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라는 속담처럼 이 애니의 중반까지는 '이거 뭐냐?'라는 생각뿐이었다. 애니의 배경은 고사하고 도대체 뭘 말하려는 건 지 궁금했다. 아무리 오시이 마모루 작품이라지만 이번 건 많이 난해하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중반 이후 약간의 배경설명과 그 때부터 본격적인(액션이런거 기대하면 안된다^^;) 내용이 전개되자 조금 흥미가 땡기더니... 끝에는 허무한 듯 아니면 아리송한듯한 여운을 주며 끝이 났다. 주인공이 돌아온다면 대부분의 애니처럼 평범하게 끝났겠지만....

물론 이 내용대로라면 주인공은 다시 기억이 주입된 킬드레(killed re, 다시 죽어서 되돌아오는 것을 의미하는 듯)로 돌아오겠지.

주인공의 '같은 길이라도 꼭 같은 법은 없어'라는 마지막 대사는 처음엔 알 듯 말 듯 아리송하기도 했지만, 곱씹어 보니 의미가 꽤 있다. 보자마자 그것을 글로 옮길 정도로 머리 속에서 명쾌히 풀어지지는 않지만 말이다. 늘 같은 일을 하는, 다람쥐 챗바퀴 도는 듯한 나같은 사람들을 빗댄것인지? 더 확대해 보면 요즘의 많은 사람들의 한숨 섞인 밋밋한 인생에 대해 '거기서 탈출해'라고 외치는 듯 하다.

아무튼 오시이 마모루 때문에 봤지만, 또 그래서 약간의 실망도 중간에 했지만 긴 여운이 남는 좋은 애니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공각기동대식 화려한 액션에 대한 기대는 금물, 물론 중간중간 나오는 도그파이팅이 나름 괜찮긴 하지만 그것에 중점을 둔 애니가 아니므로 적당히 기대하세요.



지난 번 카라대위의 이야기에 대해서 궁금한 점들을 이야기했었는데 여전히 미궁입니다. 도대체 전생, 아니 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매우 궁금해지는군요. 분명 전체 스토리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에 틀림없는데도, 다른 캐릭터에 비해서 너무 포장을 해놓는 듯 합니다. 도무지 종 잡을 수 없다는...


1천년전 13번째 종족이 살았던 지구에 불시착한 카라와 현재의 카라는 무엇일까요? 게다가 사일런도 아니면서 마치 사일런일 것같은 뉘앙스는? 헤라가 납치되어 버린 상황이긴 하지만 여전히 카드는 인간들에게 있는 것일까요?


☟ 이러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히 아빠인듯한데. 도대체 어렸을 적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마지막으로 가면서도 계속 물음표만 양산해 놓는 배틀스타입니다.


(당신은 누구?)

오늘 메일을 열어보니 교보문고 메일의 첫구절이 내 눈을 집중시켰습니다. 보자마자 '음 이것은 혹시 은영전?'

^^ 맞다. 바로 밑에 은하영웅전설이라고 떡 하니 사진도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보니 무척이나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접속(교보 북로그 리뷰글)해보니 글을 써놓은 분이나 리플을 다시는 분들이나 참 동질감을 느끼게 만들게 했습니다. 물론 리플도 달아들이고.

그런데 이분은 본편 10권과 외전 4권을 확보하지 못한 안타까운 사연의 주인공이였습니다(?)^^; 난 대학시절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쯤 모두 구해놓았으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네요. 그런데 내가 이책을 어쩌다가 접하게 됐는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았는데.... 글 쓰다 보니 어렴풋이 떠오는게 대학교내서점에서 우연찮게 접했던 것 같습니다. 우연히 붙잡은 책 하나를 두고 그자리에 서서 한시간인가를 죽 읽어내려갔던 기억이네요. 좀처럼 이런 행동을 하지 않는 난데...

아무튼 중간고사 기간과 겹치는 시기에 이 책을 접해버렸고 본편 10권과 외전은 좀 구하기 힘들었지만 대구시내 책방을 뒤져가며 모조리 구해서 읽은 다음.... 물론 시험은 역시 꽝이었지만. 그러나 양웬리라는 인생의 스승을 접하고 난 후로 내 인생의 가치관이 바뀌었습니다. 좀 더 객관적인 시각과 주체적인 사상관을 가지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위에 글을 적으신 분과 리플다시는 분들과 같이 민주주의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고 현 시대를 비추어보는 안목을 기르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양웬리라는 가상의 인물을 이용한 다나카 요시키의 사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사진은 집에 꽂혀있는 것으로 교체해야 겠군요.흠~~)

아무튼 이 책을 구하는 분들이 꽤 많고,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을 구하지 못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는 점이 괜시리 가슴 뿌듯합니다. 여전히 우리집 서재 밑칸 한 블럭을 혼자 차지하고 있고, 그래서 가끔 아내의 질시(?)를 받긴 하지만 언젠가는 내 아이들에게 읽히고 싶은 욕심입니다. 물론 녀석들이 관심을 가져주어야겠지만.

고등학생 시절에 삼국지를 열번 가까이 읽었고 관우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었던 나였지만 은영전을 접하고 난 후로 삼국지의 매력은 반감될 정도로 은영전은 분명 매력적입니다. 단순히 글의 재미를 떠나서 현 시대를 다시 바라보게 하고 과연 나는 어떤 생각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계기를 주기도 합니다. 정치뿐만이 아니라 경제에 대한 가치관까지 더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양웬리의 아빠가 늘 입에 달면서 소중하게 여기던 그 '돈'. 자본의 흐름!

