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스퍼리들리의 [티토:위대한 지도자의 초상] 읽음. 5.0




티토

티토

유경찬

불과 20여년 전만 해도 옛 유고슬라비아는 동구권에서 안정되고 잘살던 나라로 평화와 번영을 누리던 나라였고, 당시 그 핵심에는 '티토'라는 인물이 존재하고 있다. 강력한 의지와 카리스마를 지닌 위대한 지도자로 남아 있는 티토 대통령에 대한 생생한 다큐멘터리로서의 이 책은 티토의 어린시절에서부터 생을 마감하기까지의 행적을 추적하고 있다.전세계인의 기억에 깊이 남아있는 티토의 독보적인 업적을 소개하고, 이를 통해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유고슬라비아를 한 나라로 묶었으며, 동서양이라는 굴레를 앞세운 강대국들의...


책을 읽는 동안 작년에 다녀온 유고연방의 여러 지역들이 떠올려졌다. 지형이며 도시들이 속의 내용과 오버랩되면서 이해하는 상당한 도움이 됐다예전 중고등학교 시절 3세계의 리더라고만 배운 피상적인 인물이 피부에 와닿듯이 실제적으로 느껴지게 준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지역의 인물에 대해 나온 책이 얼마나 되겠나 싶다. 강대국도 아닌 그나마 유고연방으로 존재했을 때와는 달리 원래의 소국들로 나뉘어져 버린 지금에선 더더욱.


티토라는 인물에 대해 마디로 해보라면공산주의자 , 아닌 듯한 매력적인 인물이다. 어떻게 보면 진정한 공산주의를 바라고 추구했었던 사람인 같으면서도 되려 그렇지 못해 어정쩡한 스탠스를 취한 그러면서도 시대의 운을 타고나 천수를 누린 천운을 가진 사나이라고 할까?


그의 사후 유고는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몬테네그로, 코소보, 세르비아, 보스니아에서 벌어진 인종청소 등으로 인해 인간의 잔학성을 보여주는 동네가 되어 버렸다. 그렇지만 참상을 겪은 후에 도리어 티토는 그가 티토였는지를 다시금 알게 해주면서 지금은 생전만큼은 아니어도 그에 대한 향수와 추모를 받고 있나 보다.


우리네 다카키 마사오 상에 대한 최근의 추모 분위기와 비슷한 싶지만 절대 아니다. 도리어 티토는 비록 노선은 공산주의였지만 유고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던져가며 싸워온 투사였고 그것을 입증해주는 역사적 사실은 너무나도 많다. 단순한 공산과격분자가 아닌 서방과도 함께 동반할 있음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도리어 자기네 맹주인 소련에도 과감히 쓴소리와 결단력 있는 행동을 보여주는 뚝심있는 사내였다고 본다. 영국수상 처칠이 그를 평가한 내용을 보면 더더욱.


그래서 비록 우리 대통령이었다지만 일제의 앞잡이 되어 독립군 잡으러 다니고 통일을 위해 자기몸 아끼지 않던 백범 선생 등을 암살하고 통일은 커녕 분단을 공고히 해서 자기들 권력유지에만 집념하고, 남의 나라 전쟁에 자국 젊은이들을 사지로 몰고 그나마도 월급 떼먹고... 등등. 그래서 지금의 다카키 마사오 상을 추모하는 인간들을 보면 역겁기 그지 없는 거다. 청렴했다고 하더니만 스위스 계좌며, 딸내미들과 일당들이 저질러 놓은 짓들 보면 뭐가 청렴하고 국가만을 생각한다는 것인지티토의 첫번째 부인의 아들은 전쟁중에 한쪽 다리를 잃었다. 부친 사후에 그에게 남겨진 재산은 양복 한벌. 살아 생전에도 티토는 자식이라고 봐줄 없다고 해서 되려 주변인들이 그래서야 되겠냐라고 이야기 했을 정도란다. 

아무튼 자꾸 이야기가 곁길로 새서 정리하자면 우리나라에도 티토같은 이들이 분명히 있었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럼에도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 박근혜로 이어지는 패악의 세력들이 나라위에 군림하고 있다. 이들이 우리의 리더였다. 부끄럽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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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아기가 뒤바뀐 줄도 모르고 수년간 기른 부모들. 그리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그 아기들을 고의적으로 바꾼 간호사. 영화 중간 료타(케이타의 아버지)는 그 간호사를 찾아가 '당신때문에 우리 가정은 엉망진창이 됐어' 라고 한다.


재앙이다. 

