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지껏 보려다 자막 등의 소소한 문제로 미뤄놨던 ‘타인의 삶’을 보게 됐다.
시끌벅적하고 화려한 영화들도 재밌지만, 적막감이 흐르고 어찌보면 영화관에 부족한 수면을 취하게 해줄 수 있을 정도로 잔잔하게 흐르는 전개다. 그렇지만 치밀함으로 대표 되는 독일의 영화라서 그런가, 아니면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 때문인지 1분도 지루하지 않게 흡수되어 본 듯 하다.
특히 ‘비즐러’ 대위를 연기한 배우는 그 눈빛이며 행동 하나하나가 빨려 들어가는 듯 했다. 그리고 작가 ‘드라이만’과 아내역 ‘크리스타’의 연기 또한 탁월했다.
냉전 시절 장벽 하나를 사이로 분단된 동독의 슈나지(우리로 치면 국정원)의 요원인 주인공이 작가 부부의 삶을 엿들으며 반평생 살아온 자신이 속해있는 시스템에 대한 의문을 점차 가지게 되고 오히려 그들에게 동화된다는 내용이다.
극 중, 주인공 비즐러 대위는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만난 유치원 꼬마로부터 자신이 속한 조직에 대한 비난을 듣는다. 평소와 같으면 당장 그 아이의 이름을 묻고 부모를 잡아 들이겠지만, 이미 그 비난에 대해 답을 잃게 된 그는 아이의 이름을 물으려다 그만둔다.
내용을 보면 주인공의 앞날이 순탄치 않을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단순히 끝낸다면 영화가 아닐 터. 그렇게 우여곡절의 시기가 지나고 몇 년 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역사적 사건 또한 지난다.
독일 통일 후 구동독 주민들이 삶의 수단을 제대로 구하지 못해 힘들어한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왔다. 특히 하위 말단 들일수록. 게다가 비즐러 대위처럼 자신의 조직으로부터 밀려나 잊혀져 있는 경우라면 더더욱.
그렇지만 그 체제로부터 핍박 받고 힘들어하던 이들, 드라이만과 같은 이들은 그 세월을 견더낸 대가를 얻게 된다. 하지만 동독의 체제에서 자신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에 대해 늘 궁금해 하던 그는 우연히 비즐러 대위의 흔적을 발견하고 그가 있어 지금의 드라이만이 있었음을 알고 그에게 어떤 방법으로 감사함을 전하게 된다. 그 방법은 직접 영화를 보시길.
영화 보는 내내 울적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결국 그렇게 끝날까라는 의문도 들었는데 영화의 마지막에선 약간의 보답을 해준다.
좋은 영화다. 예전에 들었던 평이 괜한 것이 아니었음을 확인했다. 다른 이들도 봤으면 좋겠고. 또 보면서 마음 한견에 드는 생각은 시절과 체제, 그리고 다루는 방법을 제외하곤 우리 시대와 다른 게 뭔가라는 물음이 든다.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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