아직까지 이 희대의 작품을 접해보지 못한 분들이 계시다면 꼭 구해서 읽어보실 것을 권합니다. 물론 구하기가 매우 만만치 않을겁니다. 하긴 요즘엔 해적판 이북도 있긴 합니다만 종이를 넘겨가며 읽는 은영전의 제맛을 느끼기엔 부족합니다. 또 애니메이션도 나와있지만 역시 원작의 느낌에는 약간.

아! 그러고보니 게임으로도 나와있었죠. 제일 재밌게 했던 것은 은영전 3과 4편이었던 것 같군요. 작년말엔가 최신작이 나온 것으로도 알고있지만 그 때의 느낌에는 따라오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은영전 3


은영전 4



가장 최신작인 은영전 6


다시 시간을 내서 읽고 싶은 책중에 하나인 은영전. 지금까지 이 책도 열번 이상 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또 봐도 새롭습니다.(성경을 이렇게 봐야하는데. 그러고 보니 책 중에 지구교도가 기독교인을 빗댄 거 잘 아시죠. 그러면서도 저는 하나님 잘 믿고 지냅니다^^)



24시를 접한 것도 벌써 3년이 된다. 키퍼 서덜랜드의 낮게 깔리는 음성과 그 눈빛에 사로잡혀서 이젠 벗어날 수 없는 미드 중 하나가 됐다. 또 하나는 배틀스타 갈락티카의 리 아마다 함장.


24시를 늘 화려한 액션과 스릴, 그리고 그 충격적 반전을 보는 재미에 봤다고 생각해 왔지만, 오늘 시즌7 8화의 단 한줄의 대사는 지금껏 봐왔던 그 어떤 대사와 장면보다도 더 강렬하게 다가왔다.


극 중 르네워커의 안위를 확인하기 위해 래리 모스 부장과 만나는 장면 중 잭바우어가 던지는 그 대사. 정말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함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특히 조직생활 속에 갇혀 있는 나같은 부류의 사람들에겐


잭바우어 : " 언제까지 모두가 당신네들의 규칙을 따르고 있다고 생각할거지?" " 아무도 그러고 있지를 않아!"

~

래리모스 : 규율이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잭바우어 : 오늘은 아니야!



요즘 베스트셀러 중에 상당수를 보면 '격식의 파괴', '구질서에 대한 혁명적 전환' 등등 기존의 세계로부터의 도약, 틀깨기, 패러다임 쉬프트를 외치는 내용이 많다. 물론 공감하지만 현실적으로 느끼기에는 좀 무리가 많고, 대부분이 먼나라 이야기 하듯 하는 것 같았었다. 


그런데 오늘 잭바우어의 단 한 줄의 말로 확 느껴버렸다.^^ 매우 구체적이고 직설적으로 표현하다보니 그런것인가? 아무튼 지금 세상은 아무도 남이 만들어놓은 규칙따위엔 관심이 없는 듯 하다. 아니 매우 불편해하고 있다. 래리모스가 규율이 우리를 더 나은 단계로 나아가게 한다는 말도 분명 일리가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요즘과 같은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조직생활 속에서 늘 느끼는 것은 분명 미래지향적이기 위해 창의를 외치고 혁신을 외치고 있지만 결국 공염불일 수밖에 없는 것이 조직이라는 틀 자체가 규제가 되고 있기 때문에 창의적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그 틀안에서의 창의는 가능할 지 모르겠지만.


톰 피터스의 '미래를 경영하라'는 책을 요즘 읽고 있는데, 톰이 외치는 것이나 잭이 말하는 것은 일맥상통한다고 본다. 톰이 수백 페이지에 걸쳐 요란하게 써 놓은 것을 잭은 단 한마디로 결정해 버렸다. 역시 잭 바우어는 시대의 영웅이다.

드디어 시작했습니다. '24시'보다 더 기대해왔던 '배틀스타 갈락티카'

원작에서 13번째 종족의 행성인 '지구'는 2차 대전 중이었다는데, 이번 지구는 그와는 다릅니다. 아주 많이.



(허망한 결과에 입을 굳게 다문 아마다)


(앞으로 카라의 이야기가 기대됩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야기를 꼬아놓은건지)

과연 지구에 도착했는데 이야기를 어떤 방향으로 전개할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에 제작진은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다섯번째 사일런의 정체와 그 4명의 사일런 스토리, 그리고 아마다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 가운데 있는 카라대위의 운명이 앞으로 전개될 것 같습니다.

