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아 작가를 알게 됐다. 빨치산, 빨갱이의 딸.
지내온 세월의 무게가 엄청났을 것 같은데 정작 소설에서는 깃털처럼 가볍다.
20대의 작품에서는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지천명의 시기인 50대가 되니 세상을 달관하기라도 한 것일까. 물론 책을 탈고하는 세월이 만만치는 않았겠지만.
유물론자, 사회주의자인 아버지와 어머니를 둔 저자가 그분들의 삶을 세월을 통해 그리고 아버지의 장례식을 통해 이해하고 화해하는 내용. 이념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지만, 세상 일이라는게 이념만으로 획일화할 수도 없고, 그 마저도 사람이 하는 일이니 그래서 사람 냄새가 나는 책이었다. 특히 유년시절 아버지와의 감정적 교류의 여러 지점들은 나의 어렸을 적 아버지, 어머니와의 기억들을 소환했다.
모든 것이 사람이 하는 것이고 그래서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들이 만들어가는 수많은 우연들로 만들어진 인연들이 우리들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책이었다.

이선균을 보내고 나니 이 드라마가 너무 보고 싶어졌다. 묵직한 중저음의 그가 왜 이리도 안타깝게 느껴지는 걸까 싶어서.

드라마도 그가 최근에 겪은 일들의 총합인 듯 인생의 무게를 혼자서 짊어지고 가는 40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드라마 종반에 가까이 와서인가, 해외에 유학 중인 아들을 보러 아내가 없는 거실에서 혼자 있다 감정에 북받쳐 우는 모습에서는 왜 저러는지 그냥 공감이 되는 장면이 있었다. 뭔지 모를 인생의 버거움과 외로움이었니 않을까?

인간은 사회를 벋어나서 살아갈 수 없다고 하고 그래서 공동체가 필요하다지만 결국 삶의 본질적인 문제는 인간 개인 스스로의 몫이다. 그러기에 누구도 그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거나 대신 저줄 수 없다. 결국 스스로가 그걸 헤쳐나가고 극복하는 수밖에 답이 없다. 물론 도움은 받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런 점에서 보는 내내 ‘박동훈’이라는 인물이 부모, 형제, 아내, 동료, 선배, 후배 등등 수많은 인연들로 둘러싸여 있었음에도 계속 마음 속에 뜻 모를 짐들이 자리 잡고 있었고 그로 인해 힘들어했음에 많이 공감이 갔다.

인간은 외로운 존재다. 같은 인간끼리는 그 외로움을 본질적으로 없앨 수는 없다. 결국 전혀 다른 존재의 개입만이 답이지 않을까. 하나님만이, 예수님만이.

그래서 이선균의 자살은 참 안타깝고 아쉽다. 드라마에서처럼 ‘아무 것도 아니야’라고 누군가 얘기해 주었다면.

그런 지점에서 대체 교회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같은 편이 되어주지는 못할 망정, 외면하고 정죄하기에 급급한 현실을 보자니 말이다. 아마 앞에서는 아니라도 저 멀리서 뒷짐 지고 혀나 끌끌 차고 있지 않았을까?

 

My Mister (2018) on IMDb

#나의아저씨 #이선균 #존재 #인생 #삶

 

아랍, 그곳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 - 10점
팀 매킨토시-스미스 지음, 마틴 요먼 그림, 신해경 옮김/봄날의책

 

“저자는 이슬람 여행자들의 수호성인인 알-카디르와 영국의 수호성인인 성 조지가 같은 인물이라는 걸 깨달았고, 무슬림인 이바가 들어가지 못했던 하기아 소피아 성당 내부를 이바를 대신해 돌아본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슬람과 그리스도교의 상징, 이슬람의 추상화된 하나님과 그리스도교의 인간화된 하나님 형상이 나란히 걸린 것을 발견한다.

성인들의 무덤을 찾으며 작은 기적을 입기도 했던 이집트는 격렬한 아랍의 봄을 앓으며 무바라크를 축출하는 데 성공했지만 처음으로 국민들이 뽑은 대통령은 군부 쿠데타로 축출되어 지금 사형집행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 바바를 만나 세마의 감동을 맛보았던 터키는 최근에 수도 앙카라에서 일어난 대규모 폭탄테러를 포함하여 곳곳에서 폭탄테러가 벌어지고 있다. 글자 그대로 이름이 없는 '익명' 호텔에서 보드카에 취해 춤을 추었던 크림자치공화국은 우크라이나와 결별하고 러시아에 병합되어 새로운 냉전체제의 도화선이 되었다.

~

그리고 시리아. 천 년 묵은 수차가 돌고, 지옥 위에 산상 노인의 성채가 펼쳐졌던 그곳은 벌써 4년 반이 넘도록 전쟁에 시달리고 있다. 연일 공습이 계속되고 정부군과 반군, 수천 년 된 유적들을 여봐란 듯이 파괴해버리는 IS가 날뛰는 그 땅에서 벌써 25만 명이 숨을 거두었고 인구의 반이 난민이 되었다. 전 세계 국가들이 국경을 닫아걸고 있다. 어쩌면 수많은 사람들이 벌써 마음을 닫아걸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환대가 없는 시대를 살아가야 할 처지에 놓였다.

