, 그리고 다혈질에 괴팍한 성미를 가졌지만 손자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조부모 밑에서 자라며 윤리와 문화의 붕괴, 가족...



이 책을 읽은 내내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Winter’s Bone’과 ‘길버트 그레이프(What's Eating Gilbert Grape)’. 거친 숲, 눈, 바람, 황량함, 쓸쓸함, 고독함, 무력감. 그 속에서 피어 오르려는 작은 희망도 있긴 하다.

물리적 환경도 그럴 수 있겠지만, 삶을 둘러싼 환경이 그러한 곳이 저자의 고향이다. 그리고 그곳에 사는 이들을 ‘힐빌리’(관련이미지)라고 부른다. 우리로 치면 OO촌뜨기 정도?

지은이는 자신의 성공을 자기 지역의 사람들과는 달리 그의 앞에 열려진 길과 환경이 너무도 운이 좋았다라고 말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말이 있지만, 그런 노력을 해도 안되는 이들이 수두룩 함에도 저자 J.D.밴스는 정말 하늘이 도운 케이스일 듯 하다. 엉망인 상태의 어머니 밑에서 아버지라고 불리울 만한 사람만해도 여러명인 상황.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부모의 도움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할모, 할보로 칭해지는 조부모들 덕에 침몰하지 않고 간신히 버텨간다.

힐빌리가 그렇게 좋은 뜻은 아니더라도 지역 자체의 분위기는 대가족 중심의 공동체를 근간으로 한다. 그래서 그것이 밴스에게 운으로 작용한 것인지도. 조부모의 지속적이고 강인한 도움이 그나마 그를 고등학교까지 이끈 듯 하다. 그럼에도 이후의 과정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어찌하여 해병대를 거쳐 자신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터득하는 것도 그렇고 오하이오 주립대까지 가는 과정, 예일대 로스쿨까지의 여정은 중류층 이상의 가정환경과 사회적자본(인맥이라고 책에서 본다)을 가진 이들에게는 어느 정도의 노력만으로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 일일런지도 모르지만 힐빌리 출신에게는 그런 삶과 방식이 존재하는 지조차도 알 수 없다.

미국이라는 사회는 늘 ‘아메리칸 드림’으로 외부에 포장되어 있고, 한국에 사는 나같은 사람들은 기회의 땅, 성공의 가능성이 널려있는 땅에 사는 저 USA들은 정말 좋겠다라는 막연한 부러움 속에 살아간다. ‘미국 거지도 영어를 잘하더라’라는 자조섞인 영어부심도 그렇고.

그런데 정작 그 미국 땅에 살아가는 상당수의 미국인, 그것도 주류로 여겨져 왔던 백인 사회 안에는 여지껏 외부세계에 잘 알려지지 않은 계층이 존재한다. 물론 20세기 후반부터 미국사회에서도 그 문제가 점점 부각되면서 알려지기는 했어도 이 책에서 보여주는 것만큼인지는 몰랐다.

기회의 땅이리라 여겼지만 그 기회조차 존재하는 모르는 채로 살아가는 많은 힐빌리들. 기회와 그 기회를 잡는 방법을 모르니 자기 자신이 포기한 줄도 모르고 그냥 살아간다. 포기는 그 목표를 알기라도 한다지만 그 목표가 존재하는 지도 어떻게 잡는 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게 지금 미국의 하위 백인 노동자계급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시민의 계급이 없고 평등한 위치에서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경쟁을 하는 것이라고 여겨져 왔다. 계급이 아예 없을 수는 없겠지만 이 정도까지 이리라고 생각해보지는 못했다. 특히 미국이라는 사회에서.

실례로 지은이가 나온 오하이오 주립대는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상당한 금액의 장학제도가 있다. 당연히 그런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안다면 기회로 삼을 수 있을 텐데도 그 혜택을 전혀 이용 못하고 있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부모의 무관심, 주변 사회의 무지함. 개인의 나약함 등이 부정적 시너지를 낸 결과다.

미국 교육체계가 문제 많다며 오바마를 비롯한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교육시스템을 개혁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럼에도 문제의 해결이 더딘 것은 정작 시스템에만 있는 문제만이 아니라 교육의 대상인 사람과 그 사람들의 모임인 공동체에 큰 문제가 있다.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낸 지지층이 바로 이 힐빌리와 같은 백인 노동자 계층이다. 문제의 원인을 외부의 탓으로만 돌리며 그 해결을 트럼프에게 맡기면 해결되리라는 극히 수동적이면서 외부세계에 적대적인 그들이다. 정작 문제해결의 근원은 자기 자신들임을 모른는 것인지, 아니면 알고도 극도로 외면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사회도 점점 저렇게 되어 가는 듯 하다. 양극화라는 말이 십수년 전에 어느 대통령님을 통해 알려지면서 그 단어는 자신의 존재감을 더 굳혀간다. 금수저, 흙수저, 88만원세대와 같이 나이와 지역, 출신에 따른 계층의 분리와 격차는 점점 일반화되고 깊어져 간다.

두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의 입장에서 이 책을 보는 내내 내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나는 얼마나 단호하고 강한 책임감으로 아이들을 키워가고 있는가? 제대로 된 정보와 지식으로 아이들을 케어하고 독려하고 서포트하는가? 그리고 동시에 과연 나의 가정은 화목한가? 아이들이 안심하고 그 둥지에서 마음 놓고 자신들의 꿈을 키워가게 하는 가 등등. 정말 자신없는 질문들이다.

저자는 정말 운이 좋았던 것은 틀림없다. 친척 중에 단 한명의 전문대 이상 졸업자도 없는 상황에서 예일대 로스쿨을 나와 유명 법조인이 된다는 게 글로 보고 말로만 들어서 그렇지 사막 한 가운데 떨어져서 길을 찾아가는 것과 다름아닌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 중에 ‘에이미 추아’ 교수가 등장한다. 그 이름을 보는 순간 예전에 읽었던 ‘제국의 미래’의 저자임과 동시에 ‘타이거맘’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 중국계 교수다. 맹렬한 자녀 교육의 대명사. 그 교육방식에 대한 찬반논란은 여전하지만 정작 저자를 대하는 에이미 교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스승의 모습이다. 타이거맘이라는 표현이 분명 과하고 실제로도 그랬던 모양이지만 자식을 세상에 내보내기 전까지 그 아이가 세상에 적응하게 하려는 부모의 노력은 분명히 있어야한다.

