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최신작 '대홍수'를 봤다.
다모앙에서 하도 평이 안좋길래 볼까 말까 하다가 그냥 킬링 타임용으로 가볍게 봤다.

 
영화는 타이틀은 어그로를 끌기 위해 그렇다쳐도 영화소개를 재난영화라고 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요즘 시청자들은 그런 거에 쉽게 현혹되지는 않으니 그렇지만 평점테러하는 이들에게는 아주 좋은 소재이니까.
나도 초반에는 재난영화라고 알고 블록버스터 급의 액션과 CG가 들어가는 그런 영화인가 했다. 그러다가 영화가 도입부를 지나 어느 시점에 이르면서 내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게임이 하나 있었다.

 

 
'니어 오토마타' 소위 엉덩마타라 불리우는 게임계를 한 때 휩쓸고 심지어 애니화까지 되어 지금도 많은 이들이 찾는 그 게임.
보통 게임을 하다보면 많은 게이머들이 다회차 진행을 하곤 한다. 같은 게임을 여러 번 하면서 능숙해진 스킬과 업체가 제공하는 특전을 이용해 수월하게 하는 이점이 있어 그렇기도 하고 한 번 빠진 게임을 손에서 놓을 수 없어 그렇기도 하다.
그런데 '니어 오토마타'는 그런 게이머들의 성향을 잘 파고 들어 이전에 접할 수 없었던 그들만의 매우 독보적인 게임을 만들었다. 보통 내 경우 아무리 대작 게임이라도 엔딩 한 번 보면 끝내는데, 니어는 그럴 수 없었다. 다회차를 하지 않으면 진짜 엔딩을 볼 수 없게끔 했기 때문에.
 
결국 수차례에 걸쳐 게임을 다시 하게 됐는데, 회차마다 다른 주인공을 통해 플레이하면 같은 장면도 다른 의미로 다가오게 되고 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플레이어는 몇회 정도이지만, 게임 배경을 보면 메인 캐릭터들은 그러한 과정을 수없이 겪고 있었고 그러면서 각각의 기억들이 누적되어 현재 플레이하고 있는 캐릭터에 영향을 주고 있었던 것.
이 게임 또한 인류의 멸망이 눈 앞에 다가온 상황에서 이를 AI와 안드로이드를 통해 막고 새로운 인류를 위한 길을 마련한다는 게 주요소재인데 '대홍수'와 유사한 점이 있다.
'니어 오토마타'는 화려한 액션과 엉덩마타 만이 아니라 휴머니즘 또는 존재에 대한 의미를 되묻는 꽤나 철학적인 게임이었다. 이 게임의 연혁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지만 다회차 진행을 한 후 진엔딩을 본 뒤에도 여운이 오래 가는 걸 보면 엄청난 작품이었음에는 틀림없다. 한 가지 더 보태보면 OST도 매우 훌륭했다. 내가 좋아하는 OST 중에 손에 꼽을만큼 좋았으니까.
 
여하튼 그런 느낌으로 다가온 게 '대홍수'였다. 다만, 좀 더 런닝타임을 더 두고 배경서사를 밀도있게 깔아줬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보니 명작까지는 아니라도 개인적으로는 수작임은 틀림없다 생각한다.

예전에 썼던 글을 다시 보면서 AI 보고 다듬어 보라고 하니 훨씬 깔끔하기는 한데 뭔가 거친 맛이 좀 줄어든 느낌이긴 하다.

https://meteos.tistory.com/584

<원글>

I have faith in God.
나는 신을 믿는다.

I believe in friend.
나는 내 친구를 믿는다.

믿음, 신뢰? trust? faith? belief?

과연 믿음은 무엇일까? 아니 기독교인, 크리스챤에게 믿음은 뭘까?
지금 부적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송을 보면서 저들이 말하는 믿음은 생사화복을 중심으로 그것에 대한 믿음을 이야기하지만, 과연 예수를 구원자로 믿는 나, 또는 우리는 무엇이 믿는 것인가라는 물음을 다시 묻게 된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이지 생사화복을 잘 지켜 줄 것이라는 것에 대한 믿음이 아니다.
친구를 좋아하고 의지하니 믿는 것이지, 그가 나에게 베풀 것을 기대하고 믿는 것이 아니니까.

믿음이 간다 이런 말을 할 때 상대의 말과 행동이 일치할 때 사용하곤 한다.

말.

서로의 생각을 알려고 하면, 소통이 있어야 한다. 오고 가는 대화나 문장 속에서 상대의 생각을 알게 되고 나와 같은 점은 기뻐하고 다른 것이 있다면 더 깊은 대화를 통해 이해하거나 일치하거나, 아니면 그냥 인정하게 되던지.
또한 행동함으로 그 이해와 신뢰의 수준을 깊게 하는 것.
그래서 상대의 어렵거나 이해 못 할 상황에서도 기다려주고 헤아려주게 되는 것.
그 간에 쌓여가는 많은 작은 역사들, 히스토리.

그런데 지금의 신앙의 수준은 부적과 같아서 믿음의 주체인 나와 상대의 이야기가 아닌 그 결과물에만 주목하는 것이다.
만약 그 부적이 아무런 효험도 없었다면(내 생각에는 통계와 확률의 범주지만) 과연 방송에 나와 기쁨을 보여주고 무한한 신뢰를 보여줬을까?
많은 교회에서 회중기도, 새벽기도, 대표기도, 개인기도 중에 개인의 생사화복에 대한 간구로 넘쳐난다.
나와 하나님 간의 깊은 관계, 신뢰, 소통이 있다면 과연 그 초점이 저런 것에만 맞춰지게 될까?

이 글을 끄적이는 처음에는 부적과 믿음의 차이가 뭔가라고 하려했는데 쓰다보니 이 시점에 그간 성경을 멀리 하고 있던 나에게도 새로운 목적이 생긴다.
한 동안 왜 성경을 읽어야 하는가 하는 회의감이 들었었다.
주변에 보이는 성경통독, 성경백독, 성경필사 등등… 너무도 많은, 알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 성경에 대한 행사들은 나같은 이들에게 되려 거부반응만 일으켜왔음을 고백한다. 성경을 백독했더니 병이 나았어요, 축복이 넘쳐요 등등. 그래서 대체 저 모습이 부적과 다를 게 뭔가라는 등등의 생각들.

