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 제임스 모로
줄거리 : 암초로 인해 배가 난파되고 이후 기름띠 유출사고의 책임으로 실직 중인 발라파이소호의 선장 앤서니 반호른은 어느날 천사장 가브리엘의 방문으로 하느님의 죽음에 대해 알게되고 그 시신을 북극 00 지점에서 매장해 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 그후 발생하는 해프닝(꽉 막힌 이성주의자, 신을 잃은 자들의 광란, 바티칸의 음모, 전쟁광들의 정신나간 놀이 등...)에 대한 이야기
<감상평>
하나님의 죽음 ≒ 신의 부재 인가?
현대는 하나님이 살아계시다고 믿는 신앙인과 신은 없거나 아주 많다라고 믿는 이들로 구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부류에도 하나님을 자신의 목적과 수단으로 대체해버린 이들도 있다.
따라서 하나님에 대한 순수한, 때묻지 않은, 신실한, 정말로 세속적이지 않은 신앙인 vs. 그외의 사람들로 최종구분할 수도 있으려나.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신을 신실하게 믿으며 살아가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둘 사이에는 어떠한 차이점이 있을까? 삶의 질이라던지 여러가지로 달라질까?
하나님의 존재가 사라질 때를 가정한 소설이지만 주변에서도 확인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문명이 시작할 즈음에도도 책에서 묘사된 것과 유사한 광란의 시기도 있었을 거다. 물론 문명시대 또한 그러한 경우는 많다. 2차대전의 유태인학살, 중세의 마녀사냥 같은거.
그렇지만 이러한 시기나 역사적 사실들은 지속적이진 않다. 중간 중간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곤 한다.
왜 그럴까?
분명 신은 죽었다, 존재하지도 않았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즐비함에도 세상은 이런 사람들과 함께 지금까지 잘 지내왔다. 정말 신이 없는 것처럼 믿도록.
비록 중간중간 인류멸망까지는 아니어도 세상이 곧 망할 것만 같았던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은 선이 악을 이긴 것처럼 보인다.
마치 신의 개입이 없이도 우리는 잘 살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처럼.
과연 칸트의 정언명령과 같은 도덕률이 사람들로 하여금 광란의 시기에 제정신을 차리도록 한 것일까?
정말 이러한 도덕률(예를 들어 공자의 사상, 부처의 가르침, 기타 여러종교 및 사상가의 주장)에 의해서 세상은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더욱 더 바람직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만 여기서 한가지 집고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 과연 우리가 도덕, 또는 선으로 여기는 것들은 어디로부터 비롯된 것인가? 이것은 선이고 저것은 악이며 당신은 선을 택해야 된다라고 누가 정한 것인가? 사회적 약속? 종을 지속하기 위한 자연적 선택?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선택을 하게끔 한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이것들은 오랜 세월을 통해 현재의 내가 존재토록 하게한 것이다.
현대의 과학은 어떠한 사물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것을 인지한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고 이러한 관계를 나열하다 보면 궁극적인 누군가, 또는 초월자가 있어야만 이 세상이 존재할 수 있다라고 주장하는 이도 꽤 있다.
이러한 면에서 기독교와 타종교간에는 극복할 수 없는 극명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점이 그것이다.
모든 종교는 사랑을 강조한다. 기독교 또한 그러하다.
그렇지만 세상을 회의적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완전히 방향을 달리한다.
세 상에는 희망이 없다는 것! 매우 독선적으로 보이지 않는가? 이러한 점이 기독교로 하여금 전도와 선교에 주력하게끔 한다. 사랑하는 내 가족, 친척, 친구, 모른지만 아름다워 보이는 저 존재들, 등등... 세상에 희망이 없으므로 그들을 희망으로 인도하려는 사랑의 힘!
이게 세상의 가치관으로 보면 터무니 없다라고 한다는 것, 인정한다.
그러나 이러한 가치관은 지구에 사는, 중력에 혼이 잡혀있는(ㅎㅎ 건담의 대사 중에 있다) 우리들만의 가치관일뿐 세상을 창조한 이에게는 전혀 가치없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아 무튼 이 책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의문이나 부존재에 대한 증명을 목적으로 한 책은 아니다.(이면에는 그런 것철럼 적은 것 같긴 하지만) 책의 마지막은 결국 사람에게는 신이 존재하던 하지 않던간에 희망이 있음을 보여주려고 한 듯하다. 비록 사람사는 세상이라 이런저런 부류의 생각과 행동들로 있어 매우 소란스럽긴 해도.