힐빌리로 불려지는 애팔래치아 - 미북동부 지역 백인하위층의 이야기는 우리와 비교할 때 같지는 않고 그대로 불러다 쓸 수는 없지만 그것이 주는 느낌은 상당히 공감할 수 있다. 책을 보다보면 성공담에 대한 이야기인가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그 성공이 정말 어려운 것이고, 저자와 같은 상황에서라면 성공이란게 있는 것인지도 모르는, 그 절망적인 시절을 살아가는 이들에 대해 글쓴이는 세상에 알리고 변화를 요구하는 내용이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요즘 애들은 끈기가 없어’라며 개인의 낙오를 꾸짖는 주변의 꼰대들의 충고(이에 대해선 할 말이 많지만 관련 기사로 대신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운이 더 중요한 이유' http://ppss.kr/archives/78599)가 아닌 그 문제의 원인이 개인과 가족, 공동체 모두에게 똑같이 있으니 함께 관심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고 하는 듯 하다. 여기에 정부와 같은 시스템의 개입이 더해지면서 효과가 나리라 보는 것이다.




“팀 쿡, 매주 맛있는 커피 몇 잔 값이면 iPhone X(텐)을 분할 플랜으로 구입할 수 있어”

https://www.macrumors.com/2017/11/03/iphone-x-coffee-price-comparison/

며칠 전 이런 기사가 떴었다. ‘오~’ 하면서 ‘그렇지’라고 동의 하셨을 분도 있었을테고, 반대로 쓴웃음을 보낸 이도 있었을테다. 나도 ‘허허’ 하고 웃고 지났는데 문득 그 말이 오늘 아침 떠올려져 되짚어보니 음흉한 흉계가 깔려있는 말이다.

사과농장이라고 들어본 분 많을테다. 설마 저 사과가 먹는 사과라 여기는 분은 없으시길. 나의 경우도 아이팟(ipod)으로 시작된 사과농장이 현재에 이르렀다.

 

이젠 커피 몇 잔 값으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비슷한 경우를 가진 분 많을 듯 하다. 그럼에도 저렇듯 태연하게 커피향 풍기 듯 여유롭게 말하다니 쿡의 음모는 매우 음흉하기 짝이 없다.



재스퍼리들리의 [티토:위대한 지도자의 초상] 읽음. 5.0




티토

티토

유경찬

불과 20여년 전만 해도 옛 유고슬라비아는 동구권에서 안정되고 잘살던 나라로 평화와 번영을 누리던 나라였고, 당시 그 핵심에는 '티토'라는 인물이 존재하고 있다. 강력한 의지와 카리스마를 지닌 위대한 지도자로 남아 있는 티토 대통령에 대한 생생한 다큐멘터리로서의 이 책은 티토의 어린시절에서부터 생을 마감하기까지의 행적을 추적하고 있다.전세계인의 기억에 깊이 남아있는 티토의 독보적인 업적을 소개하고, 이를 통해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유고슬라비아를 한 나라로 묶었으며, 동서양이라는 굴레를 앞세운 강대국들의...


책을 읽는 동안 작년에 다녀온 유고연방의 여러 지역들이 떠올려졌다. 지형이며 도시들이 속의 내용과 오버랩되면서 이해하는 상당한 도움이 됐다예전 중고등학교 시절 3세계의 리더라고만 배운 피상적인 인물이 피부에 와닿듯이 실제적으로 느껴지게 준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지역의 인물에 대해 나온 책이 얼마나 되겠나 싶다. 강대국도 아닌 그나마 유고연방으로 존재했을 때와는 달리 원래의 소국들로 나뉘어져 버린 지금에선 더더욱.


티토라는 인물에 대해 마디로 해보라면공산주의자 , 아닌 듯한 매력적인 인물이다. 어떻게 보면 진정한 공산주의를 바라고 추구했었던 사람인 같으면서도 되려 그렇지 못해 어정쩡한 스탠스를 취한 그러면서도 시대의 운을 타고나 천수를 누린 천운을 가진 사나이라고 할까?


그의 사후 유고는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몬테네그로, 코소보, 세르비아, 보스니아에서 벌어진 인종청소 등으로 인해 인간의 잔학성을 보여주는 동네가 되어 버렸다. 그렇지만 참상을 겪은 후에 도리어 티토는 그가 티토였는지를 다시금 알게 해주면서 지금은 생전만큼은 아니어도 그에 대한 향수와 추모를 받고 있나 보다.


우리네 다카키 마사오 상에 대한 최근의 추모 분위기와 비슷한 싶지만 절대 아니다. 도리어 티토는 비록 노선은 공산주의였지만 유고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던져가며 싸워온 투사였고 그것을 입증해주는 역사적 사실은 너무나도 많다. 단순한 공산과격분자가 아닌 서방과도 함께 동반할 있음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도리어 자기네 맹주인 소련에도 과감히 쓴소리와 결단력 있는 행동을 보여주는 뚝심있는 사내였다고 본다. 영국수상 처칠이 그를 평가한 내용을 보면 더더욱.


그래서 비록 우리 대통령이었다지만 일제의 앞잡이 되어 독립군 잡으러 다니고 통일을 위해 자기몸 아끼지 않던 백범 선생 등을 암살하고 통일은 커녕 분단을 공고히 해서 자기들 권력유지에만 집념하고, 남의 나라 전쟁에 자국 젊은이들을 사지로 몰고 그나마도 월급 떼먹고... 등등. 그래서 지금의 다카키 마사오 상을 추모하는 인간들을 보면 역겁기 그지 없는 거다. 청렴했다고 하더니만 스위스 계좌며, 딸내미들과 일당들이 저질러 놓은 짓들 보면 뭐가 청렴하고 국가만을 생각한다는 것인지티토의 첫번째 부인의 아들은 전쟁중에 한쪽 다리를 잃었다. 부친 사후에 그에게 남겨진 재산은 양복 한벌. 살아 생전에도 티토는 자식이라고 봐줄 없다고 해서 되려 주변인들이 그래서야 되겠냐라고 이야기 했을 정도란다. 

아무튼 자꾸 이야기가 곁길로 새서 정리하자면 우리나라에도 티토같은 이들이 분명히 있었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럼에도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 박근혜로 이어지는 패악의 세력들이 나라위에 군림하고 있다. 이들이 우리의 리더였다. 부끄럽지 않나?



I have faith in God.
나는 신을 믿는다.

I believe in friend.
나는 내 친구를 믿는다.

믿음, 신뢰? trust? faith? belief?