물론 그 과정 속에 진정으로 하나님과의 대화의 장에 빠진 분들도 있겠다. 그래서 그런 노력과 수고를 폄하하고만 싶지는 않다. 그렇지만 마치 그것만이 목적인양 진리인양 나팔처럼 불어대는 소음이 너무 많아서 피로했다.

하지만 친구는, 신뢰하는 이는 서로 대화한다. 소통한다. 그것은 말이고 대화다.
하나님은 나에게 어떻게 소통하시는가? 성경 아니겠는가?

성경 아니라도 이 세상이 그 분의 존재를 알려주지 않는가라는 생각도 했었다. 굳이 성경 자주 안봐도 세상에 뿌려져 있는 하나님의 흔적만 봐도 은혜롭지 않은가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믿는 이가 멀리 있을 때 그를 그리워하며 그의 흔적을 통해 그를 기억하는 것도 있지만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한계가 있다. 그래서 간간히 편지도 하고 전화도 하고 여차하면 어디선가 만나서 서로의 안부를 묻기도 하는 것 아닐까? 그런데 나에게는 그 분이 남겨놓은 글들이 몇천년 동안 보존되며 여지껏 펼쳐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성경을 내 옆에 덩그러니 놓고 ‘봐라. 내 말이다. 쓸쓸해하지 말고 외로워하지 말고, 의심하지 말고 내 말이니까 늘 두고 봐, 곧 올게’라고 하시는데 이제 안 볼 수 있나?

라고 이렇게 끄적여놨는데 과연 1년 쯤 뒤에 나는 어디 즈음에 있을까? 그래서 주변에서 나를 체크해 줄 필요를 느낌. ㅎㅎ

 

<수정 한 글>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나는 내 친구도 믿는다. 그런데 이 ‘믿는다’는 말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영어로는 faith, trust, belief라고도 하지만, 과연 크리스천에게 ‘믿음’은 무엇일까?

오늘 우연히 부적에 대해 다루는 방송을 보며, 그들이 말하는 ‘믿음’은 대부분 생사화복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효험을 기대하고, 어떤 결과를 얻기 위한 믿음. 하지만 예수를 구원자로 믿는 나는, 혹은 우리는, 과연 무엇을 믿는 것일까?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성품과 약속에 대한 신뢰이지, 나의 삶이 잘 풀릴 것이라는 결과에 대한 기대가 아니다. 마치 친구를 믿는 것이 그가 나에게 무언가를 해줄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를 신뢰하고 좋아하기 때문인 것처럼 말이다.

흔히 “믿음이 간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그 말은, 말과 행동이 일치하고, 삶에서 진정성이 느껴질 때 자연스럽게 나온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화와 소통이 필요하다. 상대의 생각을 이해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다름을 인정하는 과정을 통해 신뢰는 깊어진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그렇다. 진정한 믿음이란 그분과의 소통과 신뢰 속에서 자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많은 신앙은 마치 부적과도 같다. 하나님과 나 사이의 대화보다, 결과물에만 집중한다. 만약 부적이 ‘효과가 없다면’ 그 믿음은 지속될 수 있을까?

오늘날 교회에서 드려지는 많은 기도들—회중기도, 새벽기도, 대표기도—를 들여다보면, 그 내용은 개인의 삶의 문제 해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도우시는 분이지만, 정말 그분과 깊은 신뢰와 교제가 있다면, 우리의 기도의 초점은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나는 한동안 성경을 멀리했다. 성경통독, 백독, 필사 등 성경 관련 행사를 보며 “이게 다 무슨 의미인가”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병이 나았다, 축복이 넘쳤다는 간증들보다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과 진정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치 그것이 ‘정답’인 양 떠들어대는 분위기는 나 같은 사람에게 피로감만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는 결국 ‘소통’에서 시작된다. 하나님은 어떻게 우리와 말씀하실까? 바로 성경을 통해서다. 물론 하나님의 흔적은 세상 곳곳에 있다. 그러나 그분이 우리에게 직접 남겨주신 말씀, 성경이야말로 그분의 가장 확실한 ‘편지’다.

멀리 떨어진 친구의 흔적만 보고는 오래가지 못한다. 직접 편지를 주고받고, 때로는 만나 대화해야 진정한 관계가 유지된다. 성경은 그렇게 내 곁에 놓여 있다. “이것이 내 말이다. 두려워하지 말고, 의심하지 말고, 외로워하지 마. 나는 곧 올 거야.” 그렇게 말씀하시며, 기다리고 계시는 것이다.

이 글을 쓰다 보니, 나도 다시 성경 앞에 서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 지금은 모르겠다. 하지만 1년 뒤쯤의 나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 그래서 주변의 누군가가 나를 지켜봐주고, 이 여정을 같이 걸어가 주었으면 좋겠다. 😊

이번 주일 낮 설교를 듣다 어느 부분에서 뜬금없이 드는 생각이었다. 물론 이전부터 계속되어온 생각이긴하다.

“진화론과 성경의 창조 이야기는 서로를 부정할 수밖에 없는가?”

아주 오래된 질문이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을 갈라놓는 주제다. 누군가는 과학이 신앙을 위협한다고 말하고, 또 누군가는 신앙이 과학을 부정한다고 여긴다. 하지만 정말 그래야만 할까?

 

과학과 신앙은 언제나 싸워왔을까?

역사를 돌아보면, 새로운 과학적 발견이 나올 때마다 교회는 처음엔 경계했다. 지동설을 주장했던 갈릴레오는 성경의 문자적 해석과 충돌하며 고초를 겪었지만, 결국 인류는 그가 옳았다는 걸 받아들였다. 시간이 지나자 교회는 “지구가 돈다고 해서 하나님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늘날 분자생물학, 유전학, 고고학은 인류의 기원과 이동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발견들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기보다는 “창조의 질서가 얼마나 정교한가”를 보여주는 과정이라 볼 수도 있다.

결국 과학은 ‘어떻게’를 묻고, 신앙은 ‘왜’를 묻는다. 질문이 다르다면, 굳이 싸울 이유가 있을까?

