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읽는 것을 굉장히 망설여했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류의 책을 기피하기 때문이다.

마치 '넌 할 수 있어'라는 최면을 걸고 모든 것을 무조건 희망적으로만 바라보게끔 하는 마약같은 느낌이 있어서다.

요즘에 이런 류의 책이 너무나도 많다. 가장 최근에는 'SECRET'같은 책이 대표적일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보게 된 것은 아무래도 나의 종교적 성향때문인 것 같다

레이크우드 교회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미국의 대형교회다.

평소에 미국의 기독교 흐름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 있어 그런 흐름의 선두에 있다고 하는 조엘 오스틴 목사가 쓴 책이니 계속 신경이 쓰이긴 했다.

그래서 큰 맘 먹고 읽었다.(다 읽는 데만 석달 걸렸다. 왜이리 뭉그적거리게 되는지 ^^;)


예상과 그리 다르지는 않다.

그나마 일반인들이 외치는 '네 안에 있는 거대한 용을 깨워라'식의 구호는 아니고, 내가 믿는 하나님안에서 믿음을 키우라는, 그래서 늘 긍정적일 수 있다라는 부분에서는 충분히 공감할 수는 있다.

다만 조엘 목사가 미국 내에서도, 또한 한국 기독교 내에서도 '설탕신학'이라는 비평을 하는 것처럼, 특히 옥한흠 목사님의 지적처럼 복음에 대한 방향설정이 좀 위험하다 싶기도 한 면이 있긴하다.

복음은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피흘림과 죽음, 그리고 부활이 의미하는 구원에 대한 메시지임에도, 조엘 목사는 그런 부분보다는 단지 귀에만 즐거운 듯한, 물론 실생활에서 이러한 삶의 자세가 영향을 끼치는 것은 분명하지만 진정한 복음의 메시지 전파는 미흡한 듯 하다. 조엘 목사가 정규 신학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라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기존의 마인드컨트롤과 같은 주제를 다루는 책과는 분명 거리는 있다. 삶의 모든 부분에서 긍정적일 수 있는 것은 나의 의지가 차지하는 비중보다는 하나님의 역할이 크다라는 것과 그 분에게 전적으로 의뢰할 수 있는 긍정적 사고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는 점에서.

신학분야뿐만 아니라 일반 서적에서도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있어 기대할 만한 책이었다.

그러나 좀 더 복음적인 측면을 건드렸더라면 하는 바람과 또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서 일반대중에게 좀 더 다가갈 수 있었다라는, 요즘 교회가 겪는 딜레마를 우회하는 듯한 책일 듯.

긍정의 힘 상세보기
조엘 오스틴 지음 | 두란노 펴냄
믿는 대로 된다는 '긍정의 힘'을 강조하는 조엘 오스틴 목사의 『긍정의 힘』. 미국 차세대 리더로 급부상하고 있는 저자의 저서로, 최선의 삶을 위한 7단계를 안내하고 있다. 단계별로 실질적인 제안과 조언을 제공하며, 오늘을 온전히 살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준다. 이 책이 말하는 마음의 힘은 '하나님 안에서 품는 긍정의 힘'이다. 저자가 안내하는 7단계를 거침으로써 평범함을 넘어 잠재력을 끝까지 발휘할 뿐 아니

베르나르가 쓴 책은 그날 읽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

개미를 읽었을 때도 그랬고(그땐 길을 걸으면서도 읽었다), 타나토노트, 개미혁명 때도 역시 그랬다.

파피용도 어제 하루동안 틈틈이 읽어, 자정을 약간 넘겨서야 다 읽었다. 덕분에 피곤하다.

베르나르는 상대방이 글을 읽지않고는 못배기게 하는 재주가 있나보다.

다만 이번 파피용은 전작들만큼의 기발함은 보이지 않는다는 아쉬움이 있다.

여러가지 이야기를 짜집기한 듯한 느낌.

- 무한한 탈출이라는 소재는 최근에 본 애니메이션인 '천원돌파 그렌라간'이 떠오르고

- 거주지 우주선인 파피용의 형태는 건담의 콜로니(물론 콜로니에 대한 개념은 50~60년대 나사에서 이미 만든것이긴 하지만)

- 폐쇄된 공간안에서의 인간군상들의 한계적 모습은 '하느님 끌기'에서 본 타락한 인간의 모습

- 새로운 지구로의 여행은 '배틀스타 갈락티카'

- 인류의 조상은 머나먼 우주에 있던 인류의 전파? 이건 제카리아 시친의 '틸문'시리즈

물론 베르나르가 이것을 보고 베끼진 않았겠지만 그간 존재해 온 여러 미디어의 소재를 그냥 짜집기 하듯 묶어놓았다는 것은 반론의 여지는 없을 듯 하다. 온라인서점의 서평 대부분이 공감하는 듯한 분위기다.