그곳의 사람들은 아직 14세기의 마음을 지니고 있다. 저자는 탕헤르의 택시 운전사에게서 축복을 받았고, 이집트 사막 한가운데에서 만난 여인들에게서 포용을 얻었으며, 함께 탐험에 나서준 영민한 터키 소년에게서 우정을 구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그중에서도 이바 시대의 파편을 가슴속에 지닌 사람들이야말로 저자가 찾고자 했던 이바의 환생, 가뭇없이 사라질지도 모르는 공존과 조화의 시대를 붙잡아줄 마지막 희망일 것이다.” <옮긴이의 후기 중>

책 제목이 원어 제목과 다른 점이 다분히 의도적이기는 하지만 이 책의 숨겨진 의도(라기 보다는 의도하지 않은)아닐까 싶다.
요즘 나라와 나라, 종교와 전쟁, 민족과 민족, 지역과 지역 간 크고 작은 분쟁과 전쟁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저 위 정치적인, 저 아래 개인 대 개인 간의 다툼이나 이견으로 시작된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가까이서 터 놓고 지내보면 결국 아무것도 아닌 일일 수도 있는데 안타깝다. 거창하게 대의, 명분, 정의를 부르짖다가 결국 원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내놓게 된다. 물론 모든 경우가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대다수는 알고보니 어이없는 것으로 시작되는 수가 있다는 것.

아무튼 이 책 읽는 내내 어려운 점이 하나 있었는데 지명이며 인물 이름이여 대다수 '[알(al)'이 붙다보니 혼란스러웠다. 그 지역의 특성이니 감수할 사항이긴 하다. 게다가 저자는 동일한 이름의 반복을 꽤 피하고자 한 듯 해서 방금 지목한 사람의 이름이 곧 다른 별칭으로 바꿔버리다보니 글 읽는 내내 무슨 미로 속에서 길 찾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요즘같은 코로나 시국에 북아프리카에서 시작해 아라비아 반도, 레반테 지역, 아나톨리아, 마지막으로 요즘 가장 핫한 크림반도를 대신 다녀올 수 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고 매력적이다. 좀 더 재미있게 보려면 구글어스같은 맵 어플 옆에 끼고 해당 지역의 사진과 지형을 참고하면 너무 좋다. 14세기의 이바가 이십년 넘게 저 지역들을 다녔다면 21세기의 저자는 비행기와 차량을 통해 짧은 기간에 추적했다. 그렇다면 2022년을 살고 있는 우리는 스마트기기까지 더해서 그냥 앉은 채로 그 지역을 찾아가 볼 수도 있다. 다만 여지껏 배경지식을 알 수 없어 헤맬 수밖에 없었다면 이 기회에 저자를 믿고 따라가보면 재택여행이 충분하리라 본다.

 

 

첫 번째 사례.

내가 쓰던 에어팟 프로는 2019년 발표 직후 구매한 제품. 2년 넘게 쓴데다 구매 당시에 애플케어 가입 안 한 제품.

몇 개월 전부터 왼쪽 유닛에서 잡음이 들려오던 중, 오른쪽 유닛까지 잡음 발생 하더니 도저히 정상적으로는 들어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보증기간은 한참 전에 지난데다 애플케어도 적용 안되어서 그냥 버려야하나 하고 고민하던 중 클리앙에서 무상 교체 가능하다는 글이 있어 바로 실행.

애플 홈페이지 들어가서 예약을 했다. 이번에는 애플 여의도를 가보기로 했다. 새로 생긴 곳이기도 하지만 가로수길에 비해 주차에 강점이 있어서다. 예약 당일 애플 매장에 가니 코로나 시국임에도 역시나 사람들의 줄은 여전하다. 물론 예약을 했으므로 시간에 맞춰 입장. 

지니어스가 와서 증상에 대해 듣고 테스트를 위해 가져가면서 좀 기다려 달란다. 기다리면서 제품들 구경도 하시라는 말과 함께. 데스크에 에어팟 맥스가 있길래 바로 머리에 장착해봤는데... 음질이고 뭐고 간에 머리에 안 맞다. 다행이면서도 슬프기도 하고. 어차피  B&W PX7에 매우 만족하고 있는지라 굳이 아쉬울 필요도 없었지만.

20여분 지나 지니어스가 와서 매우 기쁜 소식이라며 무상 교체 한단다. 역시! 이번에도 무상교체(이전 글 참조). ㅎㅎㅎㅎ 

무상교체를 하더라도 양쪽 유닛만 교체하고 충전케이스는 그대로 써야하기 때문에 페어링을 전 펌웨어 업데이트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주의사항 전달. 돌아오는 길 운전 중에 미리 충전, 집에 와서 페어링 하니 바로 사용 가능하다. 예전처럼 업계 최고수준의 노이즈캔슬링. 그런데 이전 제품에 비해 베이스가 약해진 느낌이다. 풍성한 저음에서 조금 단단해졌지만 음량이 작아진 베이스랄까. 약간 아쉽기는 했지만 어차피 외부 소음이 차단된 상태에서 베이스이므로 음원 청취 시에는 별 영햠 없다. 곡이 약간 재미가 없어질 뿐.

 

두 번째 사례.

이번에는 둘째 아들이 쓰는 에어팟 프로. 2021년에 구매한 제품이다. 이 경우에는 갑자기 한쪽 유닛이 그냥 안 들렸다. 그냥 갑자기. 별별 방법을 다 써봐도 회복 불능. 

