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부류일 듯 하다.
1. 군대는 다녀왔는데 전쟁하고 싶어 발정난 놈 들.
2. 그리고 군대는 간 적 없지만 지들 보기에 못마땅해 보이는 이들.

청와대 청원글에 우크라이나 침공 어쩌고 하면서 군에 간 자식들 휴대폰을 몰수해야 한다나.
미친 놈들. 그것 때문에 군내 병영사고가 얼마나 줄었는데.
군대 기강이 헤이해졌느니 어쩌니 하면서 기껏 생각해냈다는 것이 휴대폰 반입 금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윗대가리들이 일만 똑바로 하면 장병들이 휴대폰을 들여다보던, LOL 쳐하고 있던 문제 될 게 아니다. 어차피 군대는 위에서 수직으로 명령 내려오는 곳이니 시키면 할테고, 전쟁터 나가서 싸우라면 싸워야 한다. 그런데 관리자들이 저 할일 똑바로 안하고 군납비리나 저지르고, 병영환경 엉망으로 해놓고 휴대폰만 뺏어가면 임무수행이 제대로 된다던?

군대는 사기다. 사기를 진작시키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을거다. 그리고 그 방법은 그 시대의 흐름에 맞춰 가는 것도 있을 테고. 군대 첫 입대해서 몇 주 또는 몇 개월 세상과 단절돼서 지내 본 이들은 다들 알 거다. 
분리된다는 것의 두려움. 
그건 연인 간의, 부모 형제와의, 지인들과의 관계 뿐만 아니라 매일 매일 변해가는 세상의 흐름으로부터 멀어져 간다는 공포다. 그걸 견디지 못하다보면 탈영하는 이들도 발생하고 심지어는...
그래서 휴대폰의 지급이 병사들에게 주는 긍정의 힘은 산술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게 아니다.

정작 우크라이나에서도 예전의 전쟁과는 다르게 현장의 적나라한 영상이 전달되다보니 그런 측면에서는 안타까움이 크지만, 반면 마냥 밀릴거라고 여겼던 약자의 분투가 세상에 그대로 보여지면서 그들 스스로를 더 묶어주는 여지껏 경험해보지 못한 큰 효과를 거두고 있다. 그래서 일론 머스크가 스타링크를 우크라이나에 보낸다고 하지 않나.

분명 우리군에서 어쩌다보니 도입한 휴대폰 도입은 지금도 기대 이상의 효과지만 전장에서도 기존의 틀을 깨는 효과를 줄 거다. 그런데 휴대폰을 뻇으라고? 미친 새끼들. 전쟁하고 싶어 발정난 개새*들. 저들은 정작 일 터지면 가장 먼저 벙커로 아니 물건너 지들 조국으로 도망갈 놈들일 듯 하다.

큰 아이도 몇 년 뒤면 군대가게 될 텐데 스마트폰 하나가 자녀와 부모에게 주는 위로와 안도감은 겪기도 전이지만 벌써 체감된다.
헌법에 대한민국 국민은 국방의 의무를 지게 되어있다. 아들들이 조국의 영토를 지키러 가는 거지 무슨 수도승 되러 가는거는 아니잖는가? 
맨 앞에 말했던 휴대폰 뺏자는 놈들, 지 아들들은 군대를 보냈을까? 물론 보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대다수의 국민이 그 인간들의 생각과 다른데 왜 지 생각이 옳다고만 주장하는지.

 

 

인생은 천피스 또는 만피스 퍼즐 같다.
결과물을 보면서 퍼즐을 풀면 쉽게 풀어갈 수 있다.
그런데 결과물을 알 수 없다면?
미노타우루스의 미궁처럼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할 테고, 그럼에도 결과물을 얻는 것은 쉽지 않다.
태생부터 정답을 알고 있는 인생이라면 퍼즐 맞추 듯이 쉽게 조합해 나간다. 그런데 주변에 어떠한 도움도, 또는 변변한 조력을 받을 수 없는 경우라면 후자와 같다.
그래도 노력 여하에 따라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한다면 결국에는 그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이번에는 두 개의 인생이 만났다. 그래서 그 퍼즐을 풀어가고자 한다.
두 명이 머리를 맞대 풀어가니 그나마 서로에게 도움이 될 지도.
그런데 서로의 퍼즐이 다른 퍼즐이었다면?
아무리 맞춰봐도 결과는 나올 수 없다.
비슷한 조각들은 있을 수 있다. 모양이 비슷한데 그 조각의 그림이 다르다. 
아무튼 결과는 나올 수 없다.

