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에 이 영화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지 않은 상태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매우 평이 좋은 영화라는 정도는 알았기에 볼 마음이 생긴 것.

처음에는 평화로운 자연과 행복해 보이는 평범한 가족이 보여 뭔가 힐링하는 내용인가 했다. 처음에는...

다만 쨍한 색감은 좋아보였으나 그럼에도 일부러 어둡게 조정한건 이 영화가 호러물인가라는 생각이 들 무렵.

인간을 태우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구조를 설계하는 미친놈들인데 무슨 사업 설명하듯이 이야기 한다.

이것들이 사람들인가 싶었다. 이 영화는 힐링을 위한 영화는 분명 아니다. 그렇다고 치유물도 아니고. 

저 동네는 '아우슈비츠'였다.

영화는 시종일관 저 벽 너머는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평화로운 일상의 정원과 주택에서 바라보는 관점만 제시하고. 그리고 무슨 이유인지 모를(물론 우리는 알지만) 굴뚝에서 나오는 시커먼 연기들만 보여준다. 더불어 저 멀리 어디선가 계속 들려오는 총성과 비명 같은 어떤 소음들. 영화 내내 줄곧 깔리는 배경 소음 같은 것이지만, 역시 이를 화면으로 지켜보는 우리는 무엇인지 알지만, 스크린 속의 그들은 무감각 것인지 상관하지 않고 그들의 삶을 누리며 살아간다.

소장이 평화롭게 낚시를 즐기는데 상류로부터 뭔가가 내려온다.
역시 우리는 저 뿌연 것이 무엇인지 안다. 그리고 저 소장은 화들짝 놀란다. 그리고...
그리고 지 새끼들은 걱정되는지 물놀이하는 자식들을 그 무언가로부터 피하도록 하는 눈물겨운 부정(父情).

그렇지. 모를 리 없고 다 알고 있다. 심지어 수용소장의 아내는 폴란드인 하녀에게 일 똑바로 안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벽 너머 저들처럼 재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고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한다. 아이들도 다 알고 있다. 그냥 모르는 척할 뿐이고 그냥 그게 당연한 것이고 일상인 것처럼 살아가고 있다. 관심의 영역 밖이 되어버린 것이지. 사람이 죽고 특히 그중에는 아이들 본인들과 같은 나이의 소년, 소녀, 아기들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냥 풀장 만들어놓고 즐겁게 일광욕하며 한가로이 살아가고 있다. 소장 부인이라는 것은 심지어 소장인 남편이 전출가게 되지만 그간 그들이 꾸려놓은 주택이며 정원 등이 아쉬워 남겠다고까지 한다. 불과 몇 미터 벽 너머의 세게는 전혀 그들의 관심 밖이다.

그제야 제목이 이해가 됐다. 그리고 우리는 그 소장 역할의 또 다른 실재 인물도 안다.

아돌프 아이히만.

 

아돌프 아이히만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오토 아돌프 아이히만[a](독일어: Otto Adolf Eichmann, 독일어 발음: [ˈɔtoː ˈʔaːdɔlf ˈʔaɪçman]; 1906년 3월 19일 ~ 1962년 6월 1일[b])은 독일인이자 오스트리아인으로,

ko.wikipedia.org

처음엔 이 인간인가 했더니 영화 속 인물은 다른 인간이며 배역 이름과 같다.

'악의 평범성'이라는 문구를 세상에 소개한 '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에 대해 저술한 책도 있었고, 또 그와 관련한 영화도 있었다. 그래, 그럴 수도 있었겠다는 피상적인 이해를 넘어서 'Zone of Interest'는 그들만의 평화로운 일상의 모습을 그들의 어깨 너머로 체험 아닌 체험을 하며 대체 그 악마 같은 저들은 뭐였던가라는 물음에 답해주는 것 같다.

그런데 말이다. 저들의 이야기는 21세기 현재도 계속 되고 있으니 마음이 복잡하다. 특히 그 당시 피해 당사자였던 이스라엘 유대인들이 지금 가자 지구에서 벌이고 있는 짓들을 보자면 과연 절대악이라는 말은 사치고 우리 모두가 원래 악마가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든다. 멀리 갈 것도 없이 2025년 우리 대한민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일들도 마찬가지다. 한 술 더 떠 태평양 건너 천조국이라 불리는 그 동네도 마찬가지. 당장 나의 삶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 같아서 안심인가? 다음 세대인 나의 자녀들 그리고 그 이후의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한다. 무엇을 해야, 아니면 어디서부터 뜯어고쳐야 제대로 된 세상이 될까? 아니 그 제대로 된 삶이라는 건 대체 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까지도 해보지만 범인이 뭘 알 수 있나라는 자조만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대단한 가해자였던 독일인들은 전후에 큰 시련은 겪었다. 그럼에도 그들의 조상이 벌여놓은 짓들로도 벌어먹을 게 있는 게 보이는 것 같아서 참 아이러니 하다. 수용소를 보존하고 박물관으로, 그리고 그걸 유지하고 관리하면서 소득도 챙기고. 참 잘 되는 동네는 뭘 해도 잘 되는 것 같아서 말이다. 내 시각이 너무 비뚤어져만 가는 것 같아서 뒷맛이 씁슬하네...