과연 믿음은 무엇일까? 아니 기독교인, 크리스챤에게 믿음은 뭘까?
지금 부적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송을 보면서 저들이 말하는 믿음은 생사화복을 중심으로 그것에 대한 믿음을 이야기하지만, 과연 예수를 구원자로 믿는 나, 또는 우리는 무엇이 믿는 것인가라는 물음을 다시 묻게 된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이지 생사화복을 잘 지켜 줄 것이라는 것에 대한 믿음이 아니다.
친구를 좋아하고 의지하니 믿는 것이지, 그가 나에게 베풀 것을 기대하고 믿는 것이 아니니까.

믿음이 간다 이런 말을 할 때 상대의 말과 행동이 일치할 때 사용하곤 한다.

말.

서로의 생각을 알려고 하면, 소통이 있어야 한다. 오고 가는 대화나 문장 속에서 상대의 생각을 알게 되고 나와 같은 점은 기뻐하고 다른 것이 있다면 더 깊은 대화를 통해 이해하거나 일치하거나, 아니면 그냥 인정하게 되던지.
또한 행동함으로 그 이해와 신뢰의 수준을 깊게 하는 것.
그래서 상대의 어렵거나 이해 못 할 상황에서도 기다려주고 헤아려주게 되는 것.
그 간에 쌓여가는 많은 작은 역사들, 히스토리.

그런데 지금의 신앙의 수준은 부적과 같아서 믿음의 주체인 나와 상대의 이야기가 아닌 그 결과물에만 주목하는 것이다.
만약 그 부적이 아무런 효험도 없었다면(내 생각에는 통계와 확률의 범주지만) 과연 방송에 나와 기쁨을 보여주고 무한한 신뢰를 보여줬을까?
많은 교회에서 회중기도, 새벽기도, 대표기도, 개인기도 중에 개인의 생사화복에 대한 간구로 넘쳐난다.
나와 하나님 간의 깊은 관계, 신뢰, 소통이 있다면 과연 그 초점이 저런 것에만 맞춰지게 될까?

이 글을 끄적이는 처음에는 부적과 믿음의 차이가 뭔가라고 하려했는데 쓰다보니 이 시점에 그간 성경을 멀리 하고 있던 나에게도 새로운 목적이 생긴다.
한 동안 왜 성경을 읽어야 하는가 하는 회의감이 들었었다.
주변에 보이는 성경통독, 성경백독, 성경필사 등등… 너무도 많은, 알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 성경에 대한 행사들은 나같은 이들에게 되려 거부반응만 일으켜왔음을 고백한다. 성경을 백독했더니 병이 나았어요, 축복이 넘쳐요 등등. 그래서 대체 저 모습이 부적과 다를 게 뭔가라는 등등의 생각들.

물론 그 과정 속에 진정으로 하나님과의 대화의 장에 빠진 분들도 있겠다. 그래서 그런 노력과 수고를 폄하하고만 싶지는 않다. 그렇지만 마치 그것만이 목적인양 진리인양 나팔처럼 불어대는 소음이 너무 많아서 피로했다.

하지만 친구는, 신뢰하는 이는 서로 대화한다. 소통한다. 그것은 말이고 대화다.
하나님은 나에게 어떻게 소통하시는가? 성경 아니겠는가?

성경 아니라도 이 세상이 그 분의 존재를 알려주지 않는가라는 생각도 했었다. 굳이 성경 자주 안봐도 세상에 뿌려져 있는 하나님의 흔적만 봐도 은혜롭지 않은가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믿는 이가 멀리 있을 때 그를 그리워하며 그의 흔적을 통해 그를 기억하는 것도 있지만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한계가 있다. 그래서 간간히 편지도 하고 전화도 하고 여차하면 어디선가 만나서 서로의 안부를 묻기도 하는 것 아닐까? 그런데 나에게는 그 분이 남겨놓은 글들이 몇천년 동안 보존되며 여지껏 펼쳐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성경을 내 옆에 덩그러니 놓고 ‘봐라. 내 말이다. 쓸쓸해하지 말고 외로워하지 말고, 의심하지 말고 내 말이니까 늘 두고 봐, 곧 올게’라고 하시는데 이제 안 볼 수 있나?

라고 이렇게 끄적여놨는데 과연 1년 쯤 뒤에 나는 어디 즈음에 있을까? 그래서 주변에서 나를 체크해 줄 필요를 느낌. ㅎㅎ

참고 : http://ssje.org/ssje/2013/04/07/what-it-means-to-have-faith-in-god-br-david-vryhof/


국내에서 알려진 제목은 '로스트 인 더스트'
아마도 황량한 텍사스의 기후를 인용한 듯.

저런 풍경에서 집하나만 가지고 혼자 살아가고 싶은 생각이 마구 들게한다.

풍경과는 별개로 대를 이어지는 가난. 나라도 해결못하고 더 궁핍해지는 환경.
자식들에게만은 그 흐름을 끊겠다고 형과 함께 은행털이를 계획.
형은 동생을 대신해 희생되지만 살아남은 동생은 그 돈을 자신에게가 아닌 
모두 전처와 자식들에게 돌려준다.

언뜻 저런 행위가 정당한 건가라는 의문이 들지만 요즘 세상 돌아가는 거 보면, 특히 순siri나 재드래곤 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그들의 것을 강제로라도 모든 국민에게 돌려줘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그 강제가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더라도. 그들이 이미 법의 테두리를 아니 테두리 안에 있는 듯 가장하여 심각히 벗어나 있는데도 정작 그 테두리안의 국민들에게는 룰을 지키라고만 한다. 세월호의 아이들에게처럼. 가만히 있으라고.

영화 내내 씁쓸했다. 마지막 그 황량한 텍사스의 모습이 주는 광활함이 마음속에 더해주는 퀭함...

