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다. 당연히 덥다. 집은 더 덥다. 에어컨을 매년 초 장만한다 하다 그냥 해를 넘긴 게 수년 째. 이제는 적응해서 두세달만 참자며 넘어간다. 하지만 PC가 있는 방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데스크탑의 팬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열기. 그래서 여름에는 데스크탑도 사용을 최소화한다. 그래서 집에서 맥북의 활용 가치는 크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앞선 포스트에서 나왔던 그런 랩탑 스탠드가 집에는 없다. 더욱이 부피가 큰 녀석은 집에 두기 힘들다. 눈치 보여서. ㅜㅜ


그래서 공간을 아주 덜 차지하는 휴대하기 편한 작은 녀석으로 찾아봤다. 그런데 역시 대부분의 랩탑 스탠드는 방열팬을 갖추고 있어 기본적으로 일정 공간을 차지한다. 예전에 봤던 녀석이 생각나서 더 검색해 봤는데 있었다. 가격마저도 매우 착한.



노벨뷰 NVV800이란 명칭으로 판매되는 제품이다. 아마존 같은 데서는 그런 명칭은 아니고 Foldable stand/kickstand로 검색하면 나온다.


오늘 받은 제품은 예상보다 훨씬 컸다. 그래서인가? 신뢰감 같은 게 느껴졌다. ^^


(마데인차이나라 포장이 엉망이리라 여겼는데 나름 깔끔하게 왔다)


(구성물 : 본체, 노트북/아이폰 지지보드+볼트, 캐링케이스)


(노트북용 지지대를 장착)


(15인치 급 노트북을 거치할 때에는 다리를 확장하면 된다.)


(맥북을 올린 모습)


처음에는 내장된 다리 확장 파트를 뽑지 않은 상태로 맥북을 올렸더니 매우 불안정했다. 뭔가 낭패인 듯한 불안감이 들었다가 포장 옆면을 보니 다리 부분을 뽑아내라는 걸 보고 바로 빼주었다. 결과는 아주 안정적이다. 마지막 사진과 같이.


이 제품은 보는 바와 같이 방열팬 같은 거 없다. 휴대성을 극대화 하는 제품이다. 제목처럼 접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집에서 옆에 선풍기 하나 틀어 놓고 거치대 위에 올려놓으면 자동 발열 처리된다. 이제껏 책상에 노트북 머리 쪽에 책 하나  놓고 불편하게, 불안하게 놓던 시절은 갔다. ^^;




맥북을 쓴지도 무려 햇수로 7년 쯤 되간다. 화이트맥북에서 맥북프로, 그리고 지금의 맥북프로 레티나까지 노트북의 방열을 담당해주는 기기가 있다. 방열기능을 겸하는 노트북 스탠드. 


(cRadia사의 Flex, 지금은 회사 문닫았나 보다)


지금 쓰고 있는 제품은 6년 쯤 된 것 같다. cRadia사의 flex라는 제품. 알루미늄의 제작된 다양한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스탠드와 1개의 대형 방열팬으로 맥북의 방열을 처리한다. 요즘처럼 사무실 온도가 외부보다 높아지고, 덩달아 맥북마저 열기를 뿜게 되다보면, 기기가 다운될 수 있으므로 방열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 제품은 구입 당시에도  호평받던 제품이었던 터라 지금껏 매우 만족해하며 쓰고 있다. 확실한 방열 기능과 대형팬1개라 그런지 극도로 낮은 소음.

그런데 문득 며칠 전 '대체 내가 이걸 언제 청소해봤더라'라는 생각이 들었고, 곧바로 청소를 위해 해체했다. 구조가 간단해서 금새 분해했다. 


(분해의 결과, 간단한 구조다)


그리고 경악했다. 와~~~~우 이렇게 많은 먼지가.... ㅎㅎㅎㅎ; 하여간 열심히 닦고 먼지를 불어내서 새것처럼 깨끗해졌다. 그리고 다시 조립한 후 작동. 지금 잘 쓰고 있다. 먼지 제거 했다고 특별히 뭐가 더 나아졌는지는 체감이 안되지만 느낌은 좋다. ^^ 


(이런 게 열댓장 나왔다.)









오랜만에 읽은 제대로 된 신앙서적인 듯 하다. 물론 이 책은 어떤 간증이나 체험을 서술한 책은 아니다.


C.S.루이스와 같이 매우 논리적으로 기독교를 변론하는 책이다. 루이스가 시대를 초월하며 서술했던 걸 보면서 대단하다 여겼다. 하지만 아무래도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는 것도 있다 싶었는데, 이 책은 최근에 저작된 책이니 현 시대의 이슈를 상당 부분 포함하고 있어 추천할 만 하다. 