독일인들답게 군더더기 없이 요란하지 않게 보존 관리는 참 잘한다. 그리고 일자리 창출도 하고...

 

 

https://www.imdb.com/video/vi944621081/?ref_=ext_shr_lnk

처음에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같은 영화인줄 알았다. 그러면서 이런데 어떻게 아카데미가 상을 줬나 싶었다. 대체 뭔가 싶었는데 역시 거장의 작품은 일반인의 머리로 짐작할 수 있는 게 아니다.

 

▶️ Anora - Official Trailer 2

Watch Trailer | 1:53

www.imdb.com

 

이하는 chatGPT가 뉴욕타임즈의 기사를 요약해 준 내용인데 잘 정리한 것 같다.


🎬 영화 『아노라』의 개요

 

션 베이커(Sean Baker) 감독의 신작 영화 『아노라』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클리셰를 새롭게 해석해 진정한 의미의 ‘스타 탄생’을 증명하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특히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Palme d’Or)을 수상하며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영화는 뉴욕 맨해튼에서 스트리퍼 겸 에스코트로 일하는 아노라(애칭 애니)를 주인공으로 합니다. 러시아계 부유한 청년 이반(애칭 바냐)을 만나 펼쳐지는 사랑, 코미디, 비극이 섞인 이야기를 다룹니다.

 


🎬 영화의 핵심 포인트 분석

 

① 스타 탄생의 순간: 마이키 매디슨(Mikey Madison)

 마이키 매디슨은 이미 쿠엔틴 타란티노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등 여러 작품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지만, 「아노라」에서 그녀는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연기를 선보입니다.

 그녀는 이번 영화에서 로맨스, 희극적 슬랩스틱, 심오한 내면 연기뿐 아니라 춤과 액션까지 다양한 연기 스펙트럼을 성공적으로 소화하며 관객을 압도합니다.

 

② 감독 션 베이커(Sean Baker)의 진일보

 『플로리다 프로젝트』 등 사회 변두리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뤄왔던 션 베이커 감독은 『아노라』를 통해 더 성숙하고 세련된 연출력을 보여줍니다.

 그의 영화는 늘 소외된 계층의 삶을 묘사했지만, 『아노라』는 특히 현대판 『귀여운 여인(Pretty Woman)』과 같은 로맨스 요소를 가미해 더 대중적이고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 영화의 구성 및 줄거리 특징

 

『아노라』는 총 3막 구조로 나뉘어 있으며 각 막마다 뚜렷하게 다른 장르의 성격을 갖추고 있습니다.

 1막: 동화적 로맨스

아노라(Ani)가 뉴욕에서 러시아계 부유한 클라이언트 바냐(이반)를 만나 관계가 발전하며 낭만적인 요소가 강조됩니다.

 2막: 긴장감 넘치는 스크루볼 코미디

두 주인공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뉴욕 브루클린 지역을 배경으로 빠르게 전개되는 소동과 혼란스러운 사건들이 펼쳐집니다. 실제 뉴욕의 겨울을 무대로 독특한 분위기를 표현합니다.

 3막: 현실적이고 비극적 전환

마지막 막에서는 다시 진지하고 깊이 있는 분위기로 돌아와 인간적이고 심리적인 갈등을 다룹니다. 로맨스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비극적이면서도 감성적으로 그려냅니다.

 

이 세 장르의 전환이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이어지면서 관객에게 강렬한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 영화가 주는 메시지와 사회적 통찰

 

영화는 얼핏 보기엔 화려한 슈퍼리치의 세계와 자극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미국 사회의 불평등과 ‘아메리칸 드림’의 한계를 지적합니다.

 특히 주인공 아노라를 통해 돈에 의해 평가받고 이용당하는 삶에 익숙한 여성이 처음으로 진정한 관심과 ‘인정받는 경험’을 하는 모습을 통해, 인간 본연의 존재감을 탐구합니다.

 화려하고 자극적인 소재 뒤편에 숨겨진 인물들의 내면을 섬세하게 포착해 인간의 내면을 관찰하는 영화적 깊이가 돋보입니다.

 


🎞️ 종합적인 평가 및 전망

 

『아노라』는 단지 화려한 로맨스 영화가 아니라 사회적 편견과 인간성을 탐구하는 섬세한 현대적 우화입니다. 감독 션 베이커의 진일보한 연출력과 마이키 매디슨의 압도적인 연기력이 돋보이며, 관객에게 기존 슈퍼스타 영화 이상의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한 배우나 감독의 스타 탄생을 알리는 작품을 넘어서, 미국 사회의 복잡한 현실과 꿈의 경계를 심도 있게 묘사하는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상! 분석 끝.

