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가 쓴 책은 그날 읽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
개미를 읽었을 때도 그랬고(그땐 길을 걸으면서도 읽었다), 타나토노트, 개미혁명 때도 역시 그랬다.
파피용도 어제 하루동안 틈틈이 읽어, 자정을 약간 넘겨서야 다 읽었다. 덕분에 피곤하다.
베르나르는 상대방이 글을 읽지않고는 못배기게 하는 재주가 있나보다.
다만 이번 파피용은 전작들만큼의 기발함은 보이지 않는다는 아쉬움이 있다.
여러가지 이야기를 짜집기한 듯한 느낌.
- 무한한 탈출이라는 소재는 최근에 본 애니메이션인 '천원돌파 그렌라간'이 떠오르고
- 거주지 우주선인 파피용의 형태는 건담의 콜로니(물론 콜로니에 대한 개념은 50~60년대 나사에서 이미 만든것이긴 하지만)
- 폐쇄된 공간안에서의 인간군상들의 한계적 모습은 '하느님 끌기'에서 본 타락한 인간의 모습
- 새로운 지구로의 여행은 '배틀스타 갈락티카'
- 인류의 조상은 머나먼 우주에 있던 인류의 전파? 이건 제카리아 시친의 '틸문'시리즈
물론 베르나르가 이것을 보고 베끼진 않았겠지만 그간 존재해 온 여러 미디어의 소재를 그냥 짜집기 하듯 묶어놓았다는 것은 반론의 여지는 없을 듯 하다. 온라인서점의 서평 대부분이 공감하는 듯한 분위기다.
하지만 어쩌면 베르나르는 이러한 짜집기를 통해 그간 보여주었던 기발함과 신선함보다는 다른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 것 같기도 하다.
인간내면에 대한 깊은 성찰, 또는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적인 한계를 드러내고자 하는 느낌을 받았다.
선별하고 선별해서 태웠더니 얼마간은 잘 지내는 것 같더니만 어느 순간을 지나면서부터는 그야말로 혼란, 카오스의 세계로 들어가 버리는 인간들. 이래서야 많은 이들의 질시와 반대 가운데 탈출한 의미가 없쟎은가?
또 기껏 미지의 행성에 도착하고도 그들의 모습은 천여년 전, 아니 수백만년전 인류가 걸어온 것과 다른 바 없다.
지금도 우리들은 인류의 미래에 대해 말하라고 하면 다분히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이야기를 하려하고, 또한 인류애적인 관점으로 이 세상을 선하게 이끌어야 한다라는 말들을 하지만 인간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말이라는 것이다.
이타적이다 이기적이다라는 말은 분명 둘 이상의 존재가 있어야만 한다. 이 세상에 혼자 있으면서 '난 이타적이야, 이기적이야'라고 할 수는 없을테니까. 그렇다면 이기적인것이 먼저일까 이타적인 것이 먼저일까?
존재는 무존재라는 전제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존재한다는 것은 무존재에 대한 반발, 반작용인가? 없으려고 하는 자연적 본성에서 있고자 하는 의지, 이건 이기적인 것인가?(일상에서 쓰는 이기적인 것 이상의 의미로서 말이다)
책에서는 마지막을 새로운 희망을 주려는 듯 마치고 있지만, 세월이 흐르고 흘러도 이기적인 인간이 스스로의 노력만으로는 절대로 바뀔 수 없는 숙명을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내가 철학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리 깊은 생각을 하는 사람도 아니기에, 이런 깊은 주제에 대해서는 빈약한 답 밖에 못하겠다. 게다가 이러한 주제는 이미 수많은 학자, 이야기꾼들이 다뤄왔던 거라 그리 신선하지도 않고... ^___^;
다만 이 모든 것에 대한 구원은 절대자의 손길외에는 없다라는 믿음이 더 확고해 지기에 써본다. 인간은 스스로는 안된다. 외부의 개입만이 유일한 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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