이제 대단원의 막을 향해 가는 배틀스타, 이런 멋진 드라마를 얼마 지나면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우주의 구조
카테고리 과학
지은이 브라이언 그린 (승산, 2005년)
상세보기


작년 9월부턴가 읽기 시작한 브라이언 그린이 쓴 "우주의 구조"

아 힘들었습니다. 이전에 읽었던 "엘레건트 유니버스"도 꽤 오랜기간에 걸쳐 읽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좀 쉽게 넘어가나 했는데...-_-;;

그래도 시간과 공간에 대한 기존의 시야를 넓히고 뒤집는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전작의 범위를 넘어서는 장대한 스케일을 보여주더군요. 이제는 시간과 공간이라고 하지않고 "시공간"이라는 용어를 쓰도록 노력해야겠군요.^^;

이 책을 읽는 동안 주욱 크리스챤의 입장과 아닌 입장을 왔다갔다 하면서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과연 우리가 지금껏 듣고, 보고, 알아온 성경적 지식과 이에 반해 새롭게 드러나고 있는 우주의 구조는 과연 상충하는 것인가 아니면 원래부터 그래왔듯이 서로 같은 입장인가라는 점 이었습니다. 물론 브라이언 그린이 기독교인도 아닌데다 그 자신이 엣지재단(Edge Foundation, 리처드 도킨스가 유명하죠) 소속이므로 분명 눈에 보이는 것에 충실한 과학자입니다. 그래서 성경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존재에 대해 코웃음 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책을 읽어가면서 느낀 바로는, 저자 뿐만 아니라 세계의 많은 학자들도 그들의 우주에 대한 지식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이해할 수 없는 우주에 대한 경외심에 가득차게 된다는 것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것만으로 그들에게 '그렇기 때문에 신은 존재합니다'라고 신앙을 권유한다면 더더욱 비웃음의 대상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책의 본문 중에 우주의 연혁, 특히 시간의 방향성에 대한 내용이 있습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과연 우주는 한번 시작한 것인가? 아니면 그 이전의 어떤 우주의 소멸로부터 시작되었는가에 대한 이론을 언급한 것이지요. 그런면서 저자는 우주는 '스스로' 계속 존재해왔지 않는가라는 물음도 던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중에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라는 하나님의 기록이 있습니다. 물론 단어의 일치에 국한해서 '어 여기에 동일한 내용이 있네. 거봐 이미 하나님이 맞잖아~'라고 우기진 않겠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이러한 성경상의 말씀으로 인해 현재의 우주가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된 것은 맞지만, 그렇더라도 하나님은 창조때부터 계신 것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그 이전을 알 수 없는 시기부터 존재하고 계셨음을 알리고 계십니다. 이러한 언급은 지금으로부터 약 4000년 전 모세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불교나 힌두교에서도 이러한 우주의 기원에 대한 언급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무한히 윤회하는 불교의 사상이나 힌두의 사상. 그것이 포함하고 있는 내용은 기독교인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바라보고 있는 점은 동일할 것 같습니다.

뭐 책 한권 읽고 모든 것을 논한다는 것이 우습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어차피 주께서 만들어 놓으신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고,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제 입장에서는 과학의 최첨단에서 매일 쏟아져 나오는 여러 이론들이 오히려 하나님이 베풀어 놓은 우주속에 있는 감춰졌던 비밀들을 찾아가는 과정으로밖에는 여겨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지금뿐만 아니라 과거 갈릴레이, 코페르니쿠스, 뉴튼의 입장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요? 한명 더 넣어본다면(이것은 매우 신중하게 판단해야할 부분이지만) 다윈? - ㅎㅎ 만약에 제가 소속된 교회나 기타 여러군데 몸담고 있는 공동체에서 말한다면 오히려 이단처럼 취급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아무튼 브라이언 그린처럼 최첨단 천체물리이론을 수식하나 전혀 쓰지 않고 적절한 비유와 예시를 통해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대단한 능력입니다. 물론 성장과정을 보면서 입이 떡 벌어질 수 밖에 없는 천재더군요. 아무튼 엘레건트 유니버스 - 평행우주 - 우주의 구조로 이어지는 천체물리부분 책들은 어렵지만 미래에 펼쳐질 놀라운 발견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합니다. 조만간 읽으려고 사둔 리사랜들의 '숨겨진 우주'도 기대가 됩니다.

과연 제가 이 세상을 뜨기 전에 통일이론 또는 끈이론이 법칙으로 드러날 수 있을까요? 아니면 그것을 넘어서는 새로운 이론의 등장이라던지. 하나님이 펼쳐놓은 우주는 너무도 넓기에 지금까지 우리가 알아온 지식의 규모는 너무도 작다라는 것을 다시금 알게한 책입니다.

PS : 시간여행은 그 실현여부의 어려움을 떠나 가능합니다. 다만 먼저 시간여행이 가능하기 위한 웜홀이 만들어진 시점을 기준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전부터 알고 있던 내용인데 이번에서야 그 이유가 정확히 이해되는구요.

나름 스타워즈 광팬이라고 자부했지만 그것이 얼마나 말뿐이었는지 이번 휴가 중 알게됐다.

6편 모두 다 봤고 그 내용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다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스타워즈는 시리즈이기에 한번에 몰아서 봐야만 전편에 흐르는 감동을 느낄 수가 있을 것 같다.

여태껏 미뤄둬왔던 과제였던 시리즈 전편 보기를 이번 휴가 기간 중 아내와 아이들을 모두 휴가보내고(?) 집에 쳐박혀 혼자 몰아서 봤다.ㅋㅋ

당연히 1편(99년작, 팬텀메너스)부터 시작.

그래픽이며, 음향에 대해서는 루카스 필름의 역량이야 말할 필요도 없다.

2년 전엔가 구공화국기사단 1, 2를 플레이하면서 느꼈던 제다이의 느낌이 다시금 몰려오고 있었다.

시리즈 전체의 내용은 여기서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넷상에 널려있으니 넘어가자.^^


제목처럼 그 감동의 쓰나미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것이라서.