 

진화론은 신앙의 적이 아니다

진화론은 생명이 환경에 적응하며 변해온 과정을 설명하는 과학적 이론이다. 이것은 ‘신이 없었다’는 주장이 아니라 ‘생명이 변화하는 방식이 이러하다’는 설명에 가깝다. 

성경이 말하는 창조는  “하나님이 세상을 질서 속에 세우셨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진화의 과정은 창조의 질서가 시간 속에서 펼쳐지는 방식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매일 변화하고, 배우고, 성장한다. 세상도, 사회도, 기술도 그렇다. 자동차가 해마다 새로운 모델로 개선되고, 사람의 생각이 끊임없이 진화하듯 우리는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진행 중인 작품’이다. 그 점에서 진화의 원리는 삶 자체의 모습과 닮아 있다.

 

오해의 근원 ― ‘이념’으로 과학을 재단할 때

종종 진화론은 유물론이나 포스트모더니즘 같은 철학적 사상과 한데 묶여 비판받는다. 하지만 진화론은 사상이 아니라 관찰된 현상을 설명하는 과학적 모델이다. 유물론이 진화론을 자기 철학의 근거로 삼는 건 가능하지만, 그건 과학의 책임이 아니다.

과학은 사실을 발견하는 도구이며, 신앙은 그 사실 속에서 의미를 찾는 여정이다. 둘은 서로 다른 질문을 던질 뿐 서로를 부정하지 않는다.

진화론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신앙이 흔들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생명의 복잡성과 아름다움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이 이렇게 섬세하게 움직이는구나.” 그 경이로움을 과학이 보여줄 뿐이다.

과학과 신앙은 싸움의 상대가 아니라 서로의 시야를 넓혀주는 두 개의 창이다. 하나는 세상의 구조를 보여주고, 다른 하나는 그 구조 안에 담긴 의미를 비춘다. 진화는 단지 생명의 역사에 관한 설명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는 창조의 현재진행형일지도 모른다.

 

이번 맥OS 타호에서 가장 반가운 점은 바로 영상파일 아이콘 옆에 있었던 흉칙한 검은색 바가 사라진 것.

무슨 이유에선지 지난 소노마인가 쉐콰이어부턴가 mp4와 같은 영상 파일 아이콘 옆에 검은색 바가 붙기 시작했다. 나만 그런가 했더니 레딧에서도 그런 현상이 있다고 하고. 여하튼 다른 맥에 오에스를 설치해봐도 동일하길래 대체 이게 무슨 짓인가 싶었는데.

상단 우측 두번째 하얀색이 검은색이었다고 상상해봐. 얼마나 흉측했겠어?


알흠다운 MacOS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와줘서 너무 고맙다. 뭐 다른 기능 다 필요없다. 맥은 원래 이런 우아한 맛에 썼으니까. 제발 헛짓 좀 하지마라.

애플이 ‘애플다운’ 적은 언제였던가 하고 되돌아보면, 이런 순간들이 떠오른다.

예를 들어, PC의 창세기 즈음에 사람들은 막연히 “뭔가 그런(?) 것이 필요해”라고 애매모호하면서도 강한 욕구를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애플 II와 매킨토시로 있게 되었으니, 참 보기에 좋았더라. ^^

그다음은 여러 미디어 기기들로 세상이 혼잡하던 시절이었다. 그때도 마찬가지로 “이걸 어떻게 깔삼하게 하나로 합칠 수는 없을까?”라는 시장의 요구가 있었고. 여러 어설픈 시도들과 어렴풋한 형태들을 내놓으면서 점점 기대치가 높아지는 가운데, 결국 그것은 아이폰으로 있게 되었으니 역시 참 보기에 좋았다. ㅎㅎ

스티브 잡스 사후, 애플에 혁신이 있네 없네 말들이 많았지만, 앞서 언급한 애플이 보여준 수준 이상의 혁신과 창조는 이후 어떤 다른 회사에서도 아직까지는 보이지 않는 듯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잡스가 위대하다고, 애플이 대단하다고 말하는 게 아닐까 싶다. 물론 디지털 기기로만 한정해서 그 의미를 축소할 수도 있지만, 그 영향력이 사회 전반에 미친 바가 워낙 크고, 그것을 애플은 두 세기에 걸쳐 이루어냈다.

세상에는 많은 위대한 기업들이 있었지만, 인류 문명을 새로운 지경으로 인도한 기업은 그리 많지 않다. 특히 IT로 대표되는 현대 문명 속에서 애플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물론 그 근간에 있는 HP, Xerox, Microsoft, Oracle, Google 같은 기업들의 영향력 또한 엄청나기는 했지만 말이다.

여하튼, 21세기도 벌써 4 반세기가 지나고 있는 이 시점에, 이전처럼 안개처럼 희미하면서도 강력하게 구체화되기를 바라는 ‘무엇’은 과연 무엇일까? 애플도 Vision Pro 같은 것으로 그것을 실현하려 하고 있지만, 아직은 아닌 것 같고. OpenAI의 ChatGPT일까? 양자컴퓨팅이 뭔가 이뤄낼까?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로봇 같은 것일까?

잡스 같은 비저너리가 없어서일까? 무언가가 구체화되려는 시점이 다가오는 것 같긴 한데, 아직까지는 모르겠다. 그간 개발되고 상품화된 것들이 이전보다 대단한 건 맞지만,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고 채워져야 할 부분도 많아 보인다. 한마디로, ‘눈이 번쩍 뜨이는 무언가’가 아직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때에 잡스는 늘 “이거야!”라며 우리 눈앞에 들이밀었는데 말이다. 다른 어떤 회사들처럼 “너희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넣어봤어”가 아니고. 

아무튼, 조만간 내 눈을 번쩍 뜨이게 할 무언가가 오고 있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뭐랄까, 이건 일종의 주기 같은 게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마치 무어의 법칙처럼 말이다.


이번에 맥북프로 15인치 인텔 모델에서 M4 Pro 맥북프로 14인치로 교체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주변 기기도 정비하게 되었고, 그중 하나가 바로 썬더볼트 독.