하지만 어쩌면 베르나르는 이러한 짜집기를 통해 그간 보여주었던 기발함과 신선함보다는 다른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 것 같기도 하다.

인간내면에 대한 깊은 성찰, 또는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적인 한계를 드러내고자 하는 느낌을 받았다.

선별하고 선별해서 태웠더니 얼마간은 잘 지내는 것 같더니만 어느 순간을 지나면서부터는 그야말로 혼란, 카오스의 세계로 들어가 버리는 인간들. 이래서야 많은 이들의 질시와 반대 가운데 탈출한 의미가 없쟎은가?

또 기껏 미지의 행성에 도착하고도 그들의 모습은 천여년 전, 아니 수백만년전 인류가 걸어온 것과 다른 바 없다.

지금도 우리들은 인류의 미래에 대해 말하라고 하면 다분히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이야기를 하려하고, 또한 인류애적인 관점으로 이 세상을 선하게 이끌어야 한다라는 말들을 하지만 인간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말이라는 것이다.

이타적이다 이기적이다라는 말은 분명 둘 이상의 존재가 있어야만 한다. 이 세상에 혼자 있으면서 '난 이타적이야, 이기적이야'라고 할 수는 없을테니까. 그렇다면 이기적인것이 먼저일까 이타적인 것이 먼저일까?

존재는 무존재라는 전제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존재한다는 것은 무존재에 대한 반발, 반작용인가? 없으려고 하는 자연적 본성에서 있고자 하는 의지, 이건 이기적인 것인가?(일상에서 쓰는 이기적인 것 이상의 의미로서 말이다)

책에서는 마지막을 새로운 희망을 주려는 듯 마치고 있지만, 세월이 흐르고 흘러도 이기적인 인간이 스스로의 노력만으로는 절대로 바뀔 수 없는 숙명을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내가 철학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리 깊은 생각을 하는 사람도 아니기에, 이런 깊은 주제에 대해서는 빈약한 답 밖에 못하겠다. 게다가 이러한 주제는 이미 수많은 학자, 이야기꾼들이 다뤄왔던 거라 그리 신선하지도 않고... ^___^;

다만 이 모든 것에 대한 구원은 절대자의 손길외에는 없다라는 믿음이 더 확고해 지기에 써본다. 인간은 스스로는 안된다. 외부의 개입만이 유일한 구원이다.


파피용 상세보기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 열린책들 펴냄
<개미>, <뇌>, <천사들의 제국>의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 장편소설. 태양 에너지로 움직이는 거대한 우주 범선 '파피용'을 타고 1천 년간의 우주여행에 나선 14만 4천 명의 마지막 지구인들. 인간에 의해 황폐해진 지구를 떠나 새로운 희망의 별을 찾아 나서는 모험담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내고 있다. 발명가 이브, 억만장자 맥 나마라, 생태학자이자 심리학자인 바이스, 항해 전문가 말로리 등 각계각

제목처럼 저는 소위 예수쟁이 또는 안티들이 말하는 개독교의 신자입니다.

큰 교회 찬양팀에서 베이스기타를 맡고 있고, 전에는 중고등부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한 교사이기도 하구요.
어려서부터 부모의 신앙을 물려받았고, 지금도 믿음의 동역자들과 신앙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요즘은 참 혼란스러운 세상입니다.
믿음과 대치되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죠. 그냥 혹 하고 넘어가지 쉬운 세상입니다.
다빈치코드, 예수의 무덤 다큐 등등 많은 미디어에서 이러한 것을 담고 흘려보내고 있지요.
그래서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는 '다빈치코드와는 비슷한 아니면 대치되는 내용을 담고 있나'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자 하는 기독교인에게 미리 말씀드리자면 이 책은 믿음에 기름을 부을 수도 물을 부을 수도 있는 양날의 검을 가진 내용이다라는 겁니다.
저의 경우는 전자에 해당합니다만 책의 내용이 상당히 위험수준을 넘나들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깊은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신다면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여겨지네요.