첫째는 아미달라와 아나킨의 슬픈 사랑, 이 부분은 2, 3편에서만 집중적으로 느껴져서 시리즈 후반에서는 크게 작용하지 않지만, 첫째를 압도하는 두번째는 바로! 말보다 사진으로 설명한다.

스타워즈팬이라면 누구나 억! 하면서 신음소리와 함께 감동으로 전율할 그 장면


그렇다!

마지막에 과거작품에 있던 것을 그대로 쓰지 않고 아나킨이 다베경으로 트랜스포머하기전의 모습을 넣은 것.

논란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역시 탁월한 선택이다.

이 감동은 마치 건버스터 맨 마지막에 흐르던 그 유명한 ㅜㅜ


이와 거의 동급수준이다. 아마도 안노히데야끼는 스타워즈의 이 부분에서 착안했을지도(그냥 나의 생각)


아무튼 전편을 몰아서 한번에 보기 적극 추천한다.


ps : 보면서 새롭게 보이는 부분들이 많다. 예를 들어 클론의 모델이 된 현상금사냥꾼의 아들이 구작에 등장한다던지(이건 아마도 역으로 보는 것이 맞겠지만), 마차가지로 그가 몰았던 우주선이 다시 등장하는 것과 같은 소소한 재미들이 널려있다. 스타워즈를 처음 접하는 경우라면 구작을 먼저 봐야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 경우는 구작을 보고 상당기간 신작을 봐선 안된다. 왜냐면 숙성을 해야하니까 ^^


작년 초엔가 봤던 애니메이션. 많은 애니메이션 중 스토리 중심의 애니는 많지 않다. 대개는 스토리 + 연출 + 음악을 합치고 대개는 연출에 중심을 둔다.

그러던 중 몬스터는 상당히 스토리를 중시하는 쪽이다. 시리즈는 모두 74화인데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움직이기 때문에 중간에 그만 둘 수 없는 강력한 흡입력을 가지고 있다.

주인공인 닥터 겐조 덴마를 중심으로 한 여러 캐릭터들간 스토리와 각각 캐릭터들의 개별 스토리가 정말 환상적으로 어우려져 있다. 스토리는 절대악의 캐릭터 요한을 추적하는 닥터 덴마의 로드무비(애니)라고나 할까?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내재됐일만한 악마성을 잘 파헤쳤다고 본다. 그러면서도 결국은 사람의 선함에 기대하는 그러한 결말을 추구하는 내용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누군가의 일생에 대한 책을 읽기는 참으로 오랜만이다.
어렸을 적 수도 없이 읽었던 위인전기들... 그들의 태어난 때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있었던 드라마틱한 과정은 그들의 삶을 동경하게 만들고 그들중 얼마는 미래의 나의 모습을 그려보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면 그런 책들 대부분은 승리한 자(그게 전쟁이던, 누군과와의 경쟁이던, 아니면 무언가의 추구에서 결과를 얻어가는 것이던간에)에 대한 기록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미래에 대한 기대는 성공, 승리의 삶만이 중요하게 여겨지게 됐던 것 같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때였던가 '롬멜'이라는 이름을 알게 됐다.

참 기묘한 경험이었다. 지금까지 2차대전하면 패튼, 아이젠하워, 몽고메리, 맥아더 정도의 이름만 알던, 그것도 승전국의 장군들에 대한 승전기에만 익숙하던 나에게 패전국의 장수가 그렇게 강렬하게 다가오다니.
'사막의 여우'
롬멜하면 항상 따라오는 수식어.
여지껏 이러한 이미지로만 알고 있었고 마지막에 권총자살했다는 등의 소문정도.
취미생활로 밀리터리 디오라마, 건담 모델링을 하다보니 2차대전의 독일군에 대한 어느 정도 지식이 있다고 생각해왔지만 정작 그 주역에 있었던 롬멜은 그리 잘 알고 있지는 못하다.
마침 서점을 기웃거리다가 롬메에 대한 책을 발견하고 온라인으로 구입^^

잘 알려진 것처럼 롬멜은 2차대전중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활약이 유명하다.
측면우회술과 같은 매우 전략적인 자신만의 전술로 전장을 주도하는 맹장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전략을 효율적으로 펼치고자 하여도 그는 제국군의 장군일 뿐, 그의 카리스마 넘치는 활약상 이면에는 늘 발목을 잡는 그의 정적들로 인해 북아프리카 전선이후의 그의 모습은 전장을 주도하는 면은 점차 퇴색된다.
노르망디 상륙에 대한 방어 준비과정에서도 그는 군인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동분서주하지만 역시 그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무능한 아군들.
평범한 장교로 평생을 보낼뻔한 그를 일약 스타장군으로 밀어주는 원동력이 된 총통에 대한 절대적 믿음은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점점 회의와 번민으로 이어지게 된다.
결국 총통 암살모의에 대한 주도혐의 등으로 자의반 타의반으로 죽음을 맞이...

기존에 알아왔던 승리하는 롬멜보다는 승리와 실패 그리고 좌절을 경험하는,
단순한 군인의 삶에서 나라와 민족, 사랑하는 이들을 생각하며 고뇌하고 결국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하는 인간의 모습을 본다.
사실 이 책을 접하기 전에 롬멜의 전략과 전술에 대한 전문적인 것을 기대했지만, 정작 롬멜을 명장의 반열에 올려놓게 한 결정적 원인은 그 이상의 것이다라고 저자는 말하는 듯하다.