당연히 수리 예약을 했다. 다만 이 경우는 무상여부는 확인 할 수 없어 유상처리라도 해야 한다는 각오(?)로 아이와 함께 여의도로 향했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애플스토어는 사람으로 북적인다. 코로나와는 전혀 무관한 동네인가? 물론 다들 마스크는 착용 했지만서도.

지니어스가 와서 증상을 들은 후 제품을 가져가 테스트 한 후 결과를 알려주겠다고 했다. 그 사이 아이도 나도 제품 몇가지 보고. 잠깐 시간이 지난 후 지니어스가 지난번처럼 기쁜 소식으로 돌아왔다. 무상교체. 이번에는 고장 난 유닛 1개만 교체. 

역시 페어링 절차 전 충분히 충전하고 페어링. 일은 잘 끝났다.

 

두 번의 사례 중 첫 번 째는 초기 출시 제품에서 자주 발생하는 건인가보다. 혹시 이 글을 보시고 그런 증상 있으신 분은 바로 애플에 문의해서 무상교체의 기쁨을 나누시고, 후자의 경우도 기간만 적당하다면, 그리고 내용을 봐도 사용자의 과실이 입증되지 않아 무상교체는 충분할 듯 하다. 

이상 에어팟 프로 2개 무상교체한 후기. 끝. 

최적화가 안돼서 쓸 만한 게임이 없는 거다. 

최근에 스팀에서도 맥 지원 게임이 늘기는 했는데 정작 실행 해 보면 윈도우에 비해서 뭔가 버벅거린다거나 아니면.... 아무튼 2프로도 아니고 10프로 이상 부족한 느낌. 간단한 게임조차도 조금 실행하면 팬 돌고(인텔맥 기준, 물론 인텔이라 그런것보다도 다른 앱들 돌릴 때는 조용한 녀석이 게임만 실행하면 난리)

이번에 울트라, 스튜디오 나오면서 Metal에 대한 언급도 나오나 했는데 아마도 이건 다음 WWDC나 내년 되어서야 무언가 나오지 않을까 싶기는 함. 사실 저 메탈에 대해서는 수 년 전부터 기대해왔는데 계속 기대 이하의 수준이었지만, 이제는 칩셋의 통합으로 어느 정도 분위기는 익은 게 아닌가 싶다. 

애플이 게임 시장에 눈독을 들이는 것은 알겠는데 애들 스타일 상 여러 조합이 제대로 갖춰지고 나서야 움직이는 매우 보수적인 집단이라 좀 시간이 걸릴 듯. 물론 다이렉트엑스와 CUDA로 대표하는 pc 시장의 벽을 과연 넘어설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애플이라면...

 

두 부류일 듯 하다.
1. 군대는 다녀왔는데 전쟁하고 싶어 발정난 놈 들.
2. 그리고 군대는 간 적 없지만 지들 보기에 못마땅해 보이는 이들.

청와대 청원글에 우크라이나 침공 어쩌고 하면서 군에 간 자식들 휴대폰을 몰수해야 한다나.
미친 놈들. 그것 때문에 군내 병영사고가 얼마나 줄었는데.
군대 기강이 헤이해졌느니 어쩌니 하면서 기껏 생각해냈다는 것이 휴대폰 반입 금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윗대가리들이 일만 똑바로 하면 장병들이 휴대폰을 들여다보던, LOL 쳐하고 있던 문제 될 게 아니다. 어차피 군대는 위에서 수직으로 명령 내려오는 곳이니 시키면 할테고, 전쟁터 나가서 싸우라면 싸워야 한다. 그런데 관리자들이 저 할일 똑바로 안하고 군납비리나 저지르고, 병영환경 엉망으로 해놓고 휴대폰만 뺏어가면 임무수행이 제대로 된다던?

군대는 사기다. 사기를 진작시키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을거다. 그리고 그 방법은 그 시대의 흐름에 맞춰 가는 것도 있을 테고. 군대 첫 입대해서 몇 주 또는 몇 개월 세상과 단절돼서 지내 본 이들은 다들 알 거다. 
분리된다는 것의 두려움. 
그건 연인 간의, 부모 형제와의, 지인들과의 관계 뿐만 아니라 매일 매일 변해가는 세상의 흐름으로부터 멀어져 간다는 공포다. 그걸 견디지 못하다보면 탈영하는 이들도 발생하고 심지어는...
그래서 휴대폰의 지급이 병사들에게 주는 긍정의 힘은 산술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게 아니다.

정작 우크라이나에서도 예전의 전쟁과는 다르게 현장의 적나라한 영상이 전달되다보니 그런 측면에서는 안타까움이 크지만, 반면 마냥 밀릴거라고 여겼던 약자의 분투가 세상에 그대로 보여지면서 그들 스스로를 더 묶어주는 여지껏 경험해보지 못한 큰 효과를 거두고 있다. 그래서 일론 머스크가 스타링크를 우크라이나에 보낸다고 하지 않나.

분명 우리군에서 어쩌다보니 도입한 휴대폰 도입은 지금도 기대 이상의 효과지만 전장에서도 기존의 틀을 깨는 효과를 줄 거다. 그런데 휴대폰을 뻇으라고? 미친 새끼들. 전쟁하고 싶어 발정난 개새*들. 저들은 정작 일 터지면 가장 먼저 벙커로 아니 물건너 지들 조국으로 도망갈 놈들일 듯 하다.

