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읽고 있는 ‘갈리아 전쟁기’
카이사르야 두말할 필요 없는 세기의 영웅이라 칭송되니 책의 내용은 흥미롭기 그지없다. 게다가 그가 직접 썼다. 대단하지 않은가? ^^ 전략가의 카이사르, 정치가로서의 카이사르의 모습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초등학생 시절 읽었던 위인전 속 정형적인 위인의 모습에서 훨씬 생동감 있는 시이저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좋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계속 드는 의문이 있었다. 피정복민의 입장이 상당히 궁금해진 것이다. 특히나 요 며칠 사이의 우리나라에서 총리후보로 지명된 분의 언사를 통해 느끼는 바가 크게 다가온다.
여지껏 카이사르의 명성에 따라 로마 시대의 영토 정복과 통치는 하나의 로망처럼, 특히 제국을 꿈꾸는 나라에게는 최고의 고전처럼 다뤄졌다. 그리고 우리 또한 일제 36년을 거친 우리나라의 입장이 어찌 보면 그 갈리아 지역의 당시 부족과 비슷한 처지였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카이사르의 활약에 열광해 왔다.
갈리아 지방(지금의 서구유럽 중 라인강 서쪽, 프랑스가 상당부분)을 다 년 간에 걸쳐 대부분 평정해버린 카이사르가 아무리 공정한 통치를 하려고 했다고 하더라도 여지껏 살아온 토착민들, 특히 상당 기간 한 곳에서 부족을 형성해 살아온 이들에게 카이사르는 낯선 이방인일 뿐이고 침략자일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틈만 나면 반란(갈리아인 입장에서는 독립전쟁)을 일으킨다.
갈리아 전쟁기의 저자인 카이사르의 입장에서야 귀찮은 날파리들이 소등을 간지럽히는 것밖에는 안됐다 하지만, 그 날파리의 입장에선 정말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이다. 무엇 때문에? 자기들의 정체성을 지키려고 했기 때문이다. 갈리아 뿐만 아니라 라인강 동쪽의 게르만족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물론 당시엔 갈리아인과 게르만인간의 다툼도 만만찮았지만 여하튼 그들또한 게르만 특유(의외로 매우 금욕적)의 정체성과 삶의 터전을 지키려고 했다. 재밌는 건 갈리아 지방은 귀족, 평민의 계급이 구분이 명확해서 되려 평민의 입장에선 카이사르의 통치가 더 반가웠을 수도 있다. 물론 그와는 정반대로 서로의 계급을 따지지 않고 평등한 사회를 이루며 살던 게르만 민족에게 카이사르는 거의 재앙이라고나 해야할 수준이다.
시이저에게 자식을 볼모로 잡히고, 영토를 뺏기고, 심지어는 반란의 죄로 자신의 목이 잘리는 심각한 상처를 입고도 계속 반란의 씨를 이어간 걸 보면, 한 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고대도 지금과 다르지 않았음을 새삼 알게 된다.
물론 지금에 와서야 보면, 당시 로마의 통치로 인해 갈리아 및 여러 지역(영국 포함)의 교류가 더 활발해지고 문명의 투입으로 예전에 비해 더 풍요로워지는 계기가 됐음은 그 세대와는 전혀 연관이 없는 현대인의 입장에서는 쉽게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얼마 되지도 않은 기껏해야 일 백 여년 전 우리의 땅에서 제 땅을 잃은 선배들이 자신의 주권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독립 운동을 하고 고생을 했던 것을 그 상황을 단지 결과(산업화, 교양수준의 상승 등)만을 주목하여 그 고난은 별 것 아닌 것처럼, 또 그 많은 희생을 통해서 얻은 것임에도 앞서 말한 얻었다고 여겨지는 그것을 위한 과정에 불과하다는 식으로 단정하는 것은 해도 해도 너무한 발언이다. 마치 유체이탈 화법의 대가라 불리우는 누군가의 모습처럼 말이다. 설령 그 세계관이 일부 긍정적인 면이 있었다고 한들 그 말은 아직도 일제로부터 고통 받은 이들이 여전히 생존해 있고 그 혈흔들이 짙게 깔려있는 이 세대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발언이다. 또한 몇 수 십 세대가 지나더라도 변하지 않을테다. 임진왜란을 두고 우리민족을 부정하는 것이 가당하기나 한 가? 그런데 온라인의 글 중엔 정말 그렇게 우리 민족의 영웅인 이순신을 폄하하는 내용도 있는 모양이더라. 대체 그 머리 속은 어떻게 구성됐을 지 궁금해진다. 으….