올해 본 영화 중에 가장 강렬한 영상을(?) 제공했다. 그래서 가족이랑 같이 가서 보라는 또는 같은 공간에서 보라는 이야기는 차마 못하겠다만 여하튼 영화는 중반 이후 넘어가면서 플로리다 프로젝트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러시아와 아르메니아를 들먹이며 개네 나라는 여전히 신분, 계급 사회를 미개하다 하는 것 같으나, 하긴 요즘 미국애들 정서가 그러하긴 한데 그런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 당연히 아닐 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점점 강화되는 아나 이미 그 한계를 넘어서버린 것 같은 양극화 또는 부의 극집중으로 인해 이제는 신데렐라나 개천에 용 나는 그런 세상은 없다고 하는 것인지. 그래서 보이지만 넘을 수 없는 유리천장 같은 사회에서 천한 니들끼리 행복(?)하게 살아라는 명령 아닌 명령인 것인지.

한 여름밤의 꿈같은 며칠을 보낸 여주를 통해 그나마 맛만 봐라는 것 같은 느낌. 당연히 션 베이커 감독이 그분들의 입장에서 만든 영화는 당연히 아닐 터이니 그런 느낌을 되새기다 보면 마음속이 쓰려진 안타까움만 더해짐. 대체 세상이 어디로 가는 것인가.

이선균을 보내고 나니 이 드라마가 너무 보고 싶어졌다. 묵직한 중저음의 그가 왜 이리도 안타깝게 느껴지는 걸까 싶어서.

드라마도 그가 최근에 겪은 일들의 총합인 듯 인생의 무게를 혼자서 짊어지고 가는 40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드라마 종반에 가까이 와서인가, 해외에 유학 중인 아들을 보러 아내가 없는 거실에서 혼자 있다 감정에 북받쳐 우는 모습에서는 왜 저러는지 그냥 공감이 되는 장면이 있었다. 뭔지 모를 인생의 버거움과 외로움이었니 않을까?

인간은 사회를 벋어나서 살아갈 수 없다고 하고 그래서 공동체가 필요하다지만 결국 삶의 본질적인 문제는 인간 개인 스스로의 몫이다. 그러기에 누구도 그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거나 대신 저줄 수 없다. 결국 스스로가 그걸 헤쳐나가고 극복하는 수밖에 답이 없다. 물론 도움은 받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런 점에서 보는 내내 ‘박동훈’이라는 인물이 부모, 형제, 아내, 동료, 선배, 후배 등등 수많은 인연들로 둘러싸여 있었음에도 계속 마음 속에 뜻 모를 짐들이 자리 잡고 있었고 그로 인해 힘들어했음에 많이 공감이 갔다.

인간은 외로운 존재다. 같은 인간끼리는 그 외로움을 본질적으로 없앨 수는 없다. 결국 전혀 다른 존재의 개입만이 답이지 않을까. 하나님만이, 예수님만이.

그래서 이선균의 자살은 참 안타깝고 아쉽다. 드라마에서처럼 ‘아무 것도 아니야’라고 누군가 얘기해 주었다면.

그런 지점에서 대체 교회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같은 편이 되어주지는 못할 망정, 외면하고 정죄하기에 급급한 현실을 보자니 말이다. 아마 앞에서는 아니라도 저 멀리서 뒷짐 지고 혀나 끌끌 차고 있지 않았을까?

 

My Mister (2018) on IMDb

#나의아저씨 #이선균 #존재 #인생 #삶

 

국내에서 알려진 제목은 '로스트 인 더스트'
아마도 황량한 텍사스의 기후를 인용한 듯.

저런 풍경에서 집하나만 가지고 혼자 살아가고 싶은 생각이 마구 들게한다.

풍경과는 별개로 대를 이어지는 가난. 나라도 해결못하고 더 궁핍해지는 환경.
자식들에게만은 그 흐름을 끊겠다고 형과 함께 은행털이를 계획.
형은 동생을 대신해 희생되지만 살아남은 동생은 그 돈을 자신에게가 아닌 
모두 전처와 자식들에게 돌려준다.

언뜻 저런 행위가 정당한 건가라는 의문이 들지만 요즘 세상 돌아가는 거 보면, 특히 순siri나 재드래곤 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그들의 것을 강제로라도 모든 국민에게 돌려줘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그 강제가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더라도. 그들이 이미 법의 테두리를 아니 테두리 안에 있는 듯 가장하여 심각히 벗어나 있는데도 정작 그 테두리안의 국민들에게는 룰을 지키라고만 한다. 세월호의 아이들에게처럼. 가만히 있으라고.

영화 내내 씁쓸했다. 마지막 그 황량한 텍사스의 모습이 주는 광활함이 마음속에 더해주는 퀭함...

Directed by David Mackenzie. With Dale Dickey, Ben Foster, Chris Pine, William Sterchi. A divorced father and his ex-con older brother resort to a desperate scheme in order to save their family's ranch in West Texas.
IMDB.COM




에볼라 바이러스의 확산 기사를 보다가, 한 동안 미뤄놨던 ‘감기(2013)’라는 영화를 보게 됐다.