큰 아이도 몇 년 뒤면 군대가게 될 텐데 스마트폰 하나가 자녀와 부모에게 주는 위로와 안도감은 겪기도 전이지만 벌써 체감된다.
헌법에 대한민국 국민은 국방의 의무를 지게 되어있다. 아들들이 조국의 영토를 지키러 가는 거지 무슨 수도승 되러 가는거는 아니잖는가? 
맨 앞에 말했던 휴대폰 뺏자는 놈들, 지 아들들은 군대를 보냈을까? 물론 보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대다수의 국민이 그 인간들의 생각과 다른데 왜 지 생각이 옳다고만 주장하는지.

 

 

인생은 천피스 또는 만피스 퍼즐 같다.
결과물을 보면서 퍼즐을 풀면 쉽게 풀어갈 수 있다.
그런데 결과물을 알 수 없다면?
미노타우루스의 미궁처럼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할 테고, 그럼에도 결과물을 얻는 것은 쉽지 않다.
태생부터 정답을 알고 있는 인생이라면 퍼즐 맞추 듯이 쉽게 조합해 나간다. 그런데 주변에 어떠한 도움도, 또는 변변한 조력을 받을 수 없는 경우라면 후자와 같다.
그래도 노력 여하에 따라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한다면 결국에는 그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이번에는 두 개의 인생이 만났다. 그래서 그 퍼즐을 풀어가고자 한다.
두 명이 머리를 맞대 풀어가니 그나마 서로에게 도움이 될 지도.
그런데 서로의 퍼즐이 다른 퍼즐이었다면?
아무리 맞춰봐도 결과는 나올 수 없다.
비슷한 조각들은 있을 수 있다. 모양이 비슷한데 그 조각의 그림이 다르다. 
아무튼 결과는 나올 수 없다.

결혼이 그런 것 아닌가 싶다.
성격이 달라도, 살아가는 방법이 달라도, 방향이 같으면 그 결혼은 지속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결혼을 유지하는 요소에 대한 의견이 각각 다를 수는 있겠지만 퍼즐처럼 서로 다른 조각을 가지고 합치려고 한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그 끝을 볼 수 없을 것 같다. 
사전에 서로 다른 퍼즐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 시작도 안했거나 대안을 마련했을 수도 있었을테다. 그마저도 제3자의 확인이 아니고서는 두 개인지 알 길이 없다.
왜 우리는 안 맞는 거지라는 의문표와 힘겨운 노력만을 계속 기울일 뿐 해결은 할 수 없다.

흠.... 이 글을 끄적이는 내 상황이 그러한가보다.
이십년 넘은 결혼생활. 누군가에게는 겉보기에 그럭저럭 좋아보이기도 한 모양이겠지만 정작 그 안의 혼돈과 괴로움을 어떻게 알까?
분명 서로 다른 퍼즐을 들고 결과물을 내려고 하는 상황인 듯 하다. 우리 부부는. 결국...

교회가 이 지경이 된 이유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개인적인 견해로는 두 가지.
1. 신사참배에 대한 트라우마
일제강점시기에 신사에 대한 참배를 교회 대다수가 참여하면서 광복 이후 그 부끄러운 행위에 대한 교회의 잠재의식에 자리잡은 외상후 또는 이른바 트라우마.
이러다 보니 코로나 시국에서 방역을 위한 명단 제출 등을 거대권력에 대한 굴종으로 보고 처벌을 불사하며 제출을 거부하는 것은 저 기저의식에 깔려있는 신사참배라는 트라우마 때문 아닐까? 현 정부를 적그리스도, 악의 세력으로 인식하는 상당수의 교회라면 더더욱.
2. 목사 양산 시대
그럼 이런 어처구니 없는 잘못된 인식에 대해 그것도 일반 교인들까지 이런 비상식적인 이해를 하고 있는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교회의 유일한 해결책은 이끄는 목사의 능력인데, 글쎼다. 질과 양 중에서 양만을 중시하여 능력과 자질이 수준 이하인 아니, 당초에는 멀쩡했을지라도 최종 결과물은 왜곡된 현실인식을 하는 목회자들이 양산됐다.
그런데 왜 꼭 목사만일까?
목사만이 하늘과 땅을 잇는 유일한 통로라는 구약시대 제사장의 권위를 신약시대에도 그대로 적용하는 몰이해. 그래서 오로지 목사 만이 중요한, 평신도는 그냥 따라만 와라는 기이한 형태를 가진 한국만의 목회자 산업이 탄생된 데 기인하는 것으로 본다.
독일도 나치독일 시절 본 회퍼 목사같은 분 덕에 종전 후 그들의 신앙을 되짚어 보고 진정한 참회를 이끌어냈다고 본다.
우리나라도 그에 못지 않은 주기철 목사, 손양원 목사같은 분들이 있음에도 광복 이후 교회는 신사참배에 대한 트라우마를 이 분들 이름을 들먹이는 것만으로 대충 넘어가고 이후 권력에 빌붙어 아니 권력의 한가운데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니 지금처럼 광복 이후 뿐만 아니라 수백~수천년간 누려온 기득권에 대한 시대적인 대변혁을 맞이하여 이들과 결탁하여 잘 지내온 교회의 핵심권력들이 움직였다고 여겨진다. 비록 개교회로 흩어져 있는 듯 하지만 같은 이해 가운데 그 들 밑에 깔려있는 수많은 교회와 목회자들에게 중세 교황처럼 교시하고 세뇌하면서 이 지경에 이른 듯 하다.
'돈, 섹스, 권력'이라는 책이 90년대 초에 두란노서원에서 나와서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교회에 대해 지적한 것이지만 결국 이 마저도 면피용으로 끝난 것 같다. 3종세트를 모두 획득한 채로 말이다.