Directed by David Mackenzie. With Dale Dickey, Ben Foster, Chris Pine, William Sterchi. A divorced father and his ex-con older brother resort to a desperate scheme in order to save their family's ranch in West Texas.
IMDB.COM


올해 초엔가 초등학교 6학년 큰 아들이 '트럼프처럼 저렇게 막말하는 사람이 어떻게 대통령이 되려고 할까요?'라는 질문을 했다. 그냥 맞장구 쳐 주려다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니 저 트럼프가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40대 이상이면 트럼프에 대해 많은 이들이 잘 아테다. '부동산 재벌'. 부동산이라는 단어는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부정적이긴 하지만 하여간 경영에 대해서는 매우 탁월한 사람이다라는 게 지금까지의 인식이었다.
그런 사람이 미대선에 나온다고 하더니 매일같이 막말파문을 일으키고 그 파문이 거대한 파도가 되서 결국엔 미국 대통령까지 가게 했다.

https://youtu.be/dE2Dl6E1AIQ

오늘 퇴근길에 우연히 80년대부터 지금까지 트럼프의 주요 인터뷰 또는 연설 장면을 보게 됐다. 자기 소신이 매우 뚜렷하고 똑똑한 사람인 것은 맞다. 게다가 그 영상을 보는 내내 작년에 매우 흥미롭게 봤던 책과 오버랩 되면서 더더욱 트럼프란 인물을 너무 가볍게 본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책은 '아틀라스'

출간된 지 반세기가 지났지만 여전히 백인을 중심으로 한 미 주류사회에서 계속 읽히고 있는 책. 주요 내용은 자본주의의 이상과 같은 유토피아는 왜 현실세계로부터 배척당하는 지, 미국이 지향하는 영웅은 누구인지에 대한 책이다. 계몽소설 같기도 하지만 미국이라는 나라의 생리를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다. 그 책의 주인공과 같은 전능함, 초인성을 겸비한 인물로 현실 버전에 해당하는 게 트럼프 아닐까 싶다. 내가 그렇게 여긴다는 게 아니고 미국의 백인을 중심으로 한 중산층(또는 중산층에서 밀려나간 하위계층 포함해서)이 그렇게 열광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트럼프가 이명박과는 달리 자기 나라의 체질개선에 대해서는 나름 개선책을 가지고 진행할테고 나름대로의 성과를 얻을 것도 같다. 대선 중에 그의 막말은 계산된 매우 치밀한 막말이었을 뿐이라고 생각하며, 영상을 보니 그런 생각이 자연스레 들게 된다. 물론 한국의 이명박처럼 국가를 수익사업의 대상으로 전락시킬 가능성도 많다. 우리는 이미 겪어 봤잖은가?

아무튼 앞으로 미국은 자기 나라의 일에 점점 더 관심을 가지게 될 테고 그만큼 외부의 일에는 손을 놓게 될 테다. 어차피 세상의 대부분의 나라와는 대서양, 태평양을 두고 멀리 떨어져 있는 만큼 지정학적으로 자국에 대해서만 신경쓰는 게 가능한 형편이니까. 경찰국가? 이런거 개나 줘버려. 이런 생각을 확고히 굳히게 될 테고, 그 만큼 내 집 주변의 담장은 더 올릴테다. 내 코가 석잔데 남의 일에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기 싫다. 이건 거.

이제 팍스 아메리카는 한동안 사라질까? 그 공백이 주는 영향은 상상하기 힘들 듯 하다. 무주공산에 여우가 왕노릇 한다는 말도 있는데, 앞으로 우리나라 주변은 시끄러워 지겠다. 지금까지는 미국이 그래도 세계정세를 주도하려고 자기 집 사정이 안좋더라도 무리를 했지만 이젠 그런거 당분간 기대하기는 힘들테니. 미군의 철수 같은 것도 상대국가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이었지 정말 빼내가리라고는 여지껏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젠 상황이 바뀌었다. 정말 나갈 수도 있다.... ㅎㅎ

미군이 빠지면, 물론 일본까지 빼지는 않으리라고 여기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일본에서도 발 뺄지도. 자국의 이익에 조금이라도 (-)가 되는 일에는 절대로 손대려 하지 않을 테니. 20세기 초의 일이 재현될까? 우리는 대통령 잘(?) 뽑아서 나라 기둥뿌리가 뽑히게 생겼는데, 그 기둥뿌리가 아예 뽑혀 나가게 될 지도 모르겠다. 중국의 한 성으로 편입될까? 남한은 한양성, 북한은 평양성 이렇게? 아니면 북한은 중국이 먹고 우리는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거나. '동북아는 그들이 알아서 하도록 둬!'라고 분명 천조국의 대장이 그럴테니.

힘의 공백으로 생기는 파장이 우리 삶에 어떻게 영향을 주게 될까?

트럼프가 여지껏 막말쇼를 보여줬지만 자기는 대통령이 되기 위한 연극이었을 뿐 지금과 크게 바뀌지 않으니 걱정말라고 하지는 않겠지?

제주 여행 루트 만들기(관광지만)





인쇄술이 보편화되기 전까지 사람들의 신앙은 생활 속에서 겪는 많은 일들을 통해 내면의 독백과 되새김을 거쳐 자라나고 이것을 공동체와의 나눔을 통해 성장했다. 하루하루의 삶속에 지쳐있는 사람들에게 신앙의 세계에 접촉할 수 있는 기회는 일주일에 딱 한 번의 예배였을 것이다. 그나마도 설교자 옆에서 또렷이 말씀을 들어보는 것은 감히 꿈에도 꿔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많은 위대한 신앙의 선배들은 그런 상황 속에서도 믿음의 길을 걸었고 현대인들이 바라는 그런 성스러운 삶을 살았다. 요즘처럼 수많은 설교자의 주옥같은 말씀, 깊은 신앙의 세계로 안내할 책들을 전혀 접할 수 없었음에도 현대인에게 귀감과 도전이 되는 그들의 신앙은 어떻게 자라난 것일까?

믿음은 들음에서 나는 것이다라는 성경말씀처럼 들음에 있어서는 요즘과 비할 바 없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시기에 과연 어디서 들음을 얻을 수 있던 것일까?

반면 정보화시대 속 현대인은 평생 들어도 남아도는 수많은 설교와 신앙서적 속에 있다. 매 주일도 모자라 수요일, 금요일, 심지어 매일의 새벽예배. 주일 또한 한번의 예배가 아닌 시간대별로 쪼개 여러 예배가 있어 거의 매시간마다 주께 드리는 예배가 열리고 있다.

이러한 풍요함 가운데서 신자들의 믿음은 들음의 기회가 늘어남에 따라 같이 성장했을까? 이러한 의문을 가지는 것이 회의적인 것으로 여겨지겠지만 그럼에도 그 차이는 무엇인가 궁금해진다.

최근에 읽은 '생각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책에서 17세기 이후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에 힘입어 증가한 인쇄물이 인류에게 끼치는 영향을 보면 삶은 풍요로워지는 반면 점점 정신세계는 이전보다 되려 후퇴한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보여준다.

그래서 요즘 많은 사상가들은 인류 역사상 모든 면에서 가장 풍족한 이 시기가 인류가 퇴보하는 분기점이 아닌가라는 역설적인 평도 한다.