아트뮤 썬더볼트 독


맥을 사용한 지도 벌써 20년 가까이 되었다. 그동안 줄곧 USB 허브를 사용해왔지만, 늘 전원과 관련된 안정성 문제가 따라다녔다. 외장하드 연결이 끊기거나, 디스플레이 출력이 불안정해지는 등의 문제가 반복되면서 보다 신뢰할 수 있는 연결 방식을 고민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썬더볼트 독의 필요성을 실감하게 되었지만, 가격이 워낙 높아서 몇 년 동안은 구매를 미뤄왔다. 칼디짓 TS4는 물론, TS3조차 여전히 부담스러운 가격대였다. 벨킨 제품도 고려했지만, 가격 대비 포트 구성이 만족스럽지 못했다.

이번에 맥북을 교체하게 되면서 드디어 독도 함께 구입하게 되었다. 제품 선택에 앞서 다양한 리뷰를 참고했다. 클리앙, 유튜브, 블로그 등에서 실사용 후기를 꼼꼼히 살펴본 끝에 아트뮤 썬더볼트 4 독을 선택하게 되었다.

문어발식 확장이랄까

가격이 매우 합리적이었고, 마침 설맞이 특가 이벤트까지 더해져 부담 없이 구매할 수 있었다.
사양은 썬더볼트 4를 정식 지원하며, USB-A, USB-C, HDMI, 유선랜, 오디오 등 다양한 포트를 고루 갖추고 있어 확장성 측면에서도 만족스러웠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연결 안정성부터 언급하면,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럽다. 기존 USB-C 허브를 사용할 때는 선을 조금만 건드려도 외장하드가 인식되지 않거나 디스플레이 연결이 끊기는 등의 문제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런 현상이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현재 연결된 장비는 다음과 같다:
• 34인치 울트라와이드 모니터 (HDMI)
• SSD 1개
• HDD 2개 (USB-C 1개, USB-A 1개)
• 스피커 (USB)
• KVM 스위치 (USB)

거의 모든 포트를 풀로 사용하는 상황에서도 안정성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다만 발열은 고려할 필요가 있다. 몇 시간 연속으로 사용해보면 본체가 제법 따뜻해진다. 손으로 만졌을 때 뜨겁지는 않지만 열감이 확실히 느껴진다. 겨울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여름에는 발열이 우려될 수 있다. 다만 이 정도 사용 환경은 제조사에서도 충분히 고려했으리라 본다.

제품 마감은 매우 깔끔하다. 포트 배치도 실용적이며, 디자인 전반에 만족하고 있다. 썬더볼트 포트가 전면에 위치한 점은 사용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으나, 필자의 경우 맥북을 클램쉘 모드로 사용하지 않고 책상 위에 두는 방식이기 때문에 오히려 전면 포트가 편리하다.

아트뮤 썬더볼트 독은 국내 브랜드 중에서 보기 드물게 인텔 인증을 받은 정식 썬더볼트 4 제품이다. 합리적인 가격, 다양한 포트 구성, 안정적인 성능을 종합해 보면 충분히 추천할 만한 제품이라 생각한다.

2층짜리 수납데크(이런 장비를 위한 전용 랙같은게 있으면 싶은데)


장시간 사용이나 여름철 발열 등은 좀 더 지켜볼 부분이지만, 지금까지의 사용 경험으로는 매우 만족스럽고 오랜 기간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기를 기대.


사전에 이 영화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지 않은 상태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매우 평이 좋은 영화라는 정도는 알았기에 볼 마음이 생긴 것.

처음에는 평화로운 자연과 행복해 보이는 평범한 가족이 보여 뭔가 힐링하는 내용인가 했다. 처음에는...

다만 쨍한 색감은 좋아보였으나 그럼에도 일부러 어둡게 조정한건 이 영화가 호러물인가라는 생각이 들 무렵.

인간을 태우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구조를 설계하는 미친놈들인데 무슨 사업 설명하듯이 이야기 한다.

이것들이 사람들인가 싶었다. 이 영화는 힐링을 위한 영화는 분명 아니다. 그렇다고 치유물도 아니고. 

저 동네는 '아우슈비츠'였다.

영화는 시종일관 저 벽 너머는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평화로운 일상의 정원과 주택에서 바라보는 관점만 제시하고. 그리고 무슨 이유인지 모를(물론 우리는 알지만) 굴뚝에서 나오는 시커먼 연기들만 보여준다. 더불어 저 멀리 어디선가 계속 들려오는 총성과 비명 같은 어떤 소음들. 영화 내내 줄곧 깔리는 배경 소음 같은 것이지만, 역시 이를 화면으로 지켜보는 우리는 무엇인지 알지만, 스크린 속의 그들은 무감각 것인지 상관하지 않고 그들의 삶을 누리며 살아간다.

소장이 평화롭게 낚시를 즐기는데 상류로부터 뭔가가 내려온다.
역시 우리는 저 뿌연 것이 무엇인지 안다. 그리고 저 소장은 화들짝 놀란다. 그리고...
그리고 지 새끼들은 걱정되는지 물놀이하는 자식들을 그 무언가로부터 피하도록 하는 눈물겨운 부정(父情).

그렇지. 모를 리 없고 다 알고 있다. 심지어 수용소장의 아내는 폴란드인 하녀에게 일 똑바로 안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벽 너머 저들처럼 재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고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한다. 아이들도 다 알고 있다. 그냥 모르는 척할 뿐이고 그냥 그게 당연한 것이고 일상인 것처럼 살아가고 있다. 관심의 영역 밖이 되어버린 것이지. 사람이 죽고 특히 그중에는 아이들 본인들과 같은 나이의 소년, 소녀, 아기들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냥 풀장 만들어놓고 즐겁게 일광욕하며 한가로이 살아가고 있다. 소장 부인이라는 것은 심지어 소장인 남편이 전출가게 되지만 그간 그들이 꾸려놓은 주택이며 정원 등이 아쉬워 남겠다고까지 한다. 불과 몇 미터 벽 너머의 세게는 전혀 그들의 관심 밖이다.

그제야 제목이 이해가 됐다. 그리고 우리는 그 소장 역할의 또 다른 실재 인물도 안다.

아돌프 아이히만.