이 책의 주제인 '성경이 주후로 수많은 변개가 이루어졌다!' 기존 신자나 비신자에게도 충격 또는 당혹스런 내용일 겁니다.
변개 또는 왜곡이라는 부분. 안티에게는 공격의 소재요 신자에게는 신앙을 흔들리게 할 만한 내용이지요.
축자영감설, 성경무오류설을 교리로 하는 기독교에 있어 이 문제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일 겁니다.

이 책을 읽기 직전에 '하루만에 읽는 기독교역사'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지금까지 세계사에만 관심이 있었지 정작 기독교의 역사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던 저에게는 짧기는 하지만 흐름을 파악하는 데 있어 유익했습니다.
그 후에 이책을 읽다보니 성경 변개는 어찌보면 필연일 수 밖에 없다라고 이해되더군요.
예를 들어 성경무오류설, 축자영감설은 로마카톨릭 이후 여러 공의회를 통해 결정된 것이므로 인간의 주관이 관여했다라고 할 수 있지요.
따라서 이러한 결정을 무조건 따르기에는 무리가 있다라는 것이지요.
물론 저는 하나님의 말씀은 오류가 없다라고 믿습니다.
다만 그것을 받아 적는 또는 그것을 담는 인간에게 문제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무튼 변개가 됐건 왜곡이 됐건 아니건, 복음서를 가장 먼저 쓴 게 마가이건 아니건 간에, 또한 마가의 관점과 누가의 관점이 다르다는 거 등등 이 모든 것은 최초의 사건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내용이 전개된 것이지 않겠습니까?
예수가 실재했고 그의 이적, 가르침, 수난, 죽으심, 부활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과연 마가가 그러한 글을 남길 수 있었겠는가 라는 것입니다(저자도 이 부분을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누가, 마태, 요한의 경우도 마찬가지구요.
마가의 원작을 부분적으로 첨삭, 변개(후에 필사자들의 변개 포함)했다고는 하지만 원사건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러한 복음서를 쓸 수나 있었겠습니까?
사도 바울, 집사 스데반 등등 또한 마찬가지지요.
이들은 예수님과 동시대에 살면서 실제의 사건을 목도 또는 체험한 인물들이므로 책의 서술, 변개와는 별도로 원 사건의 실재는 틀림없다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이러한 관점에서 이 책을 보았으면 합니다.
사람이 만들어 놓은 교리에 얽매이지 않는다면 변개나 왜곡에 대한 이 책의 설명은 충분히 수용할 수 있을 겁니다.
이러한 것은 결국 신의 영역이 사람의 영역으로 넘어오면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오류이니까요.
따라서 문자적인 성경이 완벽하다 아니다의 측면보다는 이 책의 이면에 담겨져 있는(어쩌면 저자도 바라고 있을듯한) 하나님의 실재와 예수의 생애, 가르침, 죽으심과 부활이 과연 진실이구나라는 믿음의 눈을 키워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나라는 저의 생각입니다.

성경 왜곡의 역사 상세보기
바트 어만 지음 | 청림출판 펴냄
성경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과 우리가 알지 못했던 성경 왜곡과 오기의 역사를 검토하는 책. 고대 사회의 필사 관행들, 필사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었던 오기의 예들, 오기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이유들, 오기의 결과로 생겨난 다양한 이문들, 후대에 삽입된 본문들 등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또한 흩어져 있는 사본들을 찾아 원본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소개하면서, 그 사람들이 가장 이른 시기의

어렸을 때 빨간 눈깔을 '쉬~~익, 쉬~~익'하며 두리번 대던 로봇을 기억한다.

분명 스타워즈에 나오던 녀석같은데 아닌 것도 같고. 암튼 날 상당히 헷갈리게 한 SF물

몇년 지나서 소책자를 통해서 원제목을 알 게 됐으니, 바로 'Battlestar Galactica'

상당한 퀄리티를 보였줬던 TV 시리즈였던 걸로 기억된다. 물론 AFKN을 통해서.

한번은 MBC 에서였나 토요일 낮에 방영도 했었던 것 같다.

아무튼 작년 우연한 기회에 배.갈 시리즈를 접하게 됐는데 그기회로 미드의 세계에 빠져들게 됐다.

배.갈 시리즌 미드에 접하게 한 시리즈이자 내가 최고로 치는 시리즈이다.

0시즌으로 시작해서 올해초 3기 까지 너무 너무 흥미로운 스토리 전개와 블럭버스터에 준하는 SF 그래픽을 선사했다.