신앙의 세계도 마찬가지여서 말씀은 넘쳐나고 아멘의 소리는 전세계의 교회마다 커져만 가지만 정작 본질은 없고 껍데기만 남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현실화되는 것 같다. 우리나라만 봐도 불과 십수년전까지만 해도 교회는 사회를 받쳐주는 든든한 반석같았지만 지금은 기둥은 낡고 낡아 뭔가로 대체되어야 할 것 같은 위기 상황에 있다. 우리만의 문제는 아닌 것은 앞서 말한 내면은 텅 비어가는 인류의 현재 상황과 맞물려 전 세계적인 현상인 듯도 하다.

나의 생각은 없고 정리되지 않고, 쌓여있지도 않고, 되새김할 것이 없어 결국 말씀은 넘쳐나나 속에서 수용하지 못해 그냥 배설되어 버리는 것이다. 대체 이러한 상황은 어떻게 개선될 수 있을까? 생각없는 사람들을 다시 생각하는 존재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할까?



아이패드를 쓴 지도 벌써 햇수로만 7년째입니다. 아이패드 1을 미국에서 들어오시는 분을 통해 입수한 후로 아이패드 2, 3, 에어1 까지 참 애플에 충성스러운 고객임을 자처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 안드로이드 쪽에서도 많은 태블릿들이 나왔습니다. 스마트폰과는 다르게 태블릿 카테고리에서는 워낙 아이패드가 강력하게 리드를 해서 사용하는 유저입장에서도 부족함이 없다고 느끼며 지내왔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갤럭시노트와 같이 펜의 입력도구를 차이점으로 부각하며 나오는 장비를 보며 뭔지 모를 부족함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분명 스티브 잡스는 열개의 손가락을 신이 주신 최고의 입력장비라고 한 적이 있었죠. 그 말을 들으며 저도 썩소를 날렸던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잡스어록을 금과옥조처럼 받드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저 부분에서 저는 잡스의 언행이 일치하지 않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잡스는 대학시절에 서예에 같은 캘리그라프 과목을 청강하면서 폰트의 중요성에 눈 떴던 것으로 압니다. 캘리그라프는 최근에도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는 분야로 취미 또는 아예 전업으로 하는 분들이 있을 정도죠. 그 캘리그라프, 서예, 펜글씨 모두 펜과 같은 입력도구를 이용합니다. 금속성 펜촉의 질감과 필압을 이용한 다양한 글씨체의 변화는 손가락만으로 해볼 수 있는 것이 아닌 거죠. 서예도 붓을 구성하는 털의 종류, 크기에 따라서 다양한 서체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손가락 말고도 입력에는 여러 도구들이 존재하며 나름대로의 영역이 오랜 세월 구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애플펜슬 이전부터 여러 스타일러스들이 있었고 저 또한 사용해봤습니다만 입력의 신속, 정확한 점에서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애플만의 스타일러스를 원해왔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패드 프로 시리즈를 통해 애플펜슬을 쓸 수 있게된 것은 애플이 늦게서나마 저 부분을 이해해주고 조금씩 잡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 아이패드프로 9.7

저는 아이패드 프로 9.7과 애플펜슬을 한국출시에 맞춰 구매했습니다. 아이패드는 에어1때와 같이 애플 공홈을 통해 셀룰러 모델로 했습니다. 아이폰의 데이터를 공유하는 '데이터쉐어링' 상품을 쓰는데 프로모션이 되서 실제 사용료는 없습니다. 요즘은 아이폰의 핫스팟 기능을 자연스럽게 이용해서 와이파이 모델만으로도 잘 된다고 하지만 아이패드만을 가지고 있는 경우와 같은 결정적인 상황에서 셀룰러 기능의 부재가 커서 전 에어 이후로 셀룰러만을 이용합니다. 덤으로 GPS 기능이 있는 것도 매력적입니다.


프로 시리즈가 에어의 확장이냐 아니냐를 가지고 논란이 좀 있는 것 같습니다. 6월 이후에 에어 3가 나올테고 프로 시리즈가 팽 당할거라는 둥 말이죠. 어찌됐든 애플펜슬 하나만으로도 프로의 가치는 아주 높습니다. 여하튼 에어 1을 써왔던 저로서는 프로로 넘어와서 크게 성능의 향상을 느낀다거나 하는 것은 없었습니다. 에어1의 성능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스펙을 봐도 클럭이 올라가고 램이 늘었지만 주로 사용하는 앱들이 성능을 요구하는 것들이 아니다보니 프로로 넘어와서도 성능에 따른 만족도는 그저 그렇습니다. 다만 지문인식이라던지 스테레오 스피커 지원 같은 것은 좋습니다. 또 살짝 얇아지고 무게도 가벼워진 점도 좋죠. 이미 아이패드 프로 12인치 이후로 많은 분들의 사용기가 올라오고 있으니 저의 아이패드 프로에 대한 평가는 이 정도에서 마치겠습니다.



▶ 다음은 애플펜슬.


제가 굳이 아이패드 프로로 넘어오게한 원흉(?)인 애플펜슬입니다. 가격이 비싸다고들 하는데 제 생각엔 성능에 비해 오히려 싼 게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제품은 잘 아시다시피 애플펜슬과 펜촉 여분 1개, 그리고 라이트닝 케이블 연결 젠더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갤럭시 탭이나 노트, 그 외의 태블릿 지원 스타일러스들은 기능만을 위해 디자인을 삭제하다시피 한 게 많았습니다. 물론 태블릿에 수납하도록 해서 휴대성을 높이기는 했지만 입력을 하는 의미는 글짜의 모양이이라는 가장 중요한 요소를 감안했을 때 극악스러운 파지법을 유발하는 것은 그간 정말 제가 혐오하다시피 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애플펜슬의 디자인은 여지껏 수세기간 이어져 온 인류의 입력도구인 붓, 펜, 연필의 그것을 그대로 이어놨습니다. 저는 참 잘한 점이라고 여깁니다. 꼭 태블릿과 함께 있어야하는 것보다 입력도구 그 자체의 존재감을 부각하는 거 말이죠. 그래서 주머니에도 넣고 별도로 보관하기도 하고 - 소중한 도구인 것입니다. 저도 소시적엔 한 붓글씨 했었는데 그 때 몇십만원 주고 산 좋은 붓은 다른 붓들과는 다르게 보관하며 소중히 여겼던 것이 떠오릅니다.