단순한 재난영화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사회고발 영화였다. 우리나라에 총체적으로 쌓여있는 부조리, 특히 관료이기주의, 지역이기주의의 총합이었다. 그리고 그 중 백미는 자신들의 표만 생각하는 썩을대로 썩은(실제로도) 정치가들.

다만 그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사안을 복잡하지 않게 접근하는 대통령의 모습에서 우리가 바라는 대통령의 모습을 봤다. 그리고 대통령의 결정에 반대하는 총리의 모습에서도 비록 그 결정이 어찌되었던 우리가 바라는 책임있는 총리의 것이었다는 점에서 언제까지 우리는 이걸 이상향으로만 바라봐야하는지 안타까웠다. 식물총리, 꼭두각시 총리 이런거 언제쯤 걷어치우나?

아무튼 이번 에볼라는 숙주(바이러스가 기생하는 유기체)가 너무 빨리 죽어 바이러스의 급속적인 확산에는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어서 영화에서처럼 대판데믹을 일으킬 것 같지는 않지만, 만에 하나 지금과 같은 에볼라가 아닌 공기전파를 통한 에볼라일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다행히 지금 것은 그 유형은 아닌 듯 하다. 그러나 예전에 공기전파 에볼라도 발견된 적도 있으니…(이건 원숭이끼리만 감염되던 거라)





여지껏 보려다 자막 등의 소소한 문제로 미뤄놨던 ‘타인의 삶’을 보게 됐다.

시끌벅적하고 화려한 영화들도 재밌지만, 적막감이 흐르고 어찌보면 영화관에 부족한 수면을 취하게 해줄 수 있을 정도로 잔잔하게 흐르는 전개다. 그렇지만 치밀함으로 대표 되는 독일의 영화라서 그런가, 아니면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 때문인지 1분도 지루하지 않게 흡수되어 본 듯 하다.

특히 ‘비즐러’ 대위를 연기한 배우는 그 눈빛이며 행동 하나하나가 빨려 들어가는 듯 했다. 그리고 작가 ‘드라이만’과 아내역 ‘크리스타’의 연기 또한 탁월했다.

냉전 시절 장벽 하나를 사이로 분단된 동독의 슈나지(우리로 치면 국정원)의 요원인 주인공이 작가 부부의 삶을 엿들으며 반평생 살아온 자신이 속해있는 시스템에 대한 의문을 점차 가지게 되고 오히려 그들에게 동화된다는 내용이다.

극 중, 주인공 비즐러 대위는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만난 유치원 꼬마로부터 자신이 속한 조직에 대한 비난을 듣는다. 평소와 같으면 당장 그 아이의 이름을 묻고 부모를 잡아 들이겠지만, 이미 그 비난에 대해 답을 잃게 된 그는 아이의 이름을 물으려다 그만둔다.



내용을 보면 주인공의 앞날이 순탄치 않을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단순히 끝낸다면 영화가 아닐 터. 그렇게 우여곡절의 시기가 지나고 몇 년 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역사적 사건 또한 지난다.

독일 통일 후 구동독 주민들이 삶의 수단을 제대로 구하지 못해 힘들어한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왔다. 특히 하위 말단 들일수록. 게다가 비즐러 대위처럼 자신의 조직으로부터 밀려나 잊혀져 있는 경우라면 더더욱.

그렇지만 그 체제로부터 핍박 받고 힘들어하던 이들, 드라이만과 같은 이들은 그 세월을 견더낸 대가를 얻게 된다. 하지만 동독의 체제에서 자신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에 대해 늘 궁금해 하던 그는 우연히 비즐러 대위의 흔적을 발견하고 그가 있어 지금의 드라이만이 있었음을 알고 그에게 어떤 방법으로 감사함을 전하게 된다. 그 방법은 직접 영화를 보시길.



영화 보는 내내 울적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결국 그렇게 끝날까라는 의문도 들었는데 영화의 마지막에선 약간의 보답을 해준다.

좋은 영화다. 예전에 들었던 평이 괜한 것이 아니었음을 확인했다. 다른 이들도 봤으면 좋겠고. 또 보면서 마음 한견에 드는 생각은 시절과 체제, 그리고 다루는 방법을 제외하곤 우리 시대와 다른 게 뭔가라는 물음이 든다. 안타깝다.


300 - rise of an empire



예전에 살라미스 해전에 대한 책을 읽었다. 오늘 ‘300’을 보니 그 책이 기억났다. 물론 오늘 본 ‘300’과는 매우 거리가 있는 내용. 300의 1편도 그랬지만, 등장인물의 허구도 많고, 특히 ‘크세르크세스’는 성서의 인물과도 많이 다르고 무엇보다도 역사상의 인물과도 차이가 있다. 그러나 그것 가지고 뭐라는 사람은 얼마 되지도 않고 그래봐야 웃음거리밖에 안된다. 영화는 영화일 뿐. 다만 그 역사적 배경에 대한 배경과 결과정도만 일치할 뿐이다. 그리고 첨가한다면 그 의미 정도랄까?