결혼이 그런 것 아닌가 싶다.
성격이 달라도, 살아가는 방법이 달라도, 방향이 같으면 그 결혼은 지속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결혼을 유지하는 요소에 대한 의견이 각각 다를 수는 있겠지만 퍼즐처럼 서로 다른 조각을 가지고 합치려고 한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그 끝을 볼 수 없을 것 같다. 
사전에 서로 다른 퍼즐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 시작도 안했거나 대안을 마련했을 수도 있었을테다. 그마저도 제3자의 확인이 아니고서는 두 개인지 알 길이 없다.
왜 우리는 안 맞는 거지라는 의문표와 힘겨운 노력만을 계속 기울일 뿐 해결은 할 수 없다.

흠.... 이 글을 끄적이는 내 상황이 그러한가보다.
이십년 넘은 결혼생활. 누군가에게는 겉보기에 그럭저럭 좋아보이기도 한 모양이겠지만 정작 그 안의 혼돈과 괴로움을 어떻게 알까?
분명 서로 다른 퍼즐을 들고 결과물을 내려고 하는 상황인 듯 하다. 우리 부부는. 결국...

교회가 이 지경이 된 이유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개인적인 견해로는 두 가지.
1. 신사참배에 대한 트라우마
일제강점시기에 신사에 대한 참배를 교회 대다수가 참여하면서 광복 이후 그 부끄러운 행위에 대한 교회의 잠재의식에 자리잡은 외상후 또는 이른바 트라우마.
이러다 보니 코로나 시국에서 방역을 위한 명단 제출 등을 거대권력에 대한 굴종으로 보고 처벌을 불사하며 제출을 거부하는 것은 저 기저의식에 깔려있는 신사참배라는 트라우마 때문 아닐까? 현 정부를 적그리스도, 악의 세력으로 인식하는 상당수의 교회라면 더더욱.
2. 목사 양산 시대
그럼 이런 어처구니 없는 잘못된 인식에 대해 그것도 일반 교인들까지 이런 비상식적인 이해를 하고 있는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교회의 유일한 해결책은 이끄는 목사의 능력인데, 글쎼다. 질과 양 중에서 양만을 중시하여 능력과 자질이 수준 이하인 아니, 당초에는 멀쩡했을지라도 최종 결과물은 왜곡된 현실인식을 하는 목회자들이 양산됐다.
그런데 왜 꼭 목사만일까?
목사만이 하늘과 땅을 잇는 유일한 통로라는 구약시대 제사장의 권위를 신약시대에도 그대로 적용하는 몰이해. 그래서 오로지 목사 만이 중요한, 평신도는 그냥 따라만 와라는 기이한 형태를 가진 한국만의 목회자 산업이 탄생된 데 기인하는 것으로 본다.
독일도 나치독일 시절 본 회퍼 목사같은 분 덕에 종전 후 그들의 신앙을 되짚어 보고 진정한 참회를 이끌어냈다고 본다.
우리나라도 그에 못지 않은 주기철 목사, 손양원 목사같은 분들이 있음에도 광복 이후 교회는 신사참배에 대한 트라우마를 이 분들 이름을 들먹이는 것만으로 대충 넘어가고 이후 권력에 빌붙어 아니 권력의 한가운데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니 지금처럼 광복 이후 뿐만 아니라 수백~수천년간 누려온 기득권에 대한 시대적인 대변혁을 맞이하여 이들과 결탁하여 잘 지내온 교회의 핵심권력들이 움직였다고 여겨진다. 비록 개교회로 흩어져 있는 듯 하지만 같은 이해 가운데 그 들 밑에 깔려있는 수많은 교회와 목회자들에게 중세 교황처럼 교시하고 세뇌하면서 이 지경에 이른 듯 하다.
'돈, 섹스, 권력'이라는 책이 90년대 초에 두란노서원에서 나와서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교회에 대해 지적한 것이지만 결국 이 마저도 면피용으로 끝난 것 같다. 3종세트를 모두 획득한 채로 말이다.