명작은 단순히 그래픽 표현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배.갈이 보여주고 있다.

종교와 신화, 정치와 신념, 군사와 기술 등등 여러가지 소재를 복합적으로 다뤄 단순무식할 수 있는 SF를 품격있는 드라마로 바꿔버렸다. 거기에 수준급의 카메라 연출력까지.

이제 4기 방영을 앞둔 상황에서 사이드 스토리격인 razor가 나왔다.

장렬히 산화한 전함 페가수스의 함장 케인과 그의 부함장의 이야기, 아마다 제독이 1차 사일론 전쟁 시 겪었던 일, 그리고 사일론의 태동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이야기등이 소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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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을 모두 봤다면 알겠지만 사일론 중 1명(1명이라고 하기엔 그렇고 class 중 하나라고 해야하나), 역시 어디에나 숨어있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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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스마의 케인 제독. 아줌마지만(극중 미혼인 듯) 여군도 저렇다면 충성을 바칠 수 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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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전체에 있어 히로들인 아마다제독과 그 아들 리 함장(사실은 비행전대장이지만 페가수스를 잠시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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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갈의 운명을 쥐고 있는 태생불명의 불량슈퍼에이스 히로인 스타벅(비행편대장, 또는 전대장, 상체가 웬만한 남자만큼 넓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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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갈 시리즈를 높이 평가하고 즐기게 하는 요소들(결코 애들 장난처럼 묘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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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질이 매우 불량한 두 여자의 만남(사이에 늘 끼는 리 소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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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사일론 전쟁을 직접적으로 유발시킨 장본인 2인인 말썽쟁이 불량천재과학자 가이우스 발터박사와 그의 정신적 연인관계인 사일론 유령(유령이 맞나, 암튼 남의 눈엔 안보이니 원, 혹자는 발터의 정신세계의 이상이 원인이라는데, 반대로 저 사일론의 실체에게도 발터가 유령처럼 나타나니 발터도 사일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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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지만 SF 표현은 왠만한 블럭버스터급은 그냥 울고 간다. 뒤가 페가수스이고 앞이 갈락티카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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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 못지않은 시리즈의 운명을 좌우할 여인(또는 사일론) 샤론 부머 대위(한국계, 그레이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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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지만 대충 만든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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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보는 녀석들 얼마만이냐? 1차 때 사일런과 전투기. 역시 다시 한번 말하지만 대충 만든거 아니다.^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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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의 백미중에 하나인 공중전! 리얼하게 표현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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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일의 원인제공을 한 자랜다. 자칭 사일런들의 아빠!


대부분의 SF장르는 대개 스토리의 연대설정을 먼 미래로 놓던지, 아예 현 우주와는 전혀 관련없는 것으로 설정한다.

그런데 배.갈 시리즈의 매력중 하나는 오히려 우리의 과거시점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이다.

물론 지구의 역사와 관련된 내용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시리즈의 결말에는 쇼킹하게 등장한다고 알려져 있긴 하다) 머나먼 과거에 12개 부족으로 나뉘어 각각의 성계에서 살던 인간이 그들의 피조물인 사일런의 침공으로 멸망할 위기에 처하게 되자, 숨겨진 13번째 행성인 지구로 엑소더스한다는 내용은 도대체 이 시리즈의 시점이 얼마나 먼 과거를 다루는 것인가라는 아득함을 주는데, 이게 참 매력적이다. 따라서 배.갈 시리즈를 보다보면 마치 아주 먼 옛날 인류의 조상의 사촌에 사촌뻘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들려 참 살갑게 느껴지게 된다.

아무튼 배.갈 시리즈 4기가 무척 기대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작가 : 제임스 모로
줄거리 : 암초로 인해 배가 난파되고 이후 기름띠 유출사고의 책임으로 실직 중인 발라파이소호의 선장 앤서니 반호른은 어느날 천사장 가브리엘의 방문으로 하느님의 죽음에 대해 알게되고 그 시신을 북극 00 지점에서 매장해 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 그후 발생하는 해프닝(꽉 막힌 이성주의자, 신을 잃은 자들의 광란, 바티칸의 음모, 전쟁광들의 정신나간 놀이 등...)에 대한 이야기

<감상평>
하나님의 죽음 ≒ 신의 부재 인가?