 

아돌프 아이히만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오토 아돌프 아이히만[a](독일어: Otto Adolf Eichmann, 독일어 발음: [ˈɔtoː ˈʔaːdɔlf ˈʔaɪçman]; 1906년 3월 19일 ~ 1962년 6월 1일[b])은 독일인이자 오스트리아인으로,

ko.wikipedia.org

처음엔 이 인간인가 했더니 영화 속 인물은 다른 인간이며 배역 이름과 같다.

'악의 평범성'이라는 문구를 세상에 소개한 '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에 대해 저술한 책도 있었고, 또 그와 관련한 영화도 있었다. 그래, 그럴 수도 있었겠다는 피상적인 이해를 넘어서 'Zone of Interest'는 그들만의 평화로운 일상의 모습을 그들의 어깨 너머로 체험 아닌 체험을 하며 대체 그 악마 같은 저들은 뭐였던가라는 물음에 답해주는 것 같다.

그런데 말이다. 저들의 이야기는 21세기 현재도 계속 되고 있으니 마음이 복잡하다. 특히 그 당시 피해 당사자였던 이스라엘 유대인들이 지금 가자 지구에서 벌이고 있는 짓들을 보자면 과연 절대악이라는 말은 사치고 우리 모두가 원래 악마가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든다. 멀리 갈 것도 없이 2025년 우리 대한민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일들도 마찬가지다. 한 술 더 떠 태평양 건너 천조국이라 불리는 그 동네도 마찬가지. 당장 나의 삶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 같아서 안심인가? 다음 세대인 나의 자녀들 그리고 그 이후의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한다. 무엇을 해야, 아니면 어디서부터 뜯어고쳐야 제대로 된 세상이 될까? 아니 그 제대로 된 삶이라는 건 대체 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까지도 해보지만 범인이 뭘 알 수 있나라는 자조만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대단한 가해자였던 독일인들은 전후에 큰 시련은 겪었다. 그럼에도 그들의 조상이 벌여놓은 짓들로도 벌어먹을 게 있는 게 보이는 것 같아서 참 아이러니 하다. 수용소를 보존하고 박물관으로, 그리고 그걸 유지하고 관리하면서 소득도 챙기고. 참 잘 되는 동네는 뭘 해도 잘 되는 것 같아서 말이다. 내 시각이 너무 비뚤어져만 가는 것 같아서 뒷맛이 씁슬하네...

독일인들답게 군더더기 없이 요란하지 않게 보존 관리는 참 잘한다. 그리고 일자리 창출도 하고...

 

길고 빛나는 강 - 10점
리즈 무어 지음, 이나경 옮김/황금시간

 


미국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담은 범죄 스릴러

여러 범죄 스릴러를 읽어봤지만, 여성의 시각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많지 않았던 것 같다. 특히 마약을 중심 소재로 한 작품에서는 더욱 그렇다. 대부분의 경우 여성은 피해자이거나 범죄의 굴레에 갇힌 인물로 그려지고, 이를 해결하는 역할은 남성 형사, 경찰, 또는 탐정이 맡기 마련이었다.

이번에 읽은 책은 현재 미국에서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펜타닐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특히, 미국 내에서도 마약 문제가 가장 심각한 지역으로 꼽히는 필라델피아, 켄싱턴을 배경으로 한다. 참고로, 이 지역의 실상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영상을 함께 소개한다. (참고 영상)

이 책은 오바마 전 대통령이 추천한 작품으로도 화제가 되었다. 단순히 재미만을 이유로 추천한 것은 아닐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현재 미국 사회가 직면한 수많은 문제가 한데 얽혀 있음을 느낀다. 마약, 매춘, 폭력, 가정의 해체, 교육시스템의 붕괴그리고 경찰 조직 내 부정부패까지—이 모든 요소가 미국 사회의 내부적 부패와 붕괴를 상징하는 듯했다.

읽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미국에도 더 이상 어른이 없다”는 것이었다. 어른이 없다는 표현보다는, 어른들조차 생존하기 바빠 다음 세대를 돌볼 여력이 없는 현실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상황에서 마약, 이혼, 폭력, 그리고 부정부패가 서로 뒤엉켜 사회를 더욱 깊이 병들게 만든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결국 정치인들의 몫이겠지만, 시민들의 관심을 환기하기 위해 오바마 전 대통령이 이 책을 추천했을지도 모르겠다.

소설은 후반부로 갈수록 희망과 절망을 오가며 반전의 연속을 보여준다. 하지만 결국 범죄 스릴러가 주는 카타르시스를 위해 바람직한 방향으로 수렴해 나간다. 다만, 주인공이 겪는 다양한 감정과 심리적 변화가 너무나도 생생하게 그려져 있어, “작가가 직접 경험한 이야기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저자는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 명문대를 졸업하고 집필 활동을 이어온 인물인데, 어떻게 이렇게 결핍된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의 심리를 깊이 있게 묘사할 수 있었을까?

그렇기에 이 책은 더욱 뛰어나다. 서술 방식은 단순하면서도 기존의 범죄 소설과 차별화되어 있으며, 덕분에 읽기 쉽고 몰입하기 좋은 작품이었다.

 

 

https://www.imdb.com/video/vi944621081/?ref_=ext_shr_lnk

처음에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같은 영화인줄 알았다. 그러면서 이런데 어떻게 아카데미가 상을 줬나 싶었다. 대체 뭔가 싶었는데 역시 거장의 작품은 일반인의 머리로 짐작할 수 있는 게 아니다.

 

▶️ Anora - Official Trailer 2

Watch Trailer | 1:53

www.imdb.com

 

이하는 chatGPT가 뉴욕타임즈의 기사를 요약해 준 내용인데 잘 정리한 것 같다.


🎬 영화 『아노라』의 개요

 

션 베이커(Sean Baker) 감독의 신작 영화 『아노라』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클리셰를 새롭게 해석해 진정한 의미의 ‘스타 탄생’을 증명하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특히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Palme d’Or)을 수상하며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영화는 뉴욕 맨해튼에서 스트리퍼 겸 에스코트로 일하는 아노라(애칭 애니)를 주인공으로 합니다. 러시아계 부유한 청년 이반(애칭 바냐)을 만나 펼쳐지는 사랑, 코미디, 비극이 섞인 이야기를 다룹니다.

 


🎬 영화의 핵심 포인트 분석

 

① 스타 탄생의 순간: 마이키 매디슨(Mikey Madison)

 마이키 매디슨은 이미 쿠엔틴 타란티노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등 여러 작품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지만, 「아노라」에서 그녀는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연기를 선보입니다.

