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6일 주일 낮 설교는 미리 예고된(?)대로 담임목사님이 관련 서적을 내시면서 '복'에 대해 얻은 인사이트를 나누는 자리였다.

개인적으로는 참 좋은 말씀이었다고 생각했고 예배 중에도 그랬다. 다만 들으면서도 한가지 마음 한구석에 자꾸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설교의 주제는 '복'이란 무엇이며 여기에 대한 성도의 자세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내용이었다.
사실 최근 들어 한국교회의 기복신앙에 대한 터부시는 심각하다 못해 되려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마져도 손사래치는 이상한 형국이었다. “기복"이라는 단어 속에 하필 복이라는 blessing이 자리잡고 있다보니 왠지 복이라는 단어만 나와도 신앙의 수준이 낮은 듯한 선입견을 주게 된 것은 사실이다.

  • 복 : 히브리어 바라크(Barak) -
    1. 하나님께 무릎을 꿇는 것.
    2. 좋은 말을 하는 것.(하나님께는 찬양, 사람에게는 칭찬)

그런 상황에서 목사님의 설교는 참 시의 적절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하고 정말 고마운 일이었다. 한마디로 '복'은 여지껏 많은 이들의 머릿속의 부귀영화 이런 게 아닌 '하나님' 그 자체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그것이 바로 복이다. 참 은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계속 걸리는 부분은 복에 대한 정의를 내놓으신 것에 대한 성도의 자세였다.

좀 불편하게 다가온 부분은 두번째 '좋은 말'과 관련해서였다.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게 아니라, 저 말씀을 과연 성도들이 어떻게 적용할까 하는 우려가 생겨서였다.

과연 '좋은 말'이란 무엇일까? 이 부분은 목사님이 깊게 설명해 주시지 않았다. 다만 이후 나올 책에서 다뤄지기는 하겠지만 어제의 설교중에서는 부족해 내 오해가 있을지도 모른다.

목사님의 설교대로라면 성도는 비판의 말, 정죄의 말은 절대로 해선 안된다. 물론 악의적인 의도가 있다면 당연히 그런 비판은 정말 지양해야 함은 당연하다. 말 그대로 우리 입에서는 듣기에 선한 말만 나와야 한다. 늘 '잘했어요', 'GOOD', '훌륭해요', 'WONDERFUL', '예뻐요', 'BEAUTIFUL'.

그런데 말씀 도중 목사님이 택시를 탔다가, 우연히 접한 인터넷 방송 속의 비판논조(아마도 야당성향의 인터넷 방송이었나 보다. 나꼼수 같은)를 듣고 그것을 꺼달라고 했다는 부분에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게 되었다. 물론 목사님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그러실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목사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많은 성도들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까? 상대를 비판하거나 거친 말이 나오게 되면 과연 그들은 복없는 사람들인가? 재수없는 사람들이라서 기피해야만 하고 거부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일까?

'좋은'이라는 말은 과연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귀로 듣기에 좋은 말만이 좋은 말일까?

성경 속에서도 많은 선지자들의 외침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엘리야, 아모스가 눈에 띈다. 간통한 다윗을 고발한 나단 선지자도. 그리고 세례요한이 '독사의 자식들아'와 같은 일갈. 이거 이렇게 적어 놔서 그렇지, 실제 상황에서는 어떻게 들렸을까? 과연 듣기에 좋은 말인가?

그래서 음성적인 것에 더해 그 의도 또한 살펴봐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목적과 방향이 옳다면 듣기에는 좀 거북하고 민망하다더라도 그 또한 좋은 말이지 않을까 싶다. '양약이 입에 쓰다'라는 옛말도 있지 않은가?

이러한 부분이 최근 한국교회에서 수시로 보게 되는 곤란함 아닐까 싶다. 60~70년대 계몽주의의 시대와 같은 시절, 국민을 개조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잘 해온(긍정적인 부분이 많았다지만) 교회와 당시부터 지금까지 현역으로 뛰시는 큰 목사님들의 활약은 익히 아는 바다. 이 분들이 특히 강조하는 부분중에 로마서 가운데의 바울사도의 설교, 권세자들에게 머리숙이라 또는 존경하라 등등

그러다보니 정부가 어떤 문제가 있던지간에 대통령은 하나님이 뽑으신 자이니 그에게 협조는 할지언정 비판이나 비난은 하지 말아라라는게 교회를 다니는 많은 이들에게 내려진 사명(?)이다. 최근에 총리파동을 통해 다들 눈으로 확인한 사실은 교회의 장로님이 교회안에서 하신 말씀은 비판이 대상이 아니고 오히려 두둔해야할 일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사실을 이미 확인한 바다.

목사님의 좋은 의도와 설교에 대해 성도는 과연 얼마나 고민하며 심각하게 말씀을 받아들이는 걸까라는 생각이 요즘 많이 든다. 지도자가 실정을 하고 고의적인 문제를 계속 양산하고 있는데도 이를 하나님이 세운 이이니 절대 비판은 사절. 이게 과연 제대로 된 모양일까? 게다가 그 지도자를 하나님이 세웠다는 근거는 뭘까? 물론 성경에 근거하여 하시는 말씀인 줄은 알지만, 그것도 그 당시의 시대적 배경가운데 해석할 것이지 그걸 현대에 가져와서 그냥 문자 그대로 적용해 버리면 곤란하지 않을까?

이 부분에서 한국교회의 많은 목사님들의 외침과 이에 대한 성도들의 화답은 유치원 선생과 원생 수준의 문답으로 되풀이되고 있는 듯 하다. '빨간불에는 무조건 건너면 안되요 알겠죠~? 네~' 뭐 이런거. 바람직한 비판마저도 악한 것으로 한번에 압살시켜버리는 요즘의 모습은 정말 아스트랄하다.

하여간에 한국교회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 중에 하나는 말씀을 받는 이들의 질적 수준 향상이 아닌가 싶다. 제아무리 좋은 설교도 받는 이들이 그에 걸맞는 수준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없다고 본다. 그래서 그 선한 의도와는 다르게 일방적인 방향으로만 적용한다던지 하는 것이 요즈음의 한국교회의 위상을 한없이 추락시키는 결과가 된 게 아닌가 싶다.


홍정길 원로목사의 말이 그래서 눈이 간다. 

홍정길 목사 “속지 말라, 멋진 말과 글에”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56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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