실제로 손에 쥐어서 입력하면 예전 느낌 그대로입니다. 다만 종이에서 유리위에 쓰는 게 달라진 점입니다. 그래서 좀 미끄럽다는 것과 종이에 쓸 때처럼의 질감은 느낄 수 없습니다. 이 부분도 앞으로 기술의 발전에 따라 지원 가능할까요? 아니면 그냥 고대유물과 같은 것으로 치부될 지는 지나봐야 알겠죠. 앞으로의 세대가 이전세대와 같이 종이를 접할 기회는 점점 줄어들 테니 말입니다.

자~ 좋은 입력도구가 있으면 그에 걸맞은 앱도 있어야겠죠? 워낙 많다보니 그 중 몇가지만 제가 잘 쓰는 앱을 말씀드리면 저는 노트앱으로 'NOTESHELF', 'PENULIMATE'를 씁니다. noteshelf는 예전부터 써왔던 앱이라 gootnote와 같은 앱과 비교해서 어떨지는 몰라도 저에게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penultimate는 잘 알려진 대로 evernote에서 인수해서 그런지 작성된 페이지는 자동으로 에버노트와 싱크되는 편리함이 있습니다. 가장 가볍게 편하게 쓸 수 있는 점도 좋습니다. ’Procreate’과 같은 편집툴은 간간히 사용하기 하는데 역시 펜슬이 있고 없고에 따라 품질이 확연히 달라지네요. 그만큼 세밀한 터치가 가능해서이죠. 그 외에는 특별히 더 써 본 앱이 없는데요 더 필요한 용도가 없어서이기도 합니다. 



이제 사용한 지도 한달이 지나가는데 몇가지 단점이 눈에 띄기는 합니다. 먼저 장시간 미사용 시 연결해제가 되는데 이 경우 다시 연결하는 방법은 블루투스 설정에 들어가거나 펜슬을 직접 아이패드에 연결하는 건데 이 때 좀 모양새가 어중간해서 어디다 놓기가 애매한 부분이 있습니다. 



또 기본적이 재질 탓이기도 하지만 아이패드 유리면에 닿아서 글을 쓸 때 미끄러지는 느낌은 분명 펜을 쓰는 것과는 다른 이질감이 있습니다. 애플펜슬팁을 좀 더 마찰력이 있는 재질로 바꿔서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상 1개월 간 아이패드프로 9.7과 애플펜슬 사용후기였습니다. 

역시 마지막엔 이거 누구에게 추천해야 할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지껏 여러 스타일러스로 고민해 온 아이패드 유저가 있으시다면 매우 강력히 추천합니다. 이전과는 다른 세계가 열린다고 장담합니다. 물론 스타일러스 없이 잘 사용한 분들께는 그다지… ^^;



바햐흐로 전자책의 시대가 성큼 다가왔습니다.

미국이나 외국은 벌써 왔지만 우리나라는 it강국이라는 수식어와는 걸맞지 않게 여러군데 구멍이 많았습니다. 특히 전자책 쪽은 상당히. 그래도 요즘 리디북스 같은 업체가 열심히 해주다보니 이젠 ebook에 대한 갈망은 많이 해소된 듯 하죠. 스마트폰과 태블릿이 보편화되다보니 많은 도움이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 eBook 리더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태블릿 놔두고 뭐하러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만, 기기가 하나 더 는다는 수고가 있더라도 이북리더가 눈에 주는 편안함을 생각하면 포기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킨들과 같은 기기가 너무 부러웠던 것이구요.


현재 우리나라에서 이북리더라 불리고 쓸만한 기종은 2가지 입니다. 리디북스의 '페이퍼',  yes24의 '크레마'죠. 페이퍼(lite 포함)과 크레마 모두 안드로이드를 os로 사용합니다. 차이점은 크레마는 안드로이드 os를 별다른 제약없이 사용하도록 되어있어 타사 이북리더앱도 사용할 수 있는 반면, 페이퍼는 폐쇄적으로 수정되어 리디북스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만 사용토록 되어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기기 성능과 제원에 가장 최적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장점이 있습니다. 물론 루팅도 가능하지만 전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은게 그럴 바엔 그냥 아이패드 쓰는게 더 낫다라는 생각이 들어서죠.



http://paper.ridibooks.com/Intro (리디북스 페이퍼 홈페이지)


리디북스는 종종 페이퍼를 포함한 할인행사를 하곤 하는데 저도 그 기회를 이용해서 고전문학 및 여러장르 서적을 포함한 8백여권을 사면서 페이퍼 라이트를 구하게 됐습니다. 벌써 사용한 지도 6개월 정도 되는군요. 처음에 아이패드와 아이폰이 있는데 이 기기를 계속 쓰게 될까라는 걱정이 있었는데 정작 써보니 만족스러웠습니다. 해상도도 충분했고, 무게도 가벼워 휴대에 좋았습니다. 특히 고급 재질이 아니다보니 스크래치 등을 신경쓰지 않고 마구(?) 가지고 다니기에 좋았구요. 



전용앱으로 책을 다운받고 하는 것은 매우 편리합니다. 검색 등도 편한 위치에 있어 본문 내 검색이라던지, 소장 책 중 찾기 등의 기능도 잘 됩니다. 다만 구매한 책 중 전집류는 책 찾기가 전집으로 찾아져서 해당 책을 찾으려면 일일히 페이지를 넘겨서 찾아야 하는 점이 있는데 이건 개선해줘야 할 대상입니다. 


또한 여러 기기간 동기화의 경우 간혹 아이패드나 아이폰으로 같은 책을 보던 곳의 싱크도 원활해서 이어서 읽기가 편합니다. 



리더를 한 손으로 쥐고 읽을 때 아이패드의 경우에는 부득이 화면이 잡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경우 애플은 손가락이 잡힌다는 가정하의 알고리듬을 적용해서 일정부분 터치영역을 제한합니다. 페이퍼의 경우에는 화면잠금 기능으로 이것을 적용하는데 예전에는 한 손가락으로 해제하게끔 해놔서 종종 락이 풀려버렸는데 최근 업데이트를 통해서 두 손가락이 일정시간 동안 누를 때 해제하게끔 해서 제대로 된 화면잠금을 지원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리더를 편하게 아무렇게나 쥐고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와이파이를 지원하기 때문에 당연히 인터넷 접속도 가능하지만 매우 제한적입니다. cpu의 한계인 것도 있지만 리더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게 하기 위함인지 리디북스의 지원도 매우 제한적입니다. 잘 한 일이라고 봅니다. SD카드를 지원하기 때문에 외부 파일을 볼 수 있습니다만 제 경우엔 활용도가 없어서 그냥 비워뒀습니다. 충전은 micro-usb 를 이용하므로 일반 스마트폰 케이블로도 충전가능합니다.