 그녀는 이번 영화에서 로맨스, 희극적 슬랩스틱, 심오한 내면 연기뿐 아니라 춤과 액션까지 다양한 연기 스펙트럼을 성공적으로 소화하며 관객을 압도합니다.

 

② 감독 션 베이커(Sean Baker)의 진일보

 『플로리다 프로젝트』 등 사회 변두리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뤄왔던 션 베이커 감독은 『아노라』를 통해 더 성숙하고 세련된 연출력을 보여줍니다.

 그의 영화는 늘 소외된 계층의 삶을 묘사했지만, 『아노라』는 특히 현대판 『귀여운 여인(Pretty Woman)』과 같은 로맨스 요소를 가미해 더 대중적이고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 영화의 구성 및 줄거리 특징

 

『아노라』는 총 3막 구조로 나뉘어 있으며 각 막마다 뚜렷하게 다른 장르의 성격을 갖추고 있습니다.

 1막: 동화적 로맨스

아노라(Ani)가 뉴욕에서 러시아계 부유한 클라이언트 바냐(이반)를 만나 관계가 발전하며 낭만적인 요소가 강조됩니다.

 2막: 긴장감 넘치는 스크루볼 코미디

두 주인공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뉴욕 브루클린 지역을 배경으로 빠르게 전개되는 소동과 혼란스러운 사건들이 펼쳐집니다. 실제 뉴욕의 겨울을 무대로 독특한 분위기를 표현합니다.

 3막: 현실적이고 비극적 전환

마지막 막에서는 다시 진지하고 깊이 있는 분위기로 돌아와 인간적이고 심리적인 갈등을 다룹니다. 로맨스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비극적이면서도 감성적으로 그려냅니다.

 

이 세 장르의 전환이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이어지면서 관객에게 강렬한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 영화가 주는 메시지와 사회적 통찰

 

영화는 얼핏 보기엔 화려한 슈퍼리치의 세계와 자극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미국 사회의 불평등과 ‘아메리칸 드림’의 한계를 지적합니다.

 특히 주인공 아노라를 통해 돈에 의해 평가받고 이용당하는 삶에 익숙한 여성이 처음으로 진정한 관심과 ‘인정받는 경험’을 하는 모습을 통해, 인간 본연의 존재감을 탐구합니다.

 화려하고 자극적인 소재 뒤편에 숨겨진 인물들의 내면을 섬세하게 포착해 인간의 내면을 관찰하는 영화적 깊이가 돋보입니다.

 


🎞️ 종합적인 평가 및 전망

 

『아노라』는 단지 화려한 로맨스 영화가 아니라 사회적 편견과 인간성을 탐구하는 섬세한 현대적 우화입니다. 감독 션 베이커의 진일보한 연출력과 마이키 매디슨의 압도적인 연기력이 돋보이며, 관객에게 기존 슈퍼스타 영화 이상의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한 배우나 감독의 스타 탄생을 알리는 작품을 넘어서, 미국 사회의 복잡한 현실과 꿈의 경계를 심도 있게 묘사하는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상! 분석 끝.

올해 본 영화 중에 가장 강렬한 영상을(?) 제공했다. 그래서 가족이랑 같이 가서 보라는 또는 같은 공간에서 보라는 이야기는 차마 못하겠다만 여하튼 영화는 중반 이후 넘어가면서 플로리다 프로젝트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러시아와 아르메니아를 들먹이며 개네 나라는 여전히 신분, 계급 사회를 미개하다 하는 것 같으나, 하긴 요즘 미국애들 정서가 그러하긴 한데 그런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 당연히 아닐 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점점 강화되는 아나 이미 그 한계를 넘어서버린 것 같은 양극화 또는 부의 극집중으로 인해 이제는 신데렐라나 개천에 용 나는 그런 세상은 없다고 하는 것인지. 그래서 보이지만 넘을 수 없는 유리천장 같은 사회에서 천한 니들끼리 행복(?)하게 살아라는 명령 아닌 명령인 것인지.

한 여름밤의 꿈같은 며칠을 보낸 여주를 통해 그나마 맛만 봐라는 것 같은 느낌. 당연히 션 베이커 감독이 그분들의 입장에서 만든 영화는 당연히 아닐 터이니 그런 느낌을 되새기다 보면 마음속이 쓰려진 안타까움만 더해짐. 대체 세상이 어디로 가는 것인가.

카페나 사람 많은 곳 가면 일부러 헤드폰을 쓴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럴 수가 없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정겨운 억양 때문이다. 귀를 쫑긋하고 귀기울이게 된다. 내용이 뭐든간에.

여기를 떠나지 않고 계속 살았다면 나도 저 무리들 가운데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저런 모습들, 소리들에 의미 부여가 되는 것도 있겠지만.

물론 그런 것을 모르고 그냥 살아갈 수 있는게 더 행복하고 좋은 것이겠다.

송정역 시장인데 과거에는 늘 북적이던 곳이었던 기억
예전에 광산구의 메인스트리트였지만, 이제는 구도심의 한 이면도로일 뿐.
에전 살던 집을 멀리서 땡겨 봄. 월래 주변이 논밭이었던 곳인데 상전벽해
낮에 가본 송정역시장 반대편 입구. 거리의 윤곽은 예전 그대로. 물론 입구에 저런 간판은 있지도 않았지만.
이 광경을 보고 싶어서 간 것 아닐까
예전에는 그냥 돌산이라 불리웠던 곳인데 이제는 송정공원이라고
이런 골목길이 내 등굣길, 기억을 찾아 한참을 헤매면서 찾아낸 길.

 

https://github.com/vhanla/winxcorners?tab=readme-ov-file

 

GitHub - vhanla/winxcorners: Hot corners for Windows 10 & 11

Hot corners for Windows 10 & 11. Contribute to vhanla/winxcorners development by creating an account on GitHub.

github.com

상단 링크로 깃허브 접속 후에 아래 캡처한 것처럼 파일을 다운로드합니다.

다운로드한 파일은 압축을 해제한 후 다음과 같은 파일을 실행합니다.