‘노아’ 라는 영화도 그런 방식으로 바라봐야 할 듯 한데, 아직도 상당수 교회에서는 아예 ‘이단시’ 하나 보다. 영화 자체가 이단이 되다니? 한국 교계의 영역 확장에 놀랄 뿐이다. 이유는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문화가 정신을 지배한다고 하니, 그 말이 틀린 것이라고 만 할 수 없지만 재미를 추구하는 영화에서 그 정도 만이라도 한 게 어딘가 싶다. 직접 영화를 보면서도 몇몇 장면에서 교회서 시비가 걸리겠다 싶었지만, 그래도 신의 공의와 사랑에 대해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었는데, 그런 건 아예 관심도 없나 보다. 오직 형식 만을 가지고 뭐라는 꼴.
그럴 것 같으면 300의 크세르크세스도 성경과 맞지 않게 잘못 표현했으니 뭐라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물론 나의 억지 주장이긴 하다만. ;

아무튼 성도들의 수준을 그렇게도 못 믿는 건가? 하긴 제대로 된 성도라고 부를만한 이가 얼마나 될까? 물론 그런 판단을 감히 인간이 한다는 건 더더욱 어리석은 일일테니 더 긴 이야기는 쓸모없는 논쟁거리만 낳을것이고… 하여간 어제 나이 드신 권사님의 난데없는 영화 ‘노아’에 대한 이단 이야기에 한숨만 나온다.

그나저나 '몽상가(The Dreamers, 2003)'의 에바그린은 왜 그리도 얼굴이 헬쑥해졌는지... -,.-;



엑소시스트 1 수준의 작품성을 기대했던 탓일까? 영화 다 본 후의 느낌은 뭔가 부족함 투성이. 그러나 분명 뭔가 궤를 달리하는 듯한 느낌.


매너리즘에 빠진 듯한, 아니! 성직자를 소명이 아닌 직업, 생활의 수단으로 변질시켜버린 한 목사에 대한 페이크 다큐이다. 좀 더 직설적으로는 사기성 농후한 엑소시즘을 거행하는 목사. 그래도 어느 정도 인지도를 갖기에 미국에서도 사교가 성행하는 뉴올리언즈의 어떤 가장으로부터 의뢰를 받게 된다. 마냥 일반적인 퇴마의식만 치뤄주고 돈만 챙기려던 목사는 의외의 현상에 매우 당황하게 된다.

어릴 적 어머니의 사역 중, 축사(축복이 아닌 악한 영을 쫓는 행위)를 종종 접하곤 했다. 뭐 어머니가 무속인은 아니지만 종교인으로서 흔히 접할 수도 있는 미스테리하지만 또 그렇지도 않은...


영화 속의 그 목사가 그랬다. 영화에서는 사탄의 영에 사로잡힌 것 같은 소녀가 실상은 정신적 충격에 의한 것이었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 듯 했다.

'그럼 그렇지. 결국 엑소시즘, 특히 성경에서 분명히 기록하고 강조하는 악의 영에 대해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 인정할 리 없지'라는 이런 생각이 들 무렵 반전이 시작된다.(거의 마지막 부분이라, 시작이라 할 것도 없지만) 그렇더라도 영화의 끝은 좀 황당한 듯해서 아쉽다.


그러나 영화내내 자신의 정체성을 잊고, 아니 외면하려고 하는 목사의 마지막 모습은 인상적이다. 마치 삼손의 최후를 보는 듯 하다고나 할까.

초등학교 6학년 시절, 학교 도서실에서 뜻하지 않게 접했던 책(들)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런 책들이 대체 왜 국민학교에 있었어야 했는지 여전히 궁금하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관심이 지대했던 분야라 당시에도 횡재한 느낌이었다. 그 정도의 체계와 방대한 분량을 가진 자료는 요즘도 찾아 보기 힘들다. 무려 12권 인데다 깨알같은 글씨들. 아무튼 그 책들로 인해 세상이 터부시하는 기이한 현상, 사건들에 대한 시각을 어린 시절에 정립해 버렸다. 그 후로도 이런 류의 책들을 찾고 읽었지만 그 책들만 못했던 기억이다.

기독교인이 교회의 울타리 안에서만 보호만 받고 있는 상태라면, 그런 이상한 현상들이 대게 낯설고 되려 이단 시, 또는 이상한 사람 취급받기 십상이다.


그러나 분명한 건 이러한 일들이 주변에서 비일비재하고 다양하다는 점이다. 심지어 예수님 자신이 직접 귀신을 쫓아내시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최근의 교단이나 목회현장에서는 이런 데 관심 두는 것에 신경쓰지 않는 듯 하다. 아니 일부러 모르는 척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반면, 최근에 읽은 '믿음의 엔진'이라는 책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진화심리학의 방법으로 바라보면서 이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자세한 내용은 차치하고라도 상당부분 이 또한 수긍하게 된다.