단점이 몇가지 있긴 한데 반응속도입니다. 전자잉크의 단점이라고는 하지만 제가 보기엔 기기자체의 성능이 받쳐주지 못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터치를 했을 때 반응하는 게 굼뜨다보니 답답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터치의 정확성도 애매해서 밑줄을 긋고자 했을 때 손가락의 위치 설정이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여하튼 두서 없었지만 6개월 간 사용하면서 이렇게 저렴하면서 만족감을 주는 기기는 흔치 않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더더군다나 책을 읽는다는 좋은 습관을 편하고 즐겁게 해주는 것에서 더더욱 그렇습니다. 책을 읽다가 중요한 부분에 밑줄을 긋고 책갈피를 하고 어려운 단어나 부분은 사전과 검색을 통해 즉각 확인이 가능하니 이전처럼 읽다가 다른 기기에서 찾다가 엉뚱하게 인터넷 서핑이나 하던 시절과는 다릅니다. 그리고 페이퍼와 페이퍼 라이트에서 갈등하시는 분들께! 책만 보신다면 페이퍼 라이트로도 충분합니다. 다만 만화까지 고려하신다면 당연히 페이퍼로 가시고요. 끝.~~





올해도 어김없이 야구의 계절이 왔습니다.

영원한 해태 타이거즈 팬인 저는 역시 2016년도 세인트루이스 카디날즈를 응원합니다(?).


올해는 한국 선수들이 대거 진출한 데다, 드디어 카즈에도 한국 선수가 영입돼 앞으로 종종 카즈의 경기를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역시나 MLB the Show 또한 2016버전을 출시했죠. 참 돈 벌기 쉬운 회사입니다. 일단 경쟁사들이 죄다 사라져서 느긋한 개발사죠. EA랑, 2K도 나가떨어지고 최근엔 KONAMI마저 게임회사이기를 저버리는 가운데 유일한 실사판 야구게임입니다. 물론 워낙 걸출한 게임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서 여전히 쇼만 하게 되겠지만 아무튼 최근 몇 년간 그래픽의 변화 없이 로스터만 바꾼 듯한 느낌을 많이 받게 하는 게으른 게임임에는 틀림없을 겁니다. 





그래도 역시 야구는 꼭 그래픽이나 외부적인 것만으로 하는 것은 아니죠. 게임성!! the show는 2000년대 중반부터 이어져 오는 그 쫀득쫀득한 게임성이 탁월합니다. 


아무튼, 올해도 역시 홍관조 녀석들을 데리고 시즌을 진행합니다. 오승환, 박병호, 이대호 등이 정규 로스터에 아직 안 올라왔길래 한국 유저들이 올려놓은 vault를 내려받아서 정규 로스터에 편입시켰습니다. 물론 추신수, 류현진, 강정호는 당당히 등록되어 있습니다. 강정호는 작년의 큰 활약에 힘입어 해적들 4번 자리에 떡 올라가 있더군요.


어제 구입해서 다운로드 걸고 오늘 쉬는 시간에 해봤습니다. 정규시즌 개막전이 바로 카즈와 해적의 싸움이네요. 실제로도 그렇죠. 4월 3일, 그러니까 한국시각으로는 4월 4일이 되겠습니다. 피츠버그 PNC파크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물론 저는 그 경기를 미리 맛보는 것이죠. ^^ 강정호는 아마도 5월 정도에 복귀할 예정이라고는 합니다만 게임상에서는 정규 로스터에 주전으로 올라와 있었습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당당히 4번!!


1경기 뛰어본 소감으로는 2015버전에 비해 타격 후 공의 궤적이 상당히 다양해졌다는 느낌입니다. 특히 파울의 경우 그렇습니다.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투구 시 구질의 변화가 예전보다 좀 더 리얼해진 것 같기도 하구요. 그리고 주목할 점은 튜터리얼 시스템이 새롭게 잘 추가됐습니다. 처음 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기존에 해왔던 분들도 도움이 될 만큼 자연스럽게 되어 있습니다.



(2회말, 강정호)


개막전 1회 초 2득점하면서 순조롭게 출발하고 1회말 웨이노의 깔끔한 이닝처리. 2회말 강정호의 타석에서 커브 2구째 홈런을 맞았는데 작년에 강정호를 다시 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선수 모델링도 잘 되어있습니다. 9회에는 돌부처 오승환이 올라왔습니다. 정식버전으로 지원받은 게 아닌 유저제작판이긴 해도 돌부처의 느낌이 살아 있습니다. 매커친과 강정호를 연속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데는 강력한 패스트볼이 최고죠. 



(9회말, 오승환)



실제 시즌도 그렇습니다만 앞으로 이어질 162경기. 매일매일 할 수는 없지만 올 하반기까지는 즐거운 야구 인생이 쫙 깔리네요. 오승환 덕에 카즈 경기도 더 볼 수 있을 테니 더욱 기대 중입니다.



(경기 하이라이트)



마지막으로 PS4로만 접할 수 있는 이 시대 유일의 야구게임인 the Show. 뭐 아쉬운 점도 있긴 하더라도 여전히 최고의 야구게임입니다. 다만 한 플랫폼만 지원하는 건 좀 어떻게….


앞선 포스트에서 마우스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번에는 키보드!

3년 전부터 역시 로지텍의 키보드를 써왔습니다. 특이하게도 태양광을 소스로 하는 K760입니다. 단순히 태양광이라는 이슈만 가진 게 아니라 블루투스로 동시 3개의 기기를 지원하는 매우 유능한 키보드입니다. 그래서 매우 만족스럽게 써왔습니다만 몇 가지 흠이 있다면 블투이다보니 PC가 부팅될 때 직접 제어가 안 돼서 부득이 유선 키보드 하나를 연결해야 하는 것과 키패드의 부재로 별도로 무선 키패드를 써야만 했던 점이 있었습니다. 무선 키패드(N305)도 역시 로지텍이었는데 이게 패착이었던 것 같습니다. 믿고 쓰는 로지텍인데… 특히 배터리가 발군이었다고 믿고 있었는데 이건 전혀 아니더군요. 하여간 맡은 업무가 타이핑할 일이 특히 키패드 사용할 일이 많아져서 새로운 키보드에 눈을 돌리게 됐습니다.