실행하면 윈도우에서 인증되지 않은 프로그램이네 어쩌네 할 텐데 그거 실행하는 걸로 하시면 트레이에 등록됩니다.

해당 아이콘을 클릭하면 아래와 같은 화면이 뜨는데 제 경우는 저렇게 설정하고 사용합니다. 

즉 마우스를 우측 하단 모서리로 이동하면 전체 화면이 뜨게 되는 거죠.

맥처럼 부드럽지는 않아도 기능을 활용할 수 있어서 그간 불편함에서 해방되니 너무 좋습니다.

 

정지아 작가를 알게 됐다. 빨치산, 빨갱이의 딸.
지내온 세월의 무게가 엄청났을 것 같은데 정작 소설에서는 깃털처럼 가볍다.
20대의 작품에서는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지천명의 시기인 50대가 되니 세상을 달관하기라도 한 것일까. 물론 책을 탈고하는 세월이 만만치는 않았겠지만.
유물론자, 사회주의자인 아버지와 어머니를 둔 저자가 그분들의 삶을 세월을 통해 그리고 아버지의 장례식을 통해 이해하고 화해하는 내용. 이념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지만, 세상 일이라는게 이념만으로 획일화할 수도 없고, 그 마저도 사람이 하는 일이니 그래서 사람 냄새가 나는 책이었다. 특히 유년시절 아버지와의 감정적 교류의 여러 지점들은 나의 어렸을 적 아버지, 어머니와의 기억들을 소환했다.
모든 것이 사람이 하는 것이고 그래서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들이 만들어가는 수많은 우연들로 만들어진 인연들이 우리들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책이었다.

이선균을 보내고 나니 이 드라마가 너무 보고 싶어졌다. 묵직한 중저음의 그가 왜 이리도 안타깝게 느껴지는 걸까 싶어서.

드라마도 그가 최근에 겪은 일들의 총합인 듯 인생의 무게를 혼자서 짊어지고 가는 40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드라마 종반에 가까이 와서인가, 해외에 유학 중인 아들을 보러 아내가 없는 거실에서 혼자 있다 감정에 북받쳐 우는 모습에서는 왜 저러는지 그냥 공감이 되는 장면이 있었다. 뭔지 모를 인생의 버거움과 외로움이었니 않을까?

인간은 사회를 벋어나서 살아갈 수 없다고 하고 그래서 공동체가 필요하다지만 결국 삶의 본질적인 문제는 인간 개인 스스로의 몫이다. 그러기에 누구도 그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거나 대신 저줄 수 없다. 결국 스스로가 그걸 헤쳐나가고 극복하는 수밖에 답이 없다. 물론 도움은 받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런 점에서 보는 내내 ‘박동훈’이라는 인물이 부모, 형제, 아내, 동료, 선배, 후배 등등 수많은 인연들로 둘러싸여 있었음에도 계속 마음 속에 뜻 모를 짐들이 자리 잡고 있었고 그로 인해 힘들어했음에 많이 공감이 갔다.

인간은 외로운 존재다. 같은 인간끼리는 그 외로움을 본질적으로 없앨 수는 없다. 결국 전혀 다른 존재의 개입만이 답이지 않을까. 하나님만이, 예수님만이.

그래서 이선균의 자살은 참 안타깝고 아쉽다. 드라마에서처럼 ‘아무 것도 아니야’라고 누군가 얘기해 주었다면.

그런 지점에서 대체 교회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같은 편이 되어주지는 못할 망정, 외면하고 정죄하기에 급급한 현실을 보자니 말이다. 아마 앞에서는 아니라도 저 멀리서 뒷짐 지고 혀나 끌끌 차고 있지 않았을까?

 

My Mister (2018) on IMDb

#나의아저씨 #이선균 #존재 #인생 #삶

 

아랍, 그곳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 - 10점
팀 매킨토시-스미스 지음, 마틴 요먼 그림, 신해경 옮김/봄날의책

 

“저자는 이슬람 여행자들의 수호성인인 알-카디르와 영국의 수호성인인 성 조지가 같은 인물이라는 걸 깨달았고, 무슬림인 이바가 들어가지 못했던 하기아 소피아 성당 내부를 이바를 대신해 돌아본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슬람과 그리스도교의 상징, 이슬람의 추상화된 하나님과 그리스도교의 인간화된 하나님 형상이 나란히 걸린 것을 발견한다.

성인들의 무덤을 찾으며 작은 기적을 입기도 했던 이집트는 격렬한 아랍의 봄을 앓으며 무바라크를 축출하는 데 성공했지만 처음으로 국민들이 뽑은 대통령은 군부 쿠데타로 축출되어 지금 사형집행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 바바를 만나 세마의 감동을 맛보았던 터키는 최근에 수도 앙카라에서 일어난 대규모 폭탄테러를 포함하여 곳곳에서 폭탄테러가 벌어지고 있다. 글자 그대로 이름이 없는 '익명' 호텔에서 보드카에 취해 춤을 추었던 크림자치공화국은 우크라이나와 결별하고 러시아에 병합되어 새로운 냉전체제의 도화선이 되었다.

~

그리고 시리아. 천 년 묵은 수차가 돌고, 지옥 위에 산상 노인의 성채가 펼쳐졌던 그곳은 벌써 4년 반이 넘도록 전쟁에 시달리고 있다. 연일 공습이 계속되고 정부군과 반군, 수천 년 된 유적들을 여봐란 듯이 파괴해버리는 IS가 날뛰는 그 땅에서 벌써 25만 명이 숨을 거두었고 인구의 반이 난민이 되었다. 전 세계 국가들이 국경을 닫아걸고 있다. 어쩌면 수많은 사람들이 벌써 마음을 닫아걸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환대가 없는 시대를 살아가야 할 처지에 놓였다.