인간이 공포를 느끼게 되는 것은 익숙하지 않은, 전혀 낯선 것에 대한 미지의 것에 대해 나타나게 된다고 한다.

눈 떠서 보면 30cm도 안되는 높이지만, 눈 가리고 모른 채 접하면 천길 낭떠러지 같은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내 앞에 있는 것이 높지 않은 난간같은 물리적 실체일지, 아니면 정말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영적실체일지는 알 수 없다. '믿음의 엔진'의 저자도 현재 과학으로도 풀지 못하는 불가사의한 현상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인정한다. 그게 다만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이지 이후로도 어떨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그래도 하나님이 말씀하셔서 창조한 세상을 그대로 나는 믿기에, 그래서 영적 실체에 대해 인정하고 인지하게 된다.


영화 마지막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한 목사의 목숨을 건 행동.

아마도 감독은 겉으로는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기독교적 메시지를 관객들이 알아주길 바랬던 것일까?(그건 아니었을 거라고 90프로 이상 개인적으로 여기지만 ^^;) 심심풀이로 보려다가 심각한 메시지를 접해버렸당. ㅋㅋ

빛의 속도(한 95% 정도로 하죠)로 여행하는데, 관측자의 입장에서는 왕복 3년이 걸렸다면 실제로 여행자의 여행기간은 얼마였을까요?
디스트릭트 9 보다보니 생각이 들더군요. 아마도 크리스토퍼는 몇일(?) 아니면 몇주 동안의 이동으로 모성에 도착했을테고 모선 수리 후 병력 소집하는데 한 일주 정도 소요해서... 암튼 크리스토퍼 입장에서는 그리 오랜 시간은 안 걸렸을 듯 하죠?
궁금해서 클리앙에 올려봤더니 아래와 같은 리플은 달렸지만 답변해 주실만한 분은 없었네요. 저도 계산해보려 했지만 옛날처럼 엄두가 안생겨요. 생각도 안나고 ^__^;

느믈느믈~ [11/17 15:42] ::
빛의 속도로 날아가는 모선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요^^; 정말 3년 뒤에 오겠죠 (군대 이끌고;;)
보로! [11/17 15:43] ::
빛의 속도로 여행하면 이론적으로 여행자의 여행기간은 0이되고 관측자입장에서는 무한대가 됩니다.
토라진 [11/17 15:44] ::
3년후에 오면 이미 2012년이 지나서 지구 멸망 후...일까요 ^^
[11/17 15:45] ::
머.. 3년후에 돌아와서.. 지구가 2012년에 멸망할지도;;;
meteos [11/17 15:46] ::
음 빛의 약 95% 정도 속도로 수정해야겠죠? 아마도 ^^ 하긴 크리스토퍼만 짧은 시간이었지 그쪽 동네도 우리와 같은 시간이 흘른 시점이겠군요. 다만 우리의 입장보단 절반 정도 기간 경과?
애기오빠 [11/17 15:48] ::
가장 가까운 별인 알파센타우리가 4.25 광년입니다. 빛의속도로 왕복 8.5 년이네요. 우주선 속도로는 3년동안에는 태양계도 못벗어나는데..
후니~ [11/17 15:51] ::
워프 드라이브가 장착되어있으면 가능은한데.....
그럼 가는데 잠깐, 병력소집&모선수리에 3년?!?!?
하긴 워프 드라이브가 장착되어있다면 드스트릭트9에 있을 운명도 아니었겠죠
Thoma. to [11/17 15:52] ::
주인공이 지구시간으로 3년이냐? 라고 되물었던 기억이 있던 것으로보아. 진짜 3년 기다려야될듯 합니다. 불쌍하네요 ㅠㅠ


밑에 답이 올라왔습니다. ㅋㅎㅎ 약 2~3개월 정도의 기간이 크리스토퍼에게는 소요되겠군요.

(크리스토퍼, 볼 수록 정이 가는 친구)

(3년, 어찌 기다리실라우, 깝깝하다~~)

meteos [11/17 15:55] ::
주인공이야 당연히 3년 기다려야겠죠. 크리스토퍼도 분명히 지구시간이라고 했으니까요. 정작 본인은 얼마 안걸린다는거 알고 있었겠죠 뭐.
보로! [11/17 16:36] ::
빛의 95% 속도로 여행하면 시간이 10배 느려집니다. 95%로 3년걸렸다면 지구에서는 30년이 지나가게 됩니다.
보로! [11/17 16:37] ::
아.. 관측자의 입장에서 3년이군요. 그럼 여행자는 0.3년이되겠습니다.




이 애니는 볼트라는 슈퍼독의 활약을 그리는 것으로 여겼었다. 처음엔 그랬다. 그런데 영화관에서 이 애니를 보고 왔던 첫째 아이는 그렇게 신통찮은 반응이었다. 왜였을까?라는 궁금함은 애니의 초반 도입부가 지날 때까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렇게 재밌는데?