역시 필요한 사양한 멀티디바이스 지원(블투 지원은 당연)과 키패드 포함한 기계식 타이핑 키보드를 찾던 중 예전에도 한 번 봤다가 가격에 놀라 지나쳤던 그 녀석을 다시 찾게 됐습니다. 어쩔 수 없더군요. 제대로 된 기기는 그것뿐이었기에.

타이핑하며 손가락과 귀에 전해지는 느낌은 참 청량하다고 할 수준이었습니다. 키보드를 치면 뭔가를 부드럽게 썰어내는 듯한 느낌이 참 좋습니다. 그러면서 과하지 않은 사각거리는 타이핑 소리는 적절하게 울립니다. 제가 구매한 제품은 갈축입니다. 갈축, 청축, 흑축 여러 개가 있더군요. 기기의 메카닉은 거의 같지만 앞서 말한 촉각과 청각에 영향을 주는 부분을 달리하더군요. 다 직접 만져보고 싶지만 그러려면 용산까지 가야 하는 부담이 있어 여러 유저들의 평가만으로 가장 무난하다 싶은 갈축을 선택했습니다. 다만 눌리는 게 뜻밖에 가벼워서 처음에 약간 뭐가 잘못된 걸까 할 정도로 의아하긴 했습니다.




멀티디바이스 지원에서 무려 5개나 지원합니다. 이전에 쓰던 건 3개였지만 2개 더 추가해서 아이폰, 아이패드, 플스4, 맥북, 사무실 PC까지 완전히 커버합니다. 이 중 4개는 블루투스로 연결하고 나머지는 유선으로 연결합니다. 당연히 업무용 PC를 유선으로 했습니다. 부팅 할 때 CMOS 진입도 가능하게 돼서 참 좋습니다. 거기다 간혹 리눅스로 부팅 시킬 때도 이전처럼 블투 찾느라고 시간 소비할 필요 없이 바로 인식하니 편리합니다.
(디바이스 간 전환은 ctrl + alt + FN에 숫자를 적용합니다. 1~4는 블투, 5번은 유선입니다. 이 부분은 불편하더군요. 로지텍이나 다른 유사한 제품들은 펑션키에 지정하고 키 하나만 누르면 바로 전환되니까요)

블루투스 지원이니 당연히 무선으로도 쓸 수 있습니다. 그 경우 건전지를 넣어서 쓰면 되는데 이미 유선으로 쓰고 있는 터라 건전지 없이도 PC의 전원으로 블투 전원을 지원하니 역시 좋습니다. 굿!

그 외 이 키보드에 대한 소개는 많은 블로거들이 많이 올려놨기에 생략합니다만, 추천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고민이 되죠. 기계식 키보드만을 원한다면 마제스터치는 비쌉니다. 더 저렴하면서도 쓸만한 게 많으니까요. 저도 기계식은 90년대 이후로 처음이라 뭐가 더 좋다 나쁘다고 할만한 수준도 안 됩니다. 다만 멀티디바이스 지원과 기계식을 합친 경우라면 이거 외에는 답이 없는 듯하네요. 특히 키패드까지!라고 할 때는 더더욱입니다.






언제부터인가 마우스는 로지텍이 진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하드웨어 명가인 마이크로소프트를 어느 때부터인지 제치고 말입니다.

전에는 키보드도 마소, 마우스도 마소 이랬던 것이 이제는 집, 사무실 할 것없이 죄다 로지텍을 쓰고 있습니다.

마우스는 예전에도 포스트 한 적이 있지만 마이크로소프트 익스프롤러에 대한 추억에 사로잡혀 있을만큼 마소제품을 으뜸으로 쳤지만 이제는 로지텍 마우스들의 마성에 사로잡혀 있다고 해야할 것 같습니다.

몇 년 동안 로지텍 M705 두대를 사무실과 집에서 사용했습니다. 건전지 두개로 2년 동안 아무런 걱정없이 쓰게하는 배터리 관리 능력과 손에 딱 들어맞는 구조, 그리고 무한휠, 다수의 로지텍 입력기기를 같이 사용하게 하는 유니파잉칩, 그리고 4개의 버튼. 어느 것하나 빠질 게 없는 마우스입니다.

단! 로지텍 마우스들의 공통적인 문제인 클릭버튼의 문제는 M705도 비껴갈 수는 없죠. 지인을 통해 클릭버튼을 교체하기도 했지만 교체 시의 문제가 있었는지 최근에 기기교체를 결심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로지텍을 찾게 됐죠. 때마침 클*앙에서 극찬을 받고 있는 모델이 있었으니 바로 MX Master와 MX Anywhere 2 입니다.


(MX MASTER)

사무실에서는 MX Master, 집에서는 MX Anywhere 2를 사용 중입니다. 비용이 만만찮죠. 그나마 MX Anywhere 2는 어찌하다 제 돈 들이지 않고 구할 기회가 생겨 바로 구매 했습니다.

여러 블로그나 소셜미디어에서 좋은 평들을 해주고 있으니 저라고 특별히 더 할말은 없지만 이 두 제품 중에 어느 제품을 더 추천해 주고 싶은 지 말하라면 고민하지 않고 무조건 MX Master로 하라고 말하렵니다.


(MX ANYWHERE 2)

물론 Anywhere 2도 MX Master의 축소판이라 할 만큼 좋은 제품이지만, 클릭휠의 프리스핀과 래칫 기능을 자동으로 선택해주는 Smartshift의 유무는 엄청난 경험의 차이를 나누게 됩니다. 대체 왜 Anywhere 2 에서 이 기능을 뺏는 지 이해 할 수 없습니다. 가격도 1~2만원 차이라면 당연히 포함했어야 한다고 여겨집니다.

하여간 최근에는 예전처럼 데스크탑 본체의 성능이 많이 상향평준화 돼서 몇년 지난 사야이더라도 퍼포먼스가 떨어지는 경우는 잘 없습니다. 거기에 소프트웨어 기술의 최적화도 한몫 하는 것 같구요. 그래서인지 하드웨어 업그레이드에 대한 열망은 예전같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외부기기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많아지게 됩니다. 사운드, 입력기기, 모니터 등이 주관심사로 떠오르고 있죠. 좋은 키보드, 마우스, 헤드폰은 다루면서 즐겁기도 하지만 일의 능률도 올려주는 것 같기도 하죠. 여하튼 사용자의 환경이 여러모로 쾌적하게 변하는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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