과학의 발달과 사회의 발전에 따른 현상의 변화는 하루가 다르게 달라진다. 그에 따라 사람들의 생각도 시시각각 변한다. 가치관도 덩달아 끌려간다. 마치 목에 칼을 들이댄 강도에게 납치되듯. 진리는 매일 매일 물건 만들 듯 새롭게 쓰여지는 듯 하지만, 세상의 혼란은 그에 비례, 아니 제곱에 비례하는 듯 하다.


그럼에도 진리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수호하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정확히 아는 것. 그것만으로도 삶은 대변혁을 겪게 된다. 


그런 면에서 요즈음의 삶을 통해 깊은 회의감과 실망을 겪는 신앙의 동지들이 있다면 꼭 읽어보시길 바란다. 물론 중간중간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부분도 있긴 하지만, 크게 궤를 벗어나는 건 아니어서 무방함.





약체팀으로 분류되는 캔자스시티 로얄즈와의 주 중 인터리그 4연전.

앞선 서부 리그 1위 샌프란시스코와의 4연전은 선발진의 대활약으로 불펜진에 큰 휴식을 안겨주었다. 그래서 캔자스와의 첫게임은 선발로 가르시아를 올려 가볍게 가려고 했다. 어느정도 실점은 예상한 바였고. 그러나!


1회는 최근 좋은 컨디션을 보여준 가르시아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2회부터 시작한 폭망. 2회에 연속 안타로 3실점.

그러나 2회말 세인트 또한 2점차 추격.


다시 3회에 캔자스이 1점 추가. 다시 3회말에 카즈의 1점 추격. 그러다 5회에는 5:5까지 갔다. 중간에 가르시아는 랜스 린스로 교체. 원치 않는 불펜 가동. ㅠㅠ 선발진이 벌어다 준 휴식을 한 경기에 날려 먹다니. 그나마 보저스의 5회 동점 홈런이 추격의 힘이 있음을 확인해주었으나, 다시 7회에 4실점하면서 9:5로 역전. 이러다가 9회 말까지. 그냥 이 경기는 포기하는 걸로 가려고 했으나!!


역시 야구는 9회부터라는 말처럼, 9회 연속안타로 1득점 후 주자 2,3루를 만들고 이어 올라온 캔자스 구원을 할리데이가 2타점 2루타. 이어진 맷아담즈의 적시안타로 9:9 동점. ㅎㅎ 그냥 끝내려고 했는데 이거 참! 하여간 9회에 올라온 지그리스트가 10회 초는 삼진 세 개로 깔끔하게 마무리한 상황에서 10회 말, 이미 캔자스는 마무리까지 무너져 전의를 상실한 상태. 5회 말 동점 홈런의 주인공 보저스가 끝내기 안타로 10:9 승리.

당연히 경기 MVP는 Peter Bourjos, 5타수 3안타 1홈런, 1 3루타, 1안타, 2타점.
승리투수는 최종 마무리로 올라와 승리를 낚은 케빈 지그리스트. 10회 삼진 세 개가 엄청 컸다.




2014년 7월 6일 주일 낮 설교는 미리 예고된(?)대로 담임목사님이 관련 서적을 내시면서 '복'에 대해 얻은 인사이트를 나누는 자리였다.

개인적으로는 참 좋은 말씀이었다고 생각했고 예배 중에도 그랬다. 다만 들으면서도 한가지 마음 한구석에 자꾸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설교의 주제는 '복'이란 무엇이며 여기에 대한 성도의 자세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내용이었다.
사실 최근 들어 한국교회의 기복신앙에 대한 터부시는 심각하다 못해 되려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마져도 손사래치는 이상한 형국이었다. “기복"이라는 단어 속에 하필 복이라는 blessing이 자리잡고 있다보니 왠지 복이라는 단어만 나와도 신앙의 수준이 낮은 듯한 선입견을 주게 된 것은 사실이다.

  • 복 : 히브리어 바라크(Barak) -
    1. 하나님께 무릎을 꿇는 것.
    2. 좋은 말을 하는 것.(하나님께는 찬양, 사람에게는 칭찬)

그런 상황에서 목사님의 설교는 참 시의 적절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하고 정말 고마운 일이었다. 한마디로 '복'은 여지껏 많은 이들의 머릿속의 부귀영화 이런 게 아닌 '하나님' 그 자체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그것이 바로 복이다. 참 은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계속 걸리는 부분은 복에 대한 정의를 내놓으신 것에 대한 성도의 자세였다.

좀 불편하게 다가온 부분은 두번째 '좋은 말'과 관련해서였다.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게 아니라, 저 말씀을 과연 성도들이 어떻게 적용할까 하는 우려가 생겨서였다.