쉰들러 리스트를 기억하는가?
세상이 아무리 극단적으로 치닫고 있더라도 그 시대를 개선하려는 자들은 있다.
롬멜 또한 그러한 면이 오늘날 새롭게 조명되는 것 아닐까?
절대적 신뢰의 대상이던 총통의 명령에 고뇌하다 결국 후퇴라는 결단을 내리고, 나치 친위대의 만행에 대항하며, 포로 및 점령지의 주민을 공정하고 대우하도록 하고, 그가 있었던 곳에서 롬멜이라는 이름은 단순한 적의 장군 또는 유능한 상관의 이미지를 넘어 신뢰할 만한, 존경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오르지만 어디까지나 적, 아니면 전후의 이들에게나 그런 것이다.

길지 않은 인생이지만 조직안에서, 아니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런 경우를 자주 접한다. 분명 이건 바른 길이 아니며, 당연히 막아야만 하지만 많은 구실거리를 만들며 피해간다.
롬멜이라고 다르겠나?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절반을 승리로 장식해왔던 것을 과감히 버리고(?), 아니 인간이라면 누구가 느꼈을 자연스러운 감정을 따라 가는 그의 인생의 마지막을 향해가는 모습은 '남자는 등으로 말한다'라는 문구를 생각나게 한다. 응(?).. ^^

물론 반론의 여지도 많다. 왜 하필 독일제국군인가라는 점에서.
어쩌겠나?
우리처럼 늘 일본에 대해서 이야길 할 때면 입에 거품물고 외치는 것과 다르지 않을까?
최근 상영했던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를 보고 좋게 말한 한국인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고 충분히 예상가능한 것처럼 롬멜은 그가 있었던 자리를 원망해야 할 지도 모른다... 정말 그럴지도. ㅎㅎ
 " 어머니 왜 저를 독일에 태어나게 하셨나요? " 이럴까?

만약 그가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패튼과 쌍벽을 이룰만한 사람이 되었을까?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 누가 말했으므로 이런 쓸데 없는 상상은 별로...
롬멜 상세보기
마우리체 필립 레미 지음 | 생각의나무 펴냄
총 통의 명령을 어기고 수십만 부하의 목숨을 구한 '위대한 퇴각'을 감행한 총사령관 롬멜. 그는 증오해야 마땅할 나치였나, 아니면 히틀러에 저항한 영웅이었나? 이 책은 지략과 전쟁술 등 기존의 책들에서 다루어진 내용들 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롬멜의 내적 변화에 주목하고 그에 관한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롬멜이 직접 쓴 일기를 비롯해 개인적인 편지들, 그리고 명령 기록들과 메모 등의 원전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또

드디어 시작했다.

시즌 3의 엄청난 떡밥으로 매니아들의 관심을 완전히 잡아둔 sci-fi

초반부터 시종일관 눈을 뗼 수 없게 했다.

이번 시즌을 마직막으로 한다고 했으니까 아마도 호흡은 굉장히 빠르고 박진감 넘칠 듯 하다.

물론 마지막이라서 아쉽긴 하겠지만

이번 에피소드 1의 내용을 공개한다면 스포일러니까 관두고

저번 시즌에서 밝혀진 나머지 4명에 더불어 추가될 1명에 대한 예측이 재밌어질 것 같다.

그 후보에 오를 사람만 했도 여러명이니까 시청자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할 것이고 그게 큰 재미일 듯.

여전히 부머대위는 알흠다우시고, 전투그래픽은 좀 더 진전한 듯 하고, 함장은 더 늙으신 듯, 카라대위도 약간 나이들어 보이다는...

그리고 가이우스는 점점 성인으로 탈바꿈하는건가? 개과천선이라도 시키려고 하는 것인지?

아무튼 이번 시즌이 끝나는 그 날까지 주말이 매우 기다려질 것이다.

이하 캡쳐한 사진들


헉!

여전한 미모


좀 더 향상된 듯한 전투씬

<의미 심장한 장면>

머하는 거냐 가이우스

대체 이둘의 관계는 어떤 관계인지 여전히 헷갈린다.

이들의 미래는? (한명은 가려서 안보임)

최고의 떡밥! 누굴 겨냥하시는거냥?

사용자 삽입 이미지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늘 꿈을 꾸며 그것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가는 이의 이야기

이제 몇십쪽만 더 읽으면 다 읽긴 하는데

왠지 지금 글을 쓰지 않으면 안되겠다라는 느낌이 오길래 흠....


연금술사 영어로 alchemist

납을 금으로 만드려고 했던 고대의 장인들?

납을 금으로 만드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상태의 변화가 아닌 화학적으로 그 성질 자체가 변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그 옛날 배웠던 기억이 난다.

극단적으로 비유한다면 남자가 여자로 바뀌는 정도의 변화라고나 할까?

역사적으로 이를 실현한 연금술사는 단언컨데 아무도 없다.

어찌보면 연금술사는 실패의 대명사일지도.


그렇지만 연금술사들이 이뤄놓은 결과들이 누적되고 또 누적되다가

오늘날의 급격한 문명의 발달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보면 참 아이러니하다.


      실패 + 실패 + 실패 + 실패 ......... = 대성공?


하하~~ 물론 이런 공식은 아니겠지만 끊임없는 열정과 행위의 반복이 소망하는 것을 이루게하도록

주변의 모든 것들을 바꿔가는 듯 하긴 하다.