줄거리 : 암초로 인해 배가 난파되고 이후 기름띠 유출사고의 책임으로 실직 중인 발라파이소호의 선장 앤서니 반호른은 어느날 천사장 가브리엘의 방문으로 하느님의 죽음에 대해 알게되고 그 시신을 북극 00 지점에서 매장해 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 그후 발생하는 해프닝(꽉 막힌 이성주의자, 신을 잃은 자들의 광란, 바티칸의 음모, 전쟁광들의 정신나간 놀이 등...)에 대한 이야기
<감상평>
하나님의 죽음 ≒ 신의 부재 인가?
현대는 하나님이 살아계시다고 믿는 신앙인과 신은 없거나 아주 많다라고 믿는 이들로 구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부류에도 하나님을 자신의 목적과 수단으로 대체해버린 이들도 있다.
따라서 하나님에 대한 순수한, 때묻지 않은, 신실한, 정말로 세속적이지 않은 신앙인 vs. 그외의 사람들로 최종구분할 수도 있으려나.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신을 신실하게 믿으며 살아가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둘 사이에는 어떠한 차이점이 있을까? 삶의 질이라던지 여러가지로 달라질까?
하나님의 존재가 사라질 때를 가정한 소설이지만 주변에서도 확인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문명이 시작할 즈음에도도 책에서 묘사된 것과 유사한 광란의 시기도 있었을 거다. 물론 문명시대 또한 그러한 경우는 많다. 2차대전의 유태인학살, 중세의 마녀사냥 같은거.
그렇지만 이러한 시기나 역사적 사실들은 지속적이진 않다. 중간 중간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곤 한다.
왜 그럴까?
분명 신은 죽었다, 존재하지도 않았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즐비함에도 세상은 이런 사람들과 함께 지금까지 잘 지내왔다. 정말 신이 없는 것처럼 믿도록.
비록 중간중간 인류멸망까지는 아니어도 세상이 곧 망할 것만 같았던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은 선이 악을 이긴 것처럼 보인다.
마치 신의 개입이 없이도 우리는 잘 살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처럼.
과연 칸트의 정언명령과 같은 도덕률이 사람들로 하여금 광란의 시기에 제정신을 차리도록 한 것일까?
정말 이러한 도덕률(예를 들어 공자의 사상, 부처의 가르침, 기타 여러종교 및 사상가의 주장)에 의해서 세상은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더욱 더 바람직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만 여기서 한가지 집고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 과연 우리가 도덕, 또는 선으로 여기는 것들은 어디로부터 비롯된 것인가? 이것은 선이고 저것은 악이며 당신은 선을 택해야 된다라고 누가 정한 것인가? 사회적 약속? 종을 지속하기 위한 자연적 선택?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선택을 하게끔 한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이것들은 오랜 세월을 통해 현재의 내가 존재토록 하게한 것이다.
현대의 과학은 어떠한 사물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것을 인지한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고 이러한 관계를 나열하다 보면 궁극적인 누군가, 또는 초월자가 있어야만 이 세상이 존재할 수 있다라고 주장하는 이도 꽤 있다.
이러한 면에서 기독교와 타종교간에는 극복할 수 없는 극명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점이 그것이다.
모든 종교는 사랑을 강조한다. 기독교 또한 그러하다.
그렇지만 세상을 회의적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완전히 방향을 달리한다.
세 상에는 희망이 없다는 것! 매우 독선적으로 보이지 않는가? 이러한 점이 기독교로 하여금 전도와 선교에 주력하게끔 한다. 사랑하는 내 가족, 친척, 친구, 모른지만 아름다워 보이는 저 존재들, 등등... 세상에 희망이 없으므로 그들을 희망으로 인도하려는 사랑의 힘!
이게 세상의 가치관으로 보면 터무니 없다라고 한다는 것, 인정한다.
그러나 이러한 가치관은 지구에 사는, 중력에 혼이 잡혀있는(ㅎㅎ 건담의 대사 중에 있다) 우리들만의 가치관일뿐 세상을 창조한 이에게는 전혀 가치없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아 무튼 이 책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의문이나 부존재에 대한 증명을 목적으로 한 책은 아니다.(이면에는 그런 것철럼 적은 것 같긴 하지만) 책의 마지막은 결국 사람에게는 신이 존재하던 하지 않던간에 희망이 있음을 보여주려고 한 듯하다. 비록 사람사는 세상이라 이런저런 부류의 생각과 행동들로 있어 매우 소란스럽긴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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