단순한 병원의 실수였다하더라도 큰 일인데, 알고 보니 고의적인 일이었다니. 게다가 이젠 그 시효 기간도 경과해버려서 처벌도 안된다라... 영화를 보면서 저걸 어째 야 하나 싶었다. 법이 문제네 어쩌네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최근 읽은 필립 얀시의 '하나님 제게 왜 이러세요'라는 책이 떠올려진다.


미국에 있었던 여러 총기사고 중 가장 나이 어린 초등학생들이 희생된 샌디훅 초등학교 사건을 중심으로 대체 왜 이런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는가에 대해 하나님은 대체 그 때 무얼하고 계시는가에 대한 물음에 대한 책이다. 이 일만 아니라 사라예보, 일본 후쿠시마 등등의 많은 인재, 자연재해 가운데 벌어진 무고한 희생에 대한 근원적 물음이 이어진다.

최근에 우리에게도 세월호 사고로 많은 귀한 생명을 잃었다. 더욱이 이는 단순한 사고가 아닌 사회구조적인 문제의 총합이 사고로 터진 터라 대체 이걸 누구에게 모든 책임을 물어야 하는 가에 대해 우리나라는 혼란 가운데 있다.

필립 얀시의 책을 보면서 그런 처참한 현실 가운데 전능자는 개입하시지 않고 뒷짐만 지고 계시는 듯 하고, 범죄를 저지를 이들은 호위호식하면서 너무나도 잘 살고 있는 상황이라면 '대체 여러분은 어쩌겠는가' 라는 물음이 이어졌다. 그렇다고 그들을 하나하나 찾아가서 복수라도 하면 지금의 문제가 갑자기 원래의 행복했던 상태로 돌아가는가? 그나마 범죄자가 있으면 그렇기라도 하겠지만 자연재해는 또 어째야 하나? 대체 누구에게 그 문제의 책임을 지운단 말인가?


다시 영화로 돌아가서 료타는 이 문제에 대해 잘못을 한 병원, 범죄를 저지른 간호사, 실제 자기 자식 류세이를 기르고 있는 부모의 궁색한 모습, 지금의 자신의 모습같은 아버지 등등에게 그 책임을 지우려는 듯 하다. 똑바로 살아왔다고 여겼고 그리고 그 만큼 이루었으며 그래서 지금의 상태를 그대로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었는데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앞으로의 일도 어찌해야 할 지 앞길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상황에서 대체 어쩌라는 말인가?

논리적으로 따지면 원인들의 문제점을 해결하면 결과는 정확하거나 선한 결과가 나옴이 당연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게다가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를 어찌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제도를 개선하거나 법에 의한 처벌같은 인위적인 방법으로는 이미 헝클어져버린 삶의 문제를 바로잡아줄 어찌할 방법이 없다.

영화에서는 아이를 맞바꾼 가정이 서로의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여 알콩달콩 잘 살게 되었다 이런 결과를 말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문제를 던져준 이들을 단죄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와 아픔을 자신의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자기를 닮지 않아 실망스럽기만 했던 남의 아이를 다시 가족으로 감싸안는 것으로 끝낸다. 삶의 문제를 해결해야할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 문제 그대로 삶속으로 끌여들여 녹이는 것으로.


필립 얀시도 하나님에 대해 동일하게 말한다. 샌디훅 사건의 부모들, 사라예보의 시민들, 후쿠시마의 희생자 가족들 가운데 하나님은 문제 가운데 상처받고 피 흘리는 그들 가운데서 함께 계시고 그들을 위로하고, 다독이고, 감싸안으셨다. 물론 그 하나님이 형체를 띄어 나타난 것은 아니다. 크리스챤이라 불리우는 이들을 통해서도, 또 교회의 이름으로도, 여러 모양으로 아픔 가운데서 움직이신다.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상처가 완전히 해결되고 아무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아픔은 그대로 기억되고 남아 있지만, 오히려 그 상처들로 인해서 서로를 다시 감싸고 안아주는 지렛대가 된다. 


여러 모양으로 고통을 겪는 이웃들이 있다. 세월호, 군폭력의 희생자... 많은 부모, 가족들이 힘들어하고 슬퍼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어떻게 그들을 대하고 있나? 아니 스케일을 좁혀서 내 아이들, 내 아내에게는 나는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가? 료타의 모습을 보면서 억지스런 웃음을 짓느라 힘들어하지 말고 힘 빼고 자연스럽게 삶을 대하라는 메시지를 봤다.


PS : 아역배우들이 너무 귀엽다. 특히 막내 야마토의 능청스러움은 내 둘째를 떠올린다. 그리고 일본의 배우들이 한국의 배우를 닮은건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계속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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