맥북시리즈를 사용한지도 벌써 12~13년 되가는 듯 함.

처음에 화이트맥북(2008)을 쓰다가 1년 조금 지나, 유니바디 맥북프로(2009, 15), 그러다가 레티나 맥북프로(2012, 15), 그리고 현재 사용 중인 맥북프로(2017, 15 터치바)까지 매번 애플케어를 먹여줬다. 싼 비용도 아니어서 구매 비용의 10% 정도 되는 금액이라 보험이라 여기면서도 과연 얼마나 혜택을 볼까 싶었다.

물론 그 사이 맥세이프가 두 번인가 날아가서 무상교체한 적도 있고, 갑자기 정신을 잃은 맥북 프로를 허겁지겁 용산까지 가서 무상으로 되살려왔던 적도 있었다. 그렇더라도 큰 탈 없이 써온 터라 마지막 애플케어 구매 시에는 과연 이게 잘 하는 짓인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 오랜 사용 경험에 보답인지 아니면 역으로 애플의 제품 QC에 문제가 생긴 건지는 몰라도 제대로 애플의 '케어'를 받았다.

이번 맥북프로는 영입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usb-c 포트 4개 중 하나가 작동 불량이 됐다. 바로 고쳐볼까도 싶었지만 나머지 세개로도 충분히 잘 돌아가니까 애플케어 종료 때나 고쳐볼까 하고 그냥 두던 중, 애플케어 종료일 한 달 앞두고 간만에 애플 가로수길에 예약을 걸어뒀다. 사실 그 때만 해도 간단한 체크로 해결될 줄 알았는데 정작 당일 가서 지니어스가 진단을 내린 내용은 아래와 같이 처리됐다.

<1차 수리 결과 및 비용>

처음에는 I/O보드 교체만 하면 될 것 같다 하더니 귀찮았는지 아니면 확실한 처리를 위해서였는지 로직보드까지 통째로 바꿔주었다. 사실 3년 이상 쓰게 되서 하판 열어 먼지제거나 CPU 써멀그리스 같은 거 보완해줘야하나 고민 중이었는데 한 번에 해결된 셈. 아무튼 비용도 애플케어 없었다면 99만원이었을 것이 무상처리됐다. 사실 99만원이면 애플이니 그런가싶지만 웬만한 중급 노트북 가격이다.

이때 지니어스가 했던 말이 있었다. 배터리가 82~4%를 오락가락 하는데 80% 미만이면 교체대상이니 애플케어 종료 전까지 막 굴려보라고 넌지시 팁을 줬다. 이런 멋지 지니어스같으니^^. 요리사가 싫어할 것 같은데 말이다. ㅎㅎㅎ 

아무튼 하루만의 수리 후 돌려받은 맥을 복원(로직보드를 교체하다보니 ssd까지 교체. 그래서 타임머신으로)하고 일주일 정도 정말 열심히 배터리 이용을 하고 있던 중, 문득 화면이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화면에 푸른 멍같은게 보였다. 사실 예전부터 느꼈던 것이었지만 그 때는 맥오에스에서 구현한 창의 투명도 효과인줄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 왜 있잖은가? 바탕화면이 흐릿하게 배경처럼 보이는거. 진짜로 상당기간 그런거로만 여겨왔다가 복원과정 중에 회색화면에 나타난 이상한 모습이 복원 후 같은 자리에 그대로 색깔만 바뀐 채 나타나니 그 때서야 문제를 파악한 것.

애플 상담사와의 채팅을 통해 캡쳐화면과 아이폰으로 찍은 화면을 비교해가면서 결국 두번째 수리 예약. 지난 주에 다시 한 번 가로수길로 갔다. 애플스토어가 국내 들어온 이후로는 공인인증서비스센터는 패스다. 용산의 '대화'도 여지껏 잘 서비스받았지만 그래도 역시 믿을 것 직영뿐. 