연금술사가 그토록 소망하던 납에서 금으로 바꾸는, 경천동지할 만한 일들이

오늘날에는 여건만 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 되어버렸으니까.


주인공 산티아고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유년시절 나의 꿈을 생각하게 한다.

크~ 팔로마산 천문대의 소장이 my dream

코스모스라는 책에 완전히 필이 꽂혀서 칼세이건처럼 되려는것이 이유였다.


그런데 지금은 어느 길로 와 있지?

돌이켜보면 산티아고에게 나타난 "표지"와 같은 것이 분명 수도 없이 지나갔던 것 같긴 한데.... 흠

고딩시절 늘 희망학과는 천문학과, 그래서 대학전공은 당연히 천문학을 선택했었지만, 익숙함을 좇으려 한 것이 문제였나?

맞다! 산티아고처럼 떠났어야 했다.

나는 나의 꿈을 위해서 무엇을 했을까? 첫발을 디딘 후에 그냥 머물러 버린 결과가 오늘인건가?


지금은 그 "표지"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인생을 잘 못 산거라고 할 수 있을까?

아직은 알 수 없다. 크리스탈 상점주인처럼 무언가 새로운 것을 깨닫게 될 지도 모르지... ^^

연금술사 상세보기
파울로 코엘료 지음 | 문학동네 펴냄
1987년 출간이후 전세계 120여 개국에서 변역되어 2,000만 부가 넘는 판매량을 기록한 책. 신부가 되기 위해 라틴어, 스페인어, 신학을 공부한 산티아고는 어느날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양치기가 되어 길을 떠난다. 집시여인, 늙은 왕, 도둑, 화학자, 낙타몰이꾼, 아름다운 연인 파티마, 절대적인 사막의 침묵과 죽음의 위협 그리고 마침내 연금술사를 만나 자신의 보물을 찾게 되는데.....

테메레르!

간만에 타오르게 만드는 책을 손에 잡았다.

역시 책은 술술 넘기는 맛이 최고다.

기존 역사에 상상력을 더한 전쟁판타지~~~

이제 1권 보고 있지만 앞으로 볼 3권에 예약판까지 ^^ GOGO

피터잭슨이 영화화를 추진하고 있다하니 더욱 기대만빵

리뷰는 다 읽고 난 다음

ps : 어스시전집(일명 게드전기)보다 넘기는 속도가 빠르다. 아무리 유명한 시리즈라도 개개인마다 선호도차이가 나기 마련인가보다

테메레르 2 : 군주의 자리 상세보기
나오미 노빅 지음 | 노블마인 펴냄
나폴레옹 전쟁이 절정이었던 시대, 격렬한 용들의 공중전이 시작된다! 나폴레옹 전쟁이 한창이던 19세기 초, 용과 비행사로 구성된 각국의 공군들이 전쟁에 참전하면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다룬 판타지 장편소설. '나폴레옹 시대에 용과 비행사로 구성된 공군이 있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라는 가설을 바탕으로 한 이 소설은 1805년 1월 영국 해군 소속의 렐리언트 호가 부화 직전의 용알을 싣고 가던 프랑스 소형구축함을 전투
테메레르 1 : 왕의 용 상세보기
나오미 노빅 지음 | 노블마인 펴냄
나폴레옹 전쟁이 절정이었던 시대, 격렬한 용들의 공중전이 시작된다! 나폴레옹 전쟁이 한창이던 19세기 초, 용과 비행사로 구성된 각국의 공군들이 전쟁에 참전하면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다룬 판타지 장편소설. '나폴레옹 시대에 용과 비행사로 구성된 공군이 있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라는 가설을 바탕으로 한 이 소설은 1805년 1월 영국 해군 소속의 렐리언트 호가 부화 직전의 용알을 싣고 가던 프랑스 소형구축함을 전투

이 책 읽는 것을 굉장히 망설여했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류의 책을 기피하기 때문이다.

마치 '넌 할 수 있어'라는 최면을 걸고 모든 것을 무조건 희망적으로만 바라보게끔 하는 마약같은 느낌이 있어서다.

요즘에 이런 류의 책이 너무나도 많다. 가장 최근에는 'SECRET'같은 책이 대표적일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보게 된 것은 아무래도 나의 종교적 성향때문인 것 같다

레이크우드 교회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미국의 대형교회다.

평소에 미국의 기독교 흐름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 있어 그런 흐름의 선두에 있다고 하는 조엘 오스틴 목사가 쓴 책이니 계속 신경이 쓰이긴 했다.

그래서 큰 맘 먹고 읽었다.(다 읽는 데만 석달 걸렸다. 왜이리 뭉그적거리게 되는지 ^^;)


예상과 그리 다르지는 않다.

그나마 일반인들이 외치는 '네 안에 있는 거대한 용을 깨워라'식의 구호는 아니고, 내가 믿는 하나님안에서 믿음을 키우라는, 그래서 늘 긍정적일 수 있다라는 부분에서는 충분히 공감할 수는 있다.

다만 조엘 목사가 미국 내에서도, 또한 한국 기독교 내에서도 '설탕신학'이라는 비평을 하는 것처럼, 특히 옥한흠 목사님의 지적처럼 복음에 대한 방향설정이 좀 위험하다 싶기도 한 면이 있긴하다.