맥북시리즈를 사용한지도 벌써 12~13년 되가는 듯 함.

처음에 화이트맥북(2008)을 쓰다가 1년 조금 지나, 유니바디 맥북프로(2009, 15), 그러다가 레티나 맥북프로(2012, 15), 그리고 현재 사용 중인 맥북프로(2017, 15 터치바)까지 매번 애플케어를 먹여줬다. 싼 비용도 아니어서 구매 비용의 10% 정도 되는 금액이라 보험이라 여기면서도 과연 얼마나 혜택을 볼까 싶었다.

물론 그 사이 맥세이프가 두 번인가 날아가서 무상교체한 적도 있고, 갑자기 정신을 잃은 맥북 프로를 허겁지겁 용산까지 가서 무상으로 되살려왔던 적도 있었다. 그렇더라도 큰 탈 없이 써온 터라 마지막 애플케어 구매 시에는 과연 이게 잘 하는 짓인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 오랜 사용 경험에 보답인지 아니면 역으로 애플의 제품 QC에 문제가 생긴 건지는 몰라도 제대로 애플의 '케어'를 받았다.

이번 맥북프로는 영입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usb-c 포트 4개 중 하나가 작동 불량이 됐다. 바로 고쳐볼까도 싶었지만 나머지 세개로도 충분히 잘 돌아가니까 애플케어 종료 때나 고쳐볼까 하고 그냥 두던 중, 애플케어 종료일 한 달 앞두고 간만에 애플 가로수길에 예약을 걸어뒀다. 사실 그 때만 해도 간단한 체크로 해결될 줄 알았는데 정작 당일 가서 지니어스가 진단을 내린 내용은 아래와 같이 처리됐다.

<1차 수리 결과 및 비용>

처음에는 I/O보드 교체만 하면 될 것 같다 하더니 귀찮았는지 아니면 확실한 처리를 위해서였는지 로직보드까지 통째로 바꿔주었다. 사실 3년 이상 쓰게 되서 하판 열어 먼지제거나 CPU 써멀그리스 같은 거 보완해줘야하나 고민 중이었는데 한 번에 해결된 셈. 아무튼 비용도 애플케어 없었다면 99만원이었을 것이 무상처리됐다. 사실 99만원이면 애플이니 그런가싶지만 웬만한 중급 노트북 가격이다.

이때 지니어스가 했던 말이 있었다. 배터리가 82~4%를 오락가락 하는데 80% 미만이면 교체대상이니 애플케어 종료 전까지 막 굴려보라고 넌지시 팁을 줬다. 이런 멋지 지니어스같으니^^. 요리사가 싫어할 것 같은데 말이다. ㅎㅎㅎ 

아무튼 하루만의 수리 후 돌려받은 맥을 복원(로직보드를 교체하다보니 ssd까지 교체. 그래서 타임머신으로)하고 일주일 정도 정말 열심히 배터리 이용을 하고 있던 중, 문득 화면이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화면에 푸른 멍같은게 보였다. 사실 예전부터 느꼈던 것이었지만 그 때는 맥오에스에서 구현한 창의 투명도 효과인줄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 왜 있잖은가? 바탕화면이 흐릿하게 배경처럼 보이는거. 진짜로 상당기간 그런거로만 여겨왔다가 복원과정 중에 회색화면에 나타난 이상한 모습이 복원 후 같은 자리에 그대로 색깔만 바뀐 채 나타나니 그 때서야 문제를 파악한 것.

애플 상담사와의 채팅을 통해 캡쳐화면과 아이폰으로 찍은 화면을 비교해가면서 결국 두번째 수리 예약. 지난 주에 다시 한 번 가로수길로 갔다. 애플스토어가 국내 들어온 이후로는 공인인증서비스센터는 패스다. 용산의 '대화'도 여지껏 잘 서비스받았지만 그래도 역시 믿을 것 직영뿐. 

아무튼 두 번째 방문 시 또 다른 지니어스가 이것 저것 돌려보더니 화면 교체해야한다고 하더니 갑자기 지난 번에는(불과 2 주 전) 안 걸렸던 배터리의 건강상태를 보면서 의아하다며 뭐라했다. 정확하게는 아니어도 지난 번 지니어스가 배터리가 간당간당하더라라는 말을 했다는 거 정도만 말해줬다. 그 후 지니어스는 상판, 액정, 배터리(하판, 키보드 포함)까지 모두 교체하면 비용이 꽤 나오지만 애플케어가 있으니 무상이라는 말과 함께 하루 정도 걸릴 거다라고 하면서 수거 완료. 내 앞선 예약자는 애플케어가 없던 지 아니면 기간 만료된 듯(맥북 2017 이전 세대이므로) 했는데 액정 문제로 교체해야하지만 비용이 일백만원 이상일 거라 하는 말에 고민하던 걸 봤다. 하여간 그렇게 해서 처리된 결과는 아래와 같음.