과연 '좋은 말'이란 무엇일까? 이 부분은 목사님이 깊게 설명해 주시지 않았다. 다만 이후 나올 책에서 다뤄지기는 하겠지만 어제의 설교중에서는 부족해 내 오해가 있을지도 모른다.

목사님의 설교대로라면 성도는 비판의 말, 정죄의 말은 절대로 해선 안된다. 물론 악의적인 의도가 있다면 당연히 그런 비판은 정말 지양해야 함은 당연하다. 말 그대로 우리 입에서는 듣기에 선한 말만 나와야 한다. 늘 '잘했어요', 'GOOD', '훌륭해요', 'WONDERFUL', '예뻐요', 'BEAUTIFUL'.

그런데 말씀 도중 목사님이 택시를 탔다가, 우연히 접한 인터넷 방송 속의 비판논조(아마도 야당성향의 인터넷 방송이었나 보다. 나꼼수 같은)를 듣고 그것을 꺼달라고 했다는 부분에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게 되었다. 물론 목사님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그러실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목사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많은 성도들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까? 상대를 비판하거나 거친 말이 나오게 되면 과연 그들은 복없는 사람들인가? 재수없는 사람들이라서 기피해야만 하고 거부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일까?

'좋은'이라는 말은 과연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귀로 듣기에 좋은 말만이 좋은 말일까?

성경 속에서도 많은 선지자들의 외침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엘리야, 아모스가 눈에 띈다. 간통한 다윗을 고발한 나단 선지자도. 그리고 세례요한이 '독사의 자식들아'와 같은 일갈. 이거 이렇게 적어 놔서 그렇지, 실제 상황에서는 어떻게 들렸을까? 과연 듣기에 좋은 말인가?

그래서 음성적인 것에 더해 그 의도 또한 살펴봐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목적과 방향이 옳다면 듣기에는 좀 거북하고 민망하다더라도 그 또한 좋은 말이지 않을까 싶다. '양약이 입에 쓰다'라는 옛말도 있지 않은가?

이러한 부분이 최근 한국교회에서 수시로 보게 되는 곤란함 아닐까 싶다. 60~70년대 계몽주의의 시대와 같은 시절, 국민을 개조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잘 해온(긍정적인 부분이 많았다지만) 교회와 당시부터 지금까지 현역으로 뛰시는 큰 목사님들의 활약은 익히 아는 바다. 이 분들이 특히 강조하는 부분중에 로마서 가운데의 바울사도의 설교, 권세자들에게 머리숙이라 또는 존경하라 등등

그러다보니 정부가 어떤 문제가 있던지간에 대통령은 하나님이 뽑으신 자이니 그에게 협조는 할지언정 비판이나 비난은 하지 말아라라는게 교회를 다니는 많은 이들에게 내려진 사명(?)이다. 최근에 총리파동을 통해 다들 눈으로 확인한 사실은 교회의 장로님이 교회안에서 하신 말씀은 비판이 대상이 아니고 오히려 두둔해야할 일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사실을 이미 확인한 바다.

목사님의 좋은 의도와 설교에 대해 성도는 과연 얼마나 고민하며 심각하게 말씀을 받아들이는 걸까라는 생각이 요즘 많이 든다. 지도자가 실정을 하고 고의적인 문제를 계속 양산하고 있는데도 이를 하나님이 세운 이이니 절대 비판은 사절. 이게 과연 제대로 된 모양일까? 게다가 그 지도자를 하나님이 세웠다는 근거는 뭘까? 물론 성경에 근거하여 하시는 말씀인 줄은 알지만, 그것도 그 당시의 시대적 배경가운데 해석할 것이지 그걸 현대에 가져와서 그냥 문자 그대로 적용해 버리면 곤란하지 않을까?

이 부분에서 한국교회의 많은 목사님들의 외침과 이에 대한 성도들의 화답은 유치원 선생과 원생 수준의 문답으로 되풀이되고 있는 듯 하다. '빨간불에는 무조건 건너면 안되요 알겠죠~? 네~' 뭐 이런거. 바람직한 비판마저도 악한 것으로 한번에 압살시켜버리는 요즘의 모습은 정말 아스트랄하다.

하여간에 한국교회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 중에 하나는 말씀을 받는 이들의 질적 수준 향상이 아닌가 싶다. 제아무리 좋은 설교도 받는 이들이 그에 걸맞는 수준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없다고 본다. 그래서 그 선한 의도와는 다르게 일방적인 방향으로만 적용한다던지 하는 것이 요즈음의 한국교회의 위상을 한없이 추락시키는 결과가 된 게 아닌가 싶다.


홍정길 원로목사의 말이 그래서 눈이 간다. 

홍정길 목사 “속지 말라, 멋진 말과 글에”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56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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