복음은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피흘림과 죽음, 그리고 부활이 의미하는 구원에 대한 메시지임에도, 조엘 목사는 그런 부분보다는 단지 귀에만 즐거운 듯한, 물론 실생활에서 이러한 삶의 자세가 영향을 끼치는 것은 분명하지만 진정한 복음의 메시지 전파는 미흡한 듯 하다. 조엘 목사가 정규 신학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라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기존의 마인드컨트롤과 같은 주제를 다루는 책과는 분명 거리는 있다. 삶의 모든 부분에서 긍정적일 수 있는 것은 나의 의지가 차지하는 비중보다는 하나님의 역할이 크다라는 것과 그 분에게 전적으로 의뢰할 수 있는 긍정적 사고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는 점에서.

신학분야뿐만 아니라 일반 서적에서도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있어 기대할 만한 책이었다.

그러나 좀 더 복음적인 측면을 건드렸더라면 하는 바람과 또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서 일반대중에게 좀 더 다가갈 수 있었다라는, 요즘 교회가 겪는 딜레마를 우회하는 듯한 책일 듯.

긍정의 힘 상세보기
조엘 오스틴 지음 | 두란노 펴냄
믿는 대로 된다는 '긍정의 힘'을 강조하는 조엘 오스틴 목사의 『긍정의 힘』. 미국 차세대 리더로 급부상하고 있는 저자의 저서로, 최선의 삶을 위한 7단계를 안내하고 있다. 단계별로 실질적인 제안과 조언을 제공하며, 오늘을 온전히 살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준다. 이 책이 말하는 마음의 힘은 '하나님 안에서 품는 긍정의 힘'이다. 저자가 안내하는 7단계를 거침으로써 평범함을 넘어 잠재력을 끝까지 발휘할 뿐 아니

베르나르가 쓴 책은 그날 읽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

개미를 읽었을 때도 그랬고(그땐 길을 걸으면서도 읽었다), 타나토노트, 개미혁명 때도 역시 그랬다.

파피용도 어제 하루동안 틈틈이 읽어, 자정을 약간 넘겨서야 다 읽었다. 덕분에 피곤하다.

베르나르는 상대방이 글을 읽지않고는 못배기게 하는 재주가 있나보다.

다만 이번 파피용은 전작들만큼의 기발함은 보이지 않는다는 아쉬움이 있다.

여러가지 이야기를 짜집기한 듯한 느낌.

- 무한한 탈출이라는 소재는 최근에 본 애니메이션인 '천원돌파 그렌라간'이 떠오르고

- 거주지 우주선인 파피용의 형태는 건담의 콜로니(물론 콜로니에 대한 개념은 50~60년대 나사에서 이미 만든것이긴 하지만)

- 폐쇄된 공간안에서의 인간군상들의 한계적 모습은 '하느님 끌기'에서 본 타락한 인간의 모습

- 새로운 지구로의 여행은 '배틀스타 갈락티카'

- 인류의 조상은 머나먼 우주에 있던 인류의 전파? 이건 제카리아 시친의 '틸문'시리즈

물론 베르나르가 이것을 보고 베끼진 않았겠지만 그간 존재해 온 여러 미디어의 소재를 그냥 짜집기 하듯 묶어놓았다는 것은 반론의 여지는 없을 듯 하다. 온라인서점의 서평 대부분이 공감하는 듯한 분위기다.

하지만 어쩌면 베르나르는 이러한 짜집기를 통해 그간 보여주었던 기발함과 신선함보다는 다른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 것 같기도 하다.

인간내면에 대한 깊은 성찰, 또는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적인 한계를 드러내고자 하는 느낌을 받았다.

선별하고 선별해서 태웠더니 얼마간은 잘 지내는 것 같더니만 어느 순간을 지나면서부터는 그야말로 혼란, 카오스의 세계로 들어가 버리는 인간들. 이래서야 많은 이들의 질시와 반대 가운데 탈출한 의미가 없쟎은가?

또 기껏 미지의 행성에 도착하고도 그들의 모습은 천여년 전, 아니 수백만년전 인류가 걸어온 것과 다른 바 없다.

지금도 우리들은 인류의 미래에 대해 말하라고 하면 다분히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이야기를 하려하고, 또한 인류애적인 관점으로 이 세상을 선하게 이끌어야 한다라는 말들을 하지만 인간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말이라는 것이다.

이타적이다 이기적이다라는 말은 분명 둘 이상의 존재가 있어야만 한다. 이 세상에 혼자 있으면서 '난 이타적이야, 이기적이야'라고 할 수는 없을테니까. 그렇다면 이기적인것이 먼저일까 이타적인 것이 먼저일까?

존재는 무존재라는 전제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존재한다는 것은 무존재에 대한 반발, 반작용인가? 없으려고 하는 자연적 본성에서 있고자 하는 의지, 이건 이기적인 것인가?(일상에서 쓰는 이기적인 것 이상의 의미로서 말이다)

책에서는 마지막을 새로운 희망을 주려는 듯 마치고 있지만, 세월이 흐르고 흘러도 이기적인 인간이 스스로의 노력만으로는 절대로 바뀔 수 없는 숙명을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내가 철학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리 깊은 생각을 하는 사람도 아니기에, 이런 깊은 주제에 대해서는 빈약한 답 밖에 못하겠다. 게다가 이러한 주제는 이미 수많은 학자, 이야기꾼들이 다뤄왔던 거라 그리 신선하지도 않고... ^___^;

다만 이 모든 것에 대한 구원은 절대자의 손길외에는 없다라는 믿음이 더 확고해 지기에 써본다. 인간은 스스로는 안된다. 외부의 개입만이 유일한 구원이다.