<2차 수리 결과 및 비용>

이렇게 해서 총 비용은 230여만원이었고 애플케어 적용으로 전액 무료처리됐다. 그냥 하판 덮개를 제외한 모든 게 교체됐다. 사람 몸이 몇년에 한 번 사이클로 모든 세포를 교체한다고 하더니 딱 그런 케이스인 것 같다.

하여간 여지껏 애플 제품 써오면서 애플케어의 덕을 톡톡히 아니 그 정도 표현으로는 부족할 만큼 혜택을 봤다. 그냥 윈도우 노트북 고급형 한대를 구입한 비용정도. 물론 현 세대 cpu도 gpu는 아니지만 새 제품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새로 쓰는 것이니 앞으로 몇 년 잘 사용해줘야겠음.

결론 : 애플 유저라면 애플케어 꼭 먹여주시길.

ps : 애플케어를 잘 적용했으니 고맙기는 한데 예전에는 별 탈없이 써왔던 맥북시리즈인데 최근 와서는 제품 자체의 문제가 있는 건가? 궁금해짐.

pc가 주류였던 세상에서는 화면에 가득찬 웹브라우저, 문서편집기를 보면서 작업을 하거나 글을 읽었다.

아이폰 바로 이전 아이팟터치를 만지면서 감탄사를 연발하면서도 드는 궁금점은 과연 저 작은 화면에 어떻게 정보들을 다 보여줄 것인가 였다. pc 또는 노트북이라면 많은 정보를 큰 화면에 한 번에 보여줄텐데 손바닥만한 작은 화면은 무리일테니 스마트폰도 결국은 pc나 맥북같은 플랫폼에 계속 종속될 거야라는 예측을 해봤다.

하지만 지금 세상이 어디 그런가? 모든 사람이 '스마트폰 좀비'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거의 모든 일상사를 스마트폰으로 처리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앞선 의문은 잊고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는데 오늘 문득 맥북프로를 열고 여지껏 즐겨 써오던 RSS 앱인 'REEDER' 크기를 조절하고 써보니 너무나도 읽기에 편해서 다시 그 생각이 떠올랐다.

여지껏 REEDER를 전체화면으로만 놓고 썼는데, 읽기에 산만한 느낌이 들어 화면 크기를 일부러 조절해봤다.

<REEDER, 전체화면>

그리고 너무나도 읽는 게 편안하다는 것에 깜짝 놀라게 됐다.

<REEDER, 창 모드 크기 조절 적용>

놀라웠다. 여지껏 큰 화면에 꽉찬 내용이 당연하고 그래야만 하는 걸로 여겼는데. 특히나 맥북이나 pc 처럼 대형화면을 별도로 사용할 경우에는 말이다. 아마도 큰 화면을 다 안채우는 것에 대해 '효율성'이 떨어진다거나 뭔가 허전함에 그랬던 것 같다. 아니면 스마트폰에 너무나도 적응이 되어 있다보니 이제는 사람의 인지체계가 스마트폰의 사이즈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익숙해져서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시중에서 많이 보는 책들도 스마트폰같은 폭과 크기를 가진 사이즈로 나온다면 어떨까? 물론 스마트폰으로도 안보는 책을 종이책으로 일부러 볼 일은 없겠지만서도 책을 읽는 수고가 한결 덜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패드 프로 11인치(2세대, 프로로는 4세대) 간단 리뷰

많은 리뷰들이 있어 내 관심사로만 이야기하자면 usb-c에 대한 것. 라이다니 A12Z니, 매직키보드니 이런 건 관심 없다. 어찌 보면 usb-c에 대한 리뷰는 3세대 때 이미 나왔을 이야기였겠지만 나는 이제 쓰게 됐으니.

 

애플 iOS의 폐쇄적 환경이야 두 말 할 필요도 없지만 여태껏 그런 환경에서도 돌파구를 찾아보고자 이 장비 저 장비 기웃거려봤으나 마땅한 해결책은 없었다. 외부로부터의 자료 입력은 클라우드 또는 무선환경을 통해서나 그나마 가능했는데 미리 클라우드에 올려놓고 있다면 의외로 간단하지만 정작 현장에서 바로 자료를 넘겨받아 작업하려고 하면 여의치 않은 경우가 많다. 특히 용량이 큰 경우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usb-c를 통한 확장성 확보는 정말 신의 한 수다 싶다. 여태껏 애플만의 전용 규격만을 이용하다 보니 포기한 게 한 두 개가 아닌데 말이다.

예를 들어 usb-c 허브를 통해 pd전원과 hdmi, ext hdd or sdd 를 연결하는데 전혀 무리가 없다. 덤으로 블루투스로 키보드와 마우스, 그리고 무선 헤드폰까지 한 큐에 모든 게 해결된다. 그냥 된다. 사무실에 맥북을 위해 설치한 환경을 아이패드가 그냥 쓸 수 있다. 맥에 연결하던 usb-c 케이블을 그냥 아이패드에 꼽으면 된다. 맥용 전원 + hdmi + 외장하드 + usb speaker가 그냥 된다.