그곳의 사람들은 아직 14세기의 마음을 지니고 있다. 저자는 탕헤르의 택시 운전사에게서 축복을 받았고, 이집트 사막 한가운데에서 만난 여인들에게서 포용을 얻었으며, 함께 탐험에 나서준 영민한 터키 소년에게서 우정을 구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그중에서도 이바 시대의 파편을 가슴속에 지닌 사람들이야말로 저자가 찾고자 했던 이바의 환생, 가뭇없이 사라질지도 모르는 공존과 조화의 시대를 붙잡아줄 마지막 희망일 것이다.” <옮긴이의 후기 중>

책 제목이 원어 제목과 다른 점이 다분히 의도적이기는 하지만 이 책의 숨겨진 의도(라기 보다는 의도하지 않은)아닐까 싶다.
요즘 나라와 나라, 종교와 전쟁, 민족과 민족, 지역과 지역 간 크고 작은 분쟁과 전쟁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저 위 정치적인, 저 아래 개인 대 개인 간의 다툼이나 이견으로 시작된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가까이서 터 놓고 지내보면 결국 아무것도 아닌 일일 수도 있는데 안타깝다. 거창하게 대의, 명분, 정의를 부르짖다가 결국 원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내놓게 된다. 물론 모든 경우가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대다수는 알고보니 어이없는 것으로 시작되는 수가 있다는 것.

아무튼 이 책 읽는 내내 어려운 점이 하나 있었는데 지명이며 인물 이름이여 대다수 '[알(al)'이 붙다보니 혼란스러웠다. 그 지역의 특성이니 감수할 사항이긴 하다. 게다가 저자는 동일한 이름의 반복을 꽤 피하고자 한 듯 해서 방금 지목한 사람의 이름이 곧 다른 별칭으로 바꿔버리다보니 글 읽는 내내 무슨 미로 속에서 길 찾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요즘같은 코로나 시국에 북아프리카에서 시작해 아라비아 반도, 레반테 지역, 아나톨리아, 마지막으로 요즘 가장 핫한 크림반도를 대신 다녀올 수 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고 매력적이다. 좀 더 재미있게 보려면 구글어스같은 맵 어플 옆에 끼고 해당 지역의 사진과 지형을 참고하면 너무 좋다. 14세기의 이바가 이십년 넘게 저 지역들을 다녔다면 21세기의 저자는 비행기와 차량을 통해 짧은 기간에 추적했다. 그렇다면 2022년을 살고 있는 우리는 스마트기기까지 더해서 그냥 앉은 채로 그 지역을 찾아가 볼 수도 있다. 다만 여지껏 배경지식을 알 수 없어 헤맬 수밖에 없었다면 이 기회에 저자를 믿고 따라가보면 재택여행이 충분하리라 본다.

 

 

첫 번째 사례.

내가 쓰던 에어팟 프로는 2019년 발표 직후 구매한 제품. 2년 넘게 쓴데다 구매 당시에 애플케어 가입 안 한 제품.

몇 개월 전부터 왼쪽 유닛에서 잡음이 들려오던 중, 오른쪽 유닛까지 잡음 발생 하더니 도저히 정상적으로는 들어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보증기간은 한참 전에 지난데다 애플케어도 적용 안되어서 그냥 버려야하나 하고 고민하던 중 클리앙에서 무상 교체 가능하다는 글이 있어 바로 실행.

애플 홈페이지 들어가서 예약을 했다. 이번에는 애플 여의도를 가보기로 했다. 새로 생긴 곳이기도 하지만 가로수길에 비해 주차에 강점이 있어서다. 예약 당일 애플 매장에 가니 코로나 시국임에도 역시나 사람들의 줄은 여전하다. 물론 예약을 했으므로 시간에 맞춰 입장. 

지니어스가 와서 증상에 대해 듣고 테스트를 위해 가져가면서 좀 기다려 달란다. 기다리면서 제품들 구경도 하시라는 말과 함께. 데스크에 에어팟 맥스가 있길래 바로 머리에 장착해봤는데... 음질이고 뭐고 간에 머리에 안 맞다. 다행이면서도 슬프기도 하고. 어차피  B&W PX7에 매우 만족하고 있는지라 굳이 아쉬울 필요도 없었지만.

20여분 지나 지니어스가 와서 매우 기쁜 소식이라며 무상 교체 한단다. 역시! 이번에도 무상교체(이전 글 참조). ㅎㅎㅎㅎ 

무상교체를 하더라도 양쪽 유닛만 교체하고 충전케이스는 그대로 써야하기 때문에 페어링을 전 펌웨어 업데이트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주의사항 전달. 돌아오는 길 운전 중에 미리 충전, 집에 와서 페어링 하니 바로 사용 가능하다. 예전처럼 업계 최고수준의 노이즈캔슬링. 그런데 이전 제품에 비해 베이스가 약해진 느낌이다. 풍성한 저음에서 조금 단단해졌지만 음량이 작아진 베이스랄까. 약간 아쉽기는 했지만 어차피 외부 소음이 차단된 상태에서 베이스이므로 음원 청취 시에는 별 영햠 없다. 곡이 약간 재미가 없어질 뿐.

 

두 번째 사례.

이번에는 둘째 아들이 쓰는 에어팟 프로. 2021년에 구매한 제품이다. 이 경우에는 갑자기 한쪽 유닛이 그냥 안 들렸다. 그냥 갑자기. 별별 방법을 다 써봐도 회복 불능. 

당연히 수리 예약을 했다. 다만 이 경우는 무상여부는 확인 할 수 없어 유상처리라도 해야 한다는 각오(?)로 아이와 함께 여의도로 향했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애플스토어는 사람으로 북적인다. 코로나와는 전혀 무관한 동네인가? 물론 다들 마스크는 착용 했지만서도.

지니어스가 와서 증상을 들은 후 제품을 가져가 테스트 한 후 결과를 알려주겠다고 했다. 그 사이 아이도 나도 제품 몇가지 보고. 잠깐 시간이 지난 후 지니어스가 지난번처럼 기쁜 소식으로 돌아왔다. 무상교체. 이번에는 고장 난 유닛 1개만 교체. 

역시 페어링 절차 전 충분히 충전하고 페어링. 일은 잘 끝났다.

 

두 번의 사례 중 첫 번 째는 초기 출시 제품에서 자주 발생하는 건인가보다. 혹시 이 글을 보시고 그런 증상 있으신 분은 바로 애플에 문의해서 무상교체의 기쁨을 나누시고, 후자의 경우도 기간만 적당하다면, 그리고 내용을 봐도 사용자의 과실이 입증되지 않아 무상교체는 충분할 듯 하다. 

이상 에어팟 프로 2개 무상교체한 후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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