파피용 상세보기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 열린책들 펴냄
<개미>, <뇌>, <천사들의 제국>의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 장편소설. 태양 에너지로 움직이는 거대한 우주 범선 '파피용'을 타고 1천 년간의 우주여행에 나선 14만 4천 명의 마지막 지구인들. 인간에 의해 황폐해진 지구를 떠나 새로운 희망의 별을 찾아 나서는 모험담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내고 있다. 발명가 이브, 억만장자 맥 나마라, 생태학자이자 심리학자인 바이스, 항해 전문가 말로리 등 각계각

제목처럼 저는 소위 예수쟁이 또는 안티들이 말하는 개독교의 신자입니다.

큰 교회 찬양팀에서 베이스기타를 맡고 있고, 전에는 중고등부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한 교사이기도 하구요.
어려서부터 부모의 신앙을 물려받았고, 지금도 믿음의 동역자들과 신앙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요즘은 참 혼란스러운 세상입니다.
믿음과 대치되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죠. 그냥 혹 하고 넘어가지 쉬운 세상입니다.
다빈치코드, 예수의 무덤 다큐 등등 많은 미디어에서 이러한 것을 담고 흘려보내고 있지요.
그래서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는 '다빈치코드와는 비슷한 아니면 대치되는 내용을 담고 있나'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자 하는 기독교인에게 미리 말씀드리자면 이 책은 믿음에 기름을 부을 수도 물을 부을 수도 있는 양날의 검을 가진 내용이다라는 겁니다.
저의 경우는 전자에 해당합니다만 책의 내용이 상당히 위험수준을 넘나들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깊은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신다면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여겨지네요.

이 책의 주제인 '성경이 주후로 수많은 변개가 이루어졌다!' 기존 신자나 비신자에게도 충격 또는 당혹스런 내용일 겁니다.
변개 또는 왜곡이라는 부분. 안티에게는 공격의 소재요 신자에게는 신앙을 흔들리게 할 만한 내용이지요.
축자영감설, 성경무오류설을 교리로 하는 기독교에 있어 이 문제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일 겁니다.

이 책을 읽기 직전에 '하루만에 읽는 기독교역사'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지금까지 세계사에만 관심이 있었지 정작 기독교의 역사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던 저에게는 짧기는 하지만 흐름을 파악하는 데 있어 유익했습니다.
그 후에 이책을 읽다보니 성경 변개는 어찌보면 필연일 수 밖에 없다라고 이해되더군요.
예를 들어 성경무오류설, 축자영감설은 로마카톨릭 이후 여러 공의회를 통해 결정된 것이므로 인간의 주관이 관여했다라고 할 수 있지요.
따라서 이러한 결정을 무조건 따르기에는 무리가 있다라는 것이지요.
물론 저는 하나님의 말씀은 오류가 없다라고 믿습니다.
다만 그것을 받아 적는 또는 그것을 담는 인간에게 문제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무튼 변개가 됐건 왜곡이 됐건 아니건, 복음서를 가장 먼저 쓴 게 마가이건 아니건 간에, 또한 마가의 관점과 누가의 관점이 다르다는 거 등등 이 모든 것은 최초의 사건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내용이 전개된 것이지 않겠습니까?
예수가 실재했고 그의 이적, 가르침, 수난, 죽으심, 부활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과연 마가가 그러한 글을 남길 수 있었겠는가 라는 것입니다(저자도 이 부분을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누가, 마태, 요한의 경우도 마찬가지구요.
마가의 원작을 부분적으로 첨삭, 변개(후에 필사자들의 변개 포함)했다고는 하지만 원사건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러한 복음서를 쓸 수나 있었겠습니까?
사도 바울, 집사 스데반 등등 또한 마찬가지지요.
이들은 예수님과 동시대에 살면서 실제의 사건을 목도 또는 체험한 인물들이므로 책의 서술, 변개와는 별도로 원 사건의 실재는 틀림없다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이러한 관점에서 이 책을 보았으면 합니다.
사람이 만들어 놓은 교리에 얽매이지 않는다면 변개나 왜곡에 대한 이 책의 설명은 충분히 수용할 수 있을 겁니다.
이러한 것은 결국 신의 영역이 사람의 영역으로 넘어오면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오류이니까요.
따라서 문자적인 성경이 완벽하다 아니다의 측면보다는 이 책의 이면에 담겨져 있는(어쩌면 저자도 바라고 있을듯한) 하나님의 실재와 예수의 생애, 가르침, 죽으심과 부활이 과연 진실이구나라는 믿음의 눈을 키워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나라는 저의 생각입니다.

성경 왜곡의 역사 상세보기
바트 어만 지음 | 청림출판 펴냄
성경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과 우리가 알지 못했던 성경 왜곡과 오기의 역사를 검토하는 책. 고대 사회의 필사 관행들, 필사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었던 오기의 예들, 오기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이유들, 오기의 결과로 생겨난 다양한 이문들, 후대에 삽입된 본문들 등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또한 흩어져 있는 사본들을 찾아 원본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소개하면서, 그 사람들이 가장 이른 시기의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