그러나!! 이유가 있었다. 초반부 활약이 끝나고 드러난대로, 볼트라는 영화속 영웅개를 연기하는, 아니 자신이 진짜 슈퍼히어로독으로 착각하는 여느 평범(?)한 강아지의 이야기였을 줄이야. 역시 첫째녀석이 심드렁했던 이유가 있었다^^. 사실 큰 녀석은 픽사의 애니 'Car'의 열렬한 광이다. 아마 지금까지 본 회수만 백번이 넘을거다. 덕분에 옆에서 지켜봐야했던 나도 거의 대사 하나하나며 세세한 장면까지 기억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강렬한 스피드와 화려한 액션을 기대했을텐데, 소위 낚시에 걸린거지 ㅋㅋ

그렇다고 해서 볼트가 재미없느냐? Never!!!!!

오히려 어른들이 보면 더, 아니 자신의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에 있는 나같은 자라면 꽤 흥미로운 내용일 듯. 자신의 참모습을 알지 못한 채로 평생 살아갈 뻔 했던 볼트가 우연한 기회를 통해 지금과는 전혀 다른 환경속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내용이다.

이 세상에 들어와서 30년 넘게 살면서 나는 정말 누구일까? 과연 나는 어떠한 사람인가라는 물음을 이제서야 던지게 됐다. 그래서 블로그 타이틀도 그 의미로 '정체성을 찾아서'라고 바꾸게 된 것이고. 물론 아무것도 안 하면서 사는 것은 아니다보니 내가 해야만 하는 역할들이 있다. 직장에서의 역할, 가정에서 아빠와 남편이라는 역할, 교회에서 여러 지체들과의 관계속에서 생기는 역할, 부모님의 자식이라는 역할 등등.... 물론 이러한 많은 역할속에서 안주하고 그저 그 삶을 누리면 그만이지만 이제 와서 나에 대한 물음이 내 속에서 계속 올라오는 이유는 앞으로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걱정 아닌 걱정때문이다. 슬슬 그 답을 찾을 때가 다가오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이런 애니를 접하다보니 드는 생각이다.

한 가지 인사이트를 얻은 게 있다면 그것은 'CAR'에서와 같이 전혀 다른 환경과의 만남이다. 지금까지 익숙했던 나의 모습을 떠나 전혀 다른 자신을 발견하고, 물론 역경과 고난이 좌절하게 할 때도 있겠지만 되려 그것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길이 될 것 같다. 이것은 또다른 볼트와 같은 존재인 '모세', '아브라함', '요셉'과도 같을 것 같다. 이집트왕자였던 모세가 어느 날 갑자기 모래사막으로 몰려가서 그 후 40년간의 광야생활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 고향을 떠나서 하나님이 알려준 곳으로 머나먼 여정을 떠나는 아브라함. 형제들 가운데 유독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요셉이 형제의 모함으로 졸지에 이국타향에 노예로 팔려가게 되는 일들.

과연 나에게도 이러한 일들이 있어야만 하는 건가? ^^;;

그래서 생각나는 것은 한번 나만의 여행을 떠나보는 것을 어떨가라는 생각이다. '재즈처럼 하나님은'의 도널드 밀러가 텍사스 사막에서 만난 하나님의 체험처럼 말이다. 물론 돌봐야할 가족이 있어 당장은 무리인듯해서 쉽사리 결정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그것이 내 뜻이 아니라면 어느순간 어떻게 그러한 과정이 진행될 지는 나도 모르겠다.

하나님이 내안에 이러한 물음을 주신 게 그냥 배부른 상황이니 머리나 써라라는 의미는 아닐 터이고(그래서 당신께 계속 묻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쉽게 얻고 알 수 있는 거라면 고민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결과는 분명히 단순하면서 강력하리라는 것은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진리는 단순하지만 강력했다라는 것은 성경과 이 세상이 늘 이야기해오고 있는 것이니까.


출연진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디몬 하운스, 제니퍼 코넬리

주요 단어 : 시에라리온 내전, 남아프리카 제32연대, 블러드 다이아몬드, 내전, 소년병사(유-레)


아버지의 부정, 가족에 대한 사랑이 나의 주목을 끌었음.

아들 디아(Dia Vandy)에게 솔로몬 밴디가 하는 말 'I am your Father'


진리는 늘 단순하다. 그리고 가장 강력하다. 다만 이런 간단한 진리들이 여기저기에 그냥 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서로 섞이고 엉키다 보니 이런 복잡한 세상이 됐다. 즉, 다이아몬드는 아름답다. 순수하다. 비싸다. 등등의 간단한 내용들로만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서로 얽히다 보니 어지러운 세상을 낳게 됐다.


아무튼 아들에게 다른 말 다 필요없고 내가 네 아버지다(내가 니 애비다)라는 한 마디에 모든 것이 해소됐다.