 

잡스는 아이패드를 포스트 PC의 자리에 놓기를 원했다. 그리고 애플의 요리사(Cook)는 멀고 먼 길을 돌아 거의 십여년 만에 그런 위치 언저리에 아이패드를 끌고 온 것 같다. 과연 잡스라면 진작에 usb-c를 채택하지 않았을까도 싶다. 아이맥에서 usb를 과감히 도입했던 것처럼 말이다. 마진의 쿡이 라이트닝 포트에 대한 집착 또는 재고떨이를 위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한참 걸렸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제서야 외부환경과 하드웨어의 소통이 원활해지기는 했지만 소프트웨어가 페이스를 같이 못하고 있다. 좀 처지는 느낌이다. 예를 들어 교회에서 녹음한 멀티트랙 음원을 개러지밴드에서 작업하려고 하면 맥에서는 멀티트랙 음원들이(16채널) 포함된 폴더를 통째로 던져주면(drag&drop) 되는데 iOS 개러지밴드에서는 채널 하나하나를 일일이 넘겨줘야 한다. 터치 환경에 최적화되지 않아 불편한 점인데 점점 개선되지 않겠나 싶다. 다시 말 하지만 여기까지 해 준 것만 해도 어딘가! ㅎㅎ 

(파일 하나 하나 선택해서 하나하나 트랙에 던져줘야 한다.)

 

참고로 개러지밴드에서 음원 import 하는 방법

1. 개러지밴드에서 내 파일 만들고

2. 오디오입력으로 트랙 만들고

3. 마디 설정을 자동으로 놓고

4. loop - 파일 - 파일 앱에서 찾기로 원하는 음원 선택

5. 리스트에서 불러온 음원을 끌어다 트랙으로 던져 넣기

6. 이 과정을 트랙별로 해야 한다. 

 

많은 리뷰에서 아이패드의 포지션에 대해 ‘아직... ‘어쩌고 하는데 개인적 견해로선 이미 지나서 딴 데로 가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부족한 점이 있긴 하지만?', 그건 기존 pc환경에 익숙해서 느끼는 거다. 그냥 아이패드의 환경 안에서 바라보면 아이패드 1세대(2010)부터 써왔던 진성 애플빠로서는 초창기 버전과 지금의 아이패드는 마차에서 바로 전기차로 넘어가는 엄청난 차이를 보여준다. 만약 70~80년대 IBM이 아닌 애플이 주류였다면 아이패드의 시대는 훨씬 빨리 왔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러다 보니 맥과 아이패드의 위치가 애매해졌다. 처음에는 세 들어왔던 처지에서 이제는 집주인 행세를 하려 들지도 모른다는. 

p.742(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신)

"오늘날에도 신의 유일성을 왜곡해서 이교도에 대한 배척과 분쟁을 정당화하는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그때 역시 신앙을 자신들의 세속적 탐욕에 이용하는 불순한 세력(성직자, 정치가 ,상인)이 선동해서 저지른 반그리스도적이고 반신앙적인 만행이었지요. 우리는 여기서 “최선의 것의 부패는 최악이다(Corruptio optimi pessima)”라는 오랜 격언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십자군을 일으키며 “신의 뜻이시다(Deus Le Volt)”라는 구호로 민중을 선동했던 중세 성직자들이 그랬듯이, 신을 왜곡하여 빌미로 삼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가장 쉬운 선동 방법이지만 가장 나쁜 방법이기도 하지요."

중세에만 존재하는 십자군이 아니다.
현 시대에도 존재했던 아니 지금도 존재하는 십알단이 있고 신천지가 있다.

성직자 -교회 총회, 전광훈 같은..
정치가 - 음... 요즘 핑ㅋ당?
상인 - 순실전자

이런 커넥션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 퍼져 있을테다.

https://m.clien.net/service/board/lecture/14707167?od=T31&po=0&category=&groupCd=allreview

매번 클리앙의 글만 퍼오기는 하지만 이 시대를 사는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생각해봐야 할 주제라고 여기는지라.

핵심은 종교는 현세대의 기준으로는 비합리적인게 맞고 그걸 인정할 수 있어야하는데 많은 교인들은 비합리적(사실의 문제)=BAD(선악의문제) 이런 범주의 오류에 빠져 있다는 것. 그래서 이걸 인정하지 못한다는 것.

어릴 때 교회를 통해 회개와 구원에 대한 믿음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칼 세이건의 'COSMOS'를 다섯번 이상 탐독하면서 신앙과 과학에 대한 견해를 나름 가지고 있었던 터라 종종 교회 안에서 창조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거나 그냥 듣고 있자면 논쟁거리로 갈 것 같아 그냥 입다물고 있는 경우도 있고 어떨 때는 이단아처럼 대해질 때도 있지만 어쩌겠나?

생각이란게, 내 믿음이란 게 뇌 속의 사고과정, 그것도 양자수준의 세계에서 임의로 결정되다보니(될 것이라고 요즘의 뇌과학에서는 설명하는 것 같다) 어린 그 시절 머릿속의 어떤 결정으로 인해 여지껏 이르렀는데 그걸 어떻게 바꾸나? 이걸 설명하고자 하면 꽤나 긴 글이나 시간이 필요할테니 생략하고.

아무튼 그나마 나름대로는 신의 존재에 대해 의심이 없는 것 하나로 여지껏 버티고 있는 것이다만 요즘의 교회 꼬락서니 보고 있자면 회의도 많이 들지만 바울사도를 통한 성경 말씀에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지. 희망이 있고 건전한 교회도 많다.



Bowers & Wilkins PX에서 PX7으로 넘어와 며칠째 쓴 소감.

숫자와 사이즈만 변한게 아니라 소리를 다루는 게 B&W 원래 능력을 비로소 보여준다는 느낌.