아무튼 두 번째 방문 시 또 다른 지니어스가 이것 저것 돌려보더니 화면 교체해야한다고 하더니 갑자기 지난 번에는(불과 2 주 전) 안 걸렸던 배터리의 건강상태를 보면서 의아하다며 뭐라했다. 정확하게는 아니어도 지난 번 지니어스가 배터리가 간당간당하더라라는 말을 했다는 거 정도만 말해줬다. 그 후 지니어스는 상판, 액정, 배터리(하판, 키보드 포함)까지 모두 교체하면 비용이 꽤 나오지만 애플케어가 있으니 무상이라는 말과 함께 하루 정도 걸릴 거다라고 하면서 수거 완료. 내 앞선 예약자는 애플케어가 없던 지 아니면 기간 만료된 듯(맥북 2017 이전 세대이므로) 했는데 액정 문제로 교체해야하지만 비용이 일백만원 이상일 거라 하는 말에 고민하던 걸 봤다. 하여간 그렇게 해서 처리된 결과는 아래와 같음.

<2차 수리 결과 및 비용>

이렇게 해서 총 비용은 230여만원이었고 애플케어 적용으로 전액 무료처리됐다. 그냥 하판 덮개를 제외한 모든 게 교체됐다. 사람 몸이 몇년에 한 번 사이클로 모든 세포를 교체한다고 하더니 딱 그런 케이스인 것 같다.

하여간 여지껏 애플 제품 써오면서 애플케어의 덕을 톡톡히 아니 그 정도 표현으로는 부족할 만큼 혜택을 봤다. 그냥 윈도우 노트북 고급형 한대를 구입한 비용정도. 물론 현 세대 cpu도 gpu는 아니지만 새 제품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새로 쓰는 것이니 앞으로 몇 년 잘 사용해줘야겠음.

결론 : 애플 유저라면 애플케어 꼭 먹여주시길.

ps : 애플케어를 잘 적용했으니 고맙기는 한데 예전에는 별 탈없이 써왔던 맥북시리즈인데 최근 와서는 제품 자체의 문제가 있는 건가? 궁금해짐.

pc가 주류였던 세상에서는 화면에 가득찬 웹브라우저, 문서편집기를 보면서 작업을 하거나 글을 읽었다.

아이폰 바로 이전 아이팟터치를 만지면서 감탄사를 연발하면서도 드는 궁금점은 과연 저 작은 화면에 어떻게 정보들을 다 보여줄 것인가 였다. pc 또는 노트북이라면 많은 정보를 큰 화면에 한 번에 보여줄텐데 손바닥만한 작은 화면은 무리일테니 스마트폰도 결국은 pc나 맥북같은 플랫폼에 계속 종속될 거야라는 예측을 해봤다.

하지만 지금 세상이 어디 그런가? 모든 사람이 '스마트폰 좀비'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거의 모든 일상사를 스마트폰으로 처리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앞선 의문은 잊고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는데 오늘 문득 맥북프로를 열고 여지껏 즐겨 써오던 RSS 앱인 'REEDER' 크기를 조절하고 써보니 너무나도 읽기에 편해서 다시 그 생각이 떠올랐다.

여지껏 REEDER를 전체화면으로만 놓고 썼는데, 읽기에 산만한 느낌이 들어 화면 크기를 일부러 조절해봤다.

<REEDER, 전체화면>

그리고 너무나도 읽는 게 편안하다는 것에 깜짝 놀라게 됐다.

<REEDER, 창 모드 크기 조절 적용>

놀라웠다. 여지껏 큰 화면에 꽉찬 내용이 당연하고 그래야만 하는 걸로 여겼는데. 특히나 맥북이나 pc 처럼 대형화면을 별도로 사용할 경우에는 말이다. 아마도 큰 화면을 다 안채우는 것에 대해 '효율성'이 떨어진다거나 뭔가 허전함에 그랬던 것 같다. 아니면 스마트폰에 너무나도 적응이 되어 있다보니 이제는 사람의 인지체계가 스마트폰의 사이즈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익숙해져서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시중에서 많이 보는 책들도 스마트폰같은 폭과 크기를 가진 사이즈로 나온다면 어떨까? 물론 스마트폰으로도 안보는 책을 종이책으로 일부러 볼 일은 없겠지만서도 책을 읽는 수고가 한결 덜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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