여느 스릴러물처럼 악당들의 꾐에 넘어간 부부의 고생담이다.

뭐 색다를 것까지는 없었지만, 딱 한가지!

아내를 지켜주기 위해 남편이 대신 희생하는 장면. 아내가 욕실창문으로 도망간 것처럼 위장한 후 실제로는 천정에 아내를 숨겨놓고 본인은 현관문으로 나가려다 악당들에게 사시미 회떠주시는 남편. 그리고 그것을 천장에서 지켜보면 쏟아지는 눈물을 삼키는 아내.

문제는 이 부부가 이혼직전의 부부라는 점. 서로에 대한 애정의 흔적은 찾아볼래야 찾을 수 없는 상태. 유일한 끈인 아이마저 죽었으니 이들에게 무슨 정이 남았을까? 하지만 위기의 상황이 그들을 오히려 회복시켰다고나 할까? 물론 영화적 설정이긴 하지만. 단순히 남편의 아내에 대한 사랑뿐만 아니라 남자가 여자를 지켜야만 하는, 강자가 약자를 지켜줘야 한다는 태고로부터 흘러오는 숙명과 같은 것이라고 해야 할 듯.

내 평생동안 나의 가족에 대해 품어야 할 마음이다.


간만에 아이들 재워놓고 혼자 영화를 봤습니다.

'몬스터'

내용이야 어쨌던 샤를리즈 테론이라는것을 알면서 봤음에도 전혀 알아볼 수 없다는 것에 새삼 놀랬습니다. 만약에 그런 외모의 여자가 제 옆에 다가선다면 흠칫 놀라면서 꺼려할 정도로 말이죠. 이게 분장의 힘이라는 것을 알더라도 꺼릴 것 같더라는.

하지만 단순히 분장효과만으로 그 모든 것을 때우려고 하지 않더군요. 어눌한 말투며 어색한 몸짓.. 정말 원래 그런 여자인가보다라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역시 연기자는 외모도 중요하지만 연기력으로 승부해야한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준 좋은 영화였습니다.

ps : 보기 전엔 호러영화줄로 잘못 알고 대충 시간때우기용으로 보려고 했는데... 진지한 영화더군요.^^; 마지막엔 가슴이 먹먹해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라는 속담처럼 이 애니의 중반까지는 '이거 뭐냐?'라는 생각뿐이었다. 애니의 배경은 고사하고 도대체 뭘 말하려는 건 지 궁금했다. 아무리 오시이 마모루 작품이라지만 이번 건 많이 난해하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중반 이후 약간의 배경설명과 그 때부터 본격적인(액션이런거 기대하면 안된다^^;) 내용이 전개되자 조금 흥미가 땡기더니... 끝에는 허무한 듯 아니면 아리송한듯한 여운을 주며 끝이 났다. 주인공이 돌아온다면 대부분의 애니처럼 평범하게 끝났겠지만....

물론 이 내용대로라면 주인공은 다시 기억이 주입된 킬드레(killed re, 다시 죽어서 되돌아오는 것을 의미하는 듯)로 돌아오겠지.

주인공의 '같은 길이라도 꼭 같은 법은 없어'라는 마지막 대사는 처음엔 알 듯 말 듯 아리송하기도 했지만, 곱씹어 보니 의미가 꽤 있다. 보자마자 그것을 글로 옮길 정도로 머리 속에서 명쾌히 풀어지지는 않지만 말이다. 늘 같은 일을 하는, 다람쥐 챗바퀴 도는 듯한 나같은 사람들을 빗댄것인지? 더 확대해 보면 요즘의 많은 사람들의 한숨 섞인 밋밋한 인생에 대해 '거기서 탈출해'라고 외치는 듯 하다.

아무튼 오시이 마모루 때문에 봤지만, 또 그래서 약간의 실망도 중간에 했지만 긴 여운이 남는 좋은 애니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공각기동대식 화려한 액션에 대한 기대는 금물, 물론 중간중간 나오는 도그파이팅이 나름 괜찮긴 하지만 그것에 중점을 둔 애니가 아니므로 적당히 기대하세요.



지난 번 카라대위의 이야기에 대해서 궁금한 점들을 이야기했었는데 여전히 미궁입니다. 도대체 전생, 아니 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매우 궁금해지는군요. 분명 전체 스토리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에 틀림없는데도, 다른 캐릭터에 비해서 너무 포장을 해놓는 듯 합니다. 도무지 종 잡을 수 없다는...


1천년전 13번째 종족이 살았던 지구에 불시착한 카라와 현재의 카라는 무엇일까요? 게다가 사일런도 아니면서 마치 사일런일 것같은 뉘앙스는? 헤라가 납치되어 버린 상황이긴 하지만 여전히 카드는 인간들에게 있는 것일까요?


☟ 이러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히 아빠인듯한데. 도대체 어렸을 적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마지막으로 가면서도 계속 물음표만 양산해 놓는 배틀스타입니다.


(당신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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