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일 낮 설교를 듣다 어느 부분에서 뜬금없이 드는 생각이었다. 물론 이전부터 계속되어온 생각이긴하다.

“진화론과 성경의 창조 이야기는 서로를 부정할 수밖에 없는가?”

아주 오래된 질문이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을 갈라놓는 주제다. 누군가는 과학이 신앙을 위협한다고 말하고, 또 누군가는 신앙이 과학을 부정한다고 여긴다. 하지만 정말 그래야만 할까?

 

과학과 신앙은 언제나 싸워왔을까?

역사를 돌아보면, 새로운 과학적 발견이 나올 때마다 교회는 처음엔 경계했다. 지동설을 주장했던 갈릴레오는 성경의 문자적 해석과 충돌하며 고초를 겪었지만, 결국 인류는 그가 옳았다는 걸 받아들였다. 시간이 지나자 교회는 “지구가 돈다고 해서 하나님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늘날 분자생물학, 유전학, 고고학은 인류의 기원과 이동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발견들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기보다는 “창조의 질서가 얼마나 정교한가”를 보여주는 과정이라 볼 수도 있다.

결국 과학은 ‘어떻게’를 묻고, 신앙은 ‘왜’를 묻는다. 질문이 다르다면, 굳이 싸울 이유가 있을까?

 

진화론은 신앙의 적이 아니다

진화론은 생명이 환경에 적응하며 변해온 과정을 설명하는 과학적 이론이다. 이것은 ‘신이 없었다’는 주장이 아니라 ‘생명이 변화하는 방식이 이러하다’는 설명에 가깝다. 

성경이 말하는 창조는  “하나님이 세상을 질서 속에 세우셨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진화의 과정은 창조의 질서가 시간 속에서 펼쳐지는 방식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매일 변화하고, 배우고, 성장한다. 세상도, 사회도, 기술도 그렇다. 자동차가 해마다 새로운 모델로 개선되고, 사람의 생각이 끊임없이 진화하듯 우리는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진행 중인 작품’이다. 그 점에서 진화의 원리는 삶 자체의 모습과 닮아 있다.

 

오해의 근원 ― ‘이념’으로 과학을 재단할 때

종종 진화론은 유물론이나 포스트모더니즘 같은 철학적 사상과 한데 묶여 비판받는다. 하지만 진화론은 사상이 아니라 관찰된 현상을 설명하는 과학적 모델이다. 유물론이 진화론을 자기 철학의 근거로 삼는 건 가능하지만, 그건 과학의 책임이 아니다.

과학은 사실을 발견하는 도구이며, 신앙은 그 사실 속에서 의미를 찾는 여정이다. 둘은 서로 다른 질문을 던질 뿐 서로를 부정하지 않는다.

진화론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신앙이 흔들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생명의 복잡성과 아름다움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이 이렇게 섬세하게 움직이는구나.” 그 경이로움을 과학이 보여줄 뿐이다.

과학과 신앙은 싸움의 상대가 아니라 서로의 시야를 넓혀주는 두 개의 창이다. 하나는 세상의 구조를 보여주고, 다른 하나는 그 구조 안에 담긴 의미를 비춘다. 진화는 단지 생명의 역사에 관한 설명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는 창조의 현재진행형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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