현대는 하나님이 살아계시다고 믿는 신앙인과 신은 없거나 아주 많다라고 믿는 이들로 구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부류에도 하나님을 자신의 목적과 수단으로 대체해버린 이들도 있다.
따라서 하나님에 대한 순수한, 때묻지 않은, 신실한, 정말로 세속적이지 않은 신앙인 vs. 그외의 사람들로 최종구분할 수도 있으려나.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신을 신실하게 믿으며 살아가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둘 사이에는 어떠한 차이점이 있을까? 삶의 질이라던지 여러가지로 달라질까?

하나님의 존재가 사라질 때를 가정한 소설이지만 주변에서도 확인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문명이 시작할 즈음에도도 책에서 묘사된 것과 유사한 광란의 시기도 있었을 거다. 물론 문명시대 또한 그러한 경우는 많다. 2차대전의 유태인학살, 중세의 마녀사냥 같은거.
그렇지만 이러한 시기나 역사적 사실들은 지속적이진 않다. 중간 중간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곤 한다.
왜 그럴까?

분명 신은 죽었다, 존재하지도 않았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즐비함에도 세상은 이런 사람들과 함께 지금까지 잘 지내왔다.  정말 신이  없는 것처럼 믿도록.
비록 중간중간 인류멸망까지는 아니어도 세상이 곧 망할 것만 같았던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은 선이 악을 이긴 것처럼 보인다.
마치 신의 개입이 없이도 우리는 잘 살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처럼.

과연 칸트의 정언명령과 같은 도덕률이 사람들로 하여금 광란의 시기에 제정신을 차리도록 한 것일까?
정말 이러한 도덕률(예를 들어 공자의 사상, 부처의 가르침, 기타 여러종교 및 사상가의 주장)에 의해서 세상은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더욱 더 바람직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만 여기서 한가지 집고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 과연 우리가 도덕, 또는 선으로 여기는 것들은 어디로부터 비롯된 것인가? 이것은 선이고 저것은 악이며 당신은 선을 택해야 된다라고 누가 정한 것인가? 사회적 약속? 종을 지속하기 위한 자연적 선택?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선택을 하게끔 한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이것들은 오랜 세월을 통해 현재의 내가 존재토록 하게한 것이다.

현대의 과학은 어떠한 사물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것을 인지한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고 이러한 관계를 나열하다 보면 궁극적인 누군가, 또는 초월자가 있어야만 이 세상이 존재할 수 있다라고 주장하는 이도 꽤 있다.

이러한 면에서 기독교와 타종교간에는 극복할 수 없는 극명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점이 그것이다.
모든 종교는 사랑을 강조한다. 기독교 또한 그러하다.
그렇지만 세상을 회의적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완전히 방향을 달리한다.
세 상에는 희망이 없다는 것! 매우 독선적으로 보이지 않는가? 이러한 점이 기독교로 하여금 전도와 선교에 주력하게끔 한다. 사랑하는 내 가족, 친척, 친구, 모른지만 아름다워 보이는 저 존재들, 등등... 세상에 희망이 없으므로 그들을 희망으로 인도하려는 사랑의 힘!
이게 세상의 가치관으로 보면 터무니 없다라고 한다는 것, 인정한다.
그러나 이러한 가치관은 지구에 사는, 중력에 혼이 잡혀있는(ㅎㅎ 건담의 대사 중에 있다) 우리들만의 가치관일뿐 세상을 창조한 이에게는 전혀 가치없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아 무튼 이 책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의문이나 부존재에 대한 증명을 목적으로 한 책은 아니다.(이면에는 그런 것철럼 적은 것 같긴 하지만) 책의 마지막은 결국 사람에게는 신이 존재하던 하지 않던간에 희망이 있음을 보여주려고 한 듯하다. 비록 사람사는 세상이라 이런저런 부류의 생각과 행동들로 있어 매우 소란스럽긴 해도.
하느님 끌기 상세보기
제임스 모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하 느님은 히죽 웃고 계셨다.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채로…. 대형 유조선 기름 유출 사고 때문에 선장직을 그만둔 반 호른. 그의 앞에 대천사 라파엘이 나타난다. 그는 하느님이 어느 날 이유 없이 죽어서 그 시체가 바다 위에 떨어졌다며, 시체가 부패하기 전에 북극으로 인양할 것을 요구한다. 이제 3,200미터에 이르는 그 거대한 시신을 끌고 가는 황당한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그리고 이 시신을 둘러싸고 교황청, 무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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