전작에서는 노캔 On Off의 성향이 너무 달랐는데 이제는 큰 변화없이 자연스럽게 들려준다. 마치 애플 에어팟프로의 그 기능처럼. 물론 헤드폰과 이어폰을 같은 범주에 넣고 비교할 수는 없지만.

자회사 800 시리즈 스피커의 소리를 기준으로 설계했다는데 그런 초고가 스피커는 직접 들어본 적이 없어 모르지만 적어도 로이코 전시장 가서 직접 그런류 스피커 소리를 들어본 바로는 이 헤드폰은 B&W가 헤드폰에 손 댄 이후로 지금에 와서는 제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싶다.

블루투스, 무선 헤드폰으로 이정도 소리를 들려준다는 건 너무 고마운 것. ㅎㅎ 게다가 노이즈캔슬링을 켰는데도 말이다.

덧붙여 착용감도 전작 PX는 착용하고 20~30분 정도 지나면서부터 정수리를 압박하는데 이번에는 매우 편안하다.

아무튼 소리와 외관 디자인 두개 모두 매우 신경쓰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PX를 의아하게도 조기에 단종시킨 것 같고.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전작의 노캔 시 소리가 껐을 때와 너무 다른 점은 사용 내내 제작사의 능력을 의심케 했으니까.

마지막으로 케이블을 연결하면서 노캔을 쓸 수 있는데 생각지도 못한 장점을 얻게 됐다. 사실 PX때부터이긴 하지만 베이스 실연주 시, 특히 합주 시에 모니터용으로 최고다. 외부 소음이나 배음이 섞이지 않아 타악기와 내 악기가 매우 선명히 귀에 들어온다. 예전에 대학로 이어폰샵 가서 이에 대해 이야기해봤더니 딴 세상 이야기처럼 대하기는 하더라만. 일단 써보면 다른 모니터 헤드폰 못쓰게하는 단점도 ㅎㅎ

그나저나 예배가 다시 열려야 연주 때 테스트 해 볼텐데. 언제쯤이 될까? 😢 @ 노원 우리집


사소한 정의 - 10점
앤 레키 지음, 신해경 옮김/아작



이 책을 알게된 것은 #페미니즘 이 반영된 SF 소설이라는 주간지 서평을 통해서다. 요즘 우리 사회의 화두 중 하나인 페미니즘이다 보니 SF와 결합한 페미는 어떤 느낌인가 싶어 골라봤다. 그래서 이 책의 모든 등장인물은 He가 아닌 She, 그녀들이다. 심지어 인공지능과 같은 가상인격도.


물론 그들, 또는 He 들도 있기는 한 것 같지만 여하튼 POV는 그녀들의 시선을 통해서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녀의 불평등에서 비롯한 문제를 부각 시키려는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 관점만 바뀐 거다. 이게 처음엔 꽤 어색하긴 하다. 대체 언제쯤 '그'가 나오나 기다려질 정도 였다. 물론 그런 일은 없다.


앞서 페미니즘을 이야기했고 그런 평이 있지만 정작 소설의 주제는 그와는 관련이 거의 없는 듯 하다. 배경설명이 전무해서 그런 지도 모르겠다-예를 들어 왜 여성성(性)이 주된 성(sex)이 됐는가 등에 대한 것들 말이다.
여하튼 보는 이마다 각각 이겠지만 '나'라는 것을 정의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이런 주제는 사실 많은 SF작품을 통해 제기된 흔한 이야기이도 하다. 그렇지만 이 책처럼 수량적으로 시간적으로 스케일을 크게 잡은 경우는 흔하지 않다. 
그리고 ‘#사소한_정의’, 원제는 ‘Ancillary Justice’인 정의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사소한’이라는 단어와 ‘부가적’이라는 뜻을 포함하는 ancillary라는 단어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무튼 소설 속에서 더불어 순간순간의 상황 속 사소한 듯한 정의에 대한 결정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떤 결과를 만들 지, 그것이 과연 거대한(?) 정의(Justice)를 이루는데 어떤 역할을 하는 가를 이야기한다. 카오스 이론의 영향을 따른 듯 한데 이 또한 흔한 소재이긴 하다. 
그런데 이 두 소재를 그녀의 관점으로 부드러우면서도 가볍지 않게 잘 버무려놨다.


이전에 존 스칼지의 ’노인의 전쟁’이라는 책과 그 시리즈를 읽었다. 역시 스페이스 오페라로 구분되는 유사한 장르의 책이다. 거기서도 작가 앤 레키와 같이 복제인간을 통해 ‘나’를 정의하는 것이 미래세계에서는 지금과는 현저히 달라질 것을 예고하고 있다. 다만 페미니즘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스컬지와 레키의 작품의 차이점이 나타나는데 노인의 ‘전쟁’이라는 제목처럼 유혈이 낭자한 묘사가 많고 전투장면들이 박진감 있게 묘사된다면 ‘사소한 정의’는 그 보다는 훨씬 차분하고 정적인 편이다. 그래서 1백여 페이지가 넘어가기 까지는 매우 지루한 감도 있어서 읽는데 매우 주의를 요한다. 물론 후반부 클라이막스에 이르러서는 호흡이 가빠지게 하는 장면들이 등장하지만 역시나 매우 절제된 듯한 느낌이다.


간만에 좋은 작품을 만났다. 주제도 좋고 우주를 배경으로 해서 스케일도 만족스러운 책이다. 시리즈라는데 다음 작품도 봐야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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