갈리아 전쟁기의 저자인 카이사르의 입장에서야 귀찮은 날파리들이 소등을 간지럽히는 것밖에는 안됐다 하지만, 그 날파리의 입장에선 정말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이다. 무엇 때문에? 자기들의 정체성을 지키려고 했기 때문이다. 갈리아 뿐만 아니라 라인강 동쪽의 게르만족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물론 당시엔 갈리아인과 게르만인간의 다툼도 만만찮았지만 여하튼 그들또한 게르만 특유(의외로 매우 금욕적)의 정체성과 삶의 터전을 지키려고 했다. 재밌는 건 갈리아 지방은 귀족, 평민의 계급이 구분이 명확해서 되려 평민의 입장에선 카이사르의 통치가 더 반가웠을 수도 있다. 물론 그와는 정반대로 서로의 계급을 따지지 않고 평등한 사회를 이루며 살던 게르만 민족에게 카이사르는 거의 재앙이라고나 해야할 수준이다.
시이저에게 자식을 볼모로 잡히고, 영토를 뺏기고, 심지어는 반란의 죄로 자신의 목이 잘리는 심각한 상처를 입고도 계속 반란의 씨를 이어간 걸 보면, 한 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고대도 지금과 다르지 않았음을 새삼 알게 된다.
물론 지금에 와서야 보면, 당시 로마의 통치로 인해 갈리아 및 여러 지역(영국 포함)의 교류가 더 활발해지고 문명의 투입으로 예전에 비해 더 풍요로워지는 계기가 됐음은 그 세대와는 전혀 연관이 없는 현대인의 입장에서는 쉽게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얼마 되지도 않은 기껏해야 일 백 여년 전 우리의 땅에서 제 땅을 잃은 선배들이 자신의 주권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독립 운동을 하고 고생을 했던 것을 그 상황을 단지 결과(산업화, 교양수준의 상승 등)만을 주목하여 그 고난은 별 것 아닌 것처럼, 또 그 많은 희생을 통해서 얻은 것임에도 앞서 말한 얻었다고 여겨지는 그것을 위한 과정에 불과하다는 식으로 단정하는 것은 해도 해도 너무한 발언이다. 마치 유체이탈 화법의 대가라 불리우는 누군가의 모습처럼 말이다. 설령 그 세계관이 일부 긍정적인 면이 있었다고 한들 그 말은 아직도 일제로부터 고통 받은 이들이 여전히 생존해 있고 그 혈흔들이 짙게 깔려있는 이 세대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발언이다. 또한 몇 수 십 세대가 지나더라도 변하지 않을테다. 임진왜란을 두고 우리민족을 부정하는 것이 가당하기나 한 가? 그런데 온라인의 글 중엔 정말 그렇게 우리 민족의 영웅인 이순신을 폄하하는 내용도 있는 모양이더라. 대체 그 머리 속은 어떻게 구성됐을 지 궁금해진다. 으….
링크한 위키의 내용을 보면 ‘암비오릭스’라는 인물이 있다. 카이사르 시절 로마군 최악의 패배를 안긴 악당이다. 우리로 치면 ‘김좌진 장군, 안중근 의사’ 정도랄까? 영웅이다. 비록 수 천 년이 지났지만 벨기에 인들에게는 한동안 잊혀져 있다가 새롭게 조명받으며 영웅으로 칭송 받는다. 일부(?) 몰지각한 식민 사관 또는 수꼴의 입장에서 보면 안중근, 김구, 윤봉창 등은 날파리와 같은 존재일 테다. 그런데 잘 보시길. 일본이 그렇게 닮고 싶어하는 서구 유럽인들은 비록 수 천 년이 지났지만 다시금 그들의 영웅이 누구였는지, 그들의 정체성